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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ntasize/oTaku

[영화] 죄의식의 해방은 심연의 죽음일까? - 렛 미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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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떠나면 살고, 머물면 죽어.


흡혈귀, 드라큘라로 대변되는 뱀파이어는 가장 좋은 납량 특집의 소재이며, 공포의 대명사이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뱀파이어'에 대한 묘사의 시각이 바뀌고 있다. <렛 미 인>도 그러한 영화 중 하나다. 다만, 공포가 아닌 사랑이라는 주제로 뱀파이어에 접근한 12세의 시선은 아마도 지금까지 등장한 뱀파이어 물에서는 <안녕, 프란체스카> 만큼이나 참신했다는 생각이 든다.


하얀 눈속에 파묻혀 을씨년스러운, 그래서 무슨 일이라도 일어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해 보이는, 어쩌면 문득 트윈픽스를 떠올리게 하는 극 중의 배경은 소외되고 따돌림당하는 오스칼의 박약한 의지에 너무나 잘 어울린다. 잠겨져 있는 오스칼의 소극적 의식을 깨우는 것은 폭력이었고, 그 촉매는 '뱀파이어' 이엘리였다. 오스칼은 자신을 억압하던 세계로부터의 탈출을 위해 폭력을 선택했고, 과정이 어찌 되었건 괴로움으로부터 이별을 선고받을 수 있었다.

직접적으로 보자면 이엘리는 사람에게 옮겨 붙어, 영원히 따라다니는 죄의식인지도 모른다. 이엘리가 실제로 저지른 수차례의 살인은 '생계형'이라는 이유로 묵과되고 있으며, 실질적인 살인은 하지 못하지만 이미 마음속으로 수차례의 살인을 반복한 오스칼은 결국 잠재된 이엘리였는지도 모른다.

 

"넌 마음으로 사람을 죽이지? 난 살기위해 사람을 죽여." - 이엘리


오스칼이 이엘리를 받아들이기 위해 괴로워하는 과정은 죄의식에 대해 자기 합리화를 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갈등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꾸준히 자신의 내면과 그들만의 언어로 소통하며, 마침내 하나의 합일을 이루게 된다.

그냥 단순히 우연히 옆 집에 이사 온 뱀파이어와 사랑에 빠져, 다른 길을 가야하는 사랑의 엇갈림을 받아들이지 않은 12세의 안타까운 일탈적 사랑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단지 그것만이라고 하기에는 무언가 허전함이 남는다.

 

죄는 죄를 낳고, 같은 죄의식은 전염도 된다. 그리고 그것이 극단으로 흐를 경우, 같은 장치에 의해 정죄받는 것이 윤회처럼 이어지는 게 인간의 굴레다. 실질적인 살인의 주체자였던 이엘리의 보호자는 결국 이엘리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종종 사람들 중에서는 이러한 죄의식을 죽음으로 완강히 거부하는 이들도 생기긴 한다.

하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직접적으로 내게 미치지 않았음에도 그것을 받아들이고 동화되는 경우도 존재하며, 어쩌면 이것이 더 일반적인지도 모르겠다.

 

"난 너야. 한 번만이라도 내가 돼봐." - 이엘리

 

이엘리는 오스칼의 죄의식이었다. 비록 소외된 사회적 약자였지만, 규범적 한계에 굴복하고 제한될 줄 알았던(혹은 통제할 줄 알았던) 오스칼을 속박으로부터 끄집어내어 '범죄의 자유'로 이끈 것은 이엘리라는 죄의식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해방과의 만남은 사랑만큼 달콤했으며, 죽음과 정죄라는 결정의 순간 앞에서 다른 단계의 결정을 내리게 한다.

오스칼은 이엘리를 받아들이는 사랑을 택했다. 직접적으로 사람을 죽이진 않았지만, 내제된 폭력성을 밖으로 처음 터뜨리고, 수많은 살인의 현장을 목도한 오스칼이 이엘리와 단 둘만의 삶에서 더한 범죄의 길을 답습할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과정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병원에서 이엘리에게 생을 마감한 그 처럼 오스칼의 마지막도 비참할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현실은 그들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합리화하고 있다.

 

죄의식, 합리화, 범죄와 단죄.

인간이라는 이름으로 사회라는 곳을 살아가면서 평생을 따라다녀야 하는 이러한 조건앞에 진정한 자유로움은 정녕 죽음뿐일지도 모르겠다.

 

렛 미 인 (Let The Right One In, 2018, 스웨덴)

감독 : 토마스 알프레드슨(Tomas Alfredson)
오스칼 : 카레 헤레브란트(Kare Hedebrant)
엘리 : 리나 레안데르손(Lina Leandersson)
이본느 : 카린 베그퀴스트(Karin Bergquist)

 

덧 1. 영화 내내 서양 어린 것들의 우월한 기럭지는 상당한 부러움과 시샘을 자아내는 데 충분했다. 제길...

덧 2. 안타깝게도 이 배우들의 이후 필모그래피는 그다지 많지는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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