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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ntasize/oTaku

[뮤지컬] 죽음, 사랑을 완성할 수 있는 유일한 길 '황태자 루돌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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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Liebe vereint bis in den Tod. 

 

‘죽음을 넘어 사랑 안에 하나가 되겠다’는 맹세로 새드 앤딩 러브스토리의 고전 ‘로미오와 줄리엣’에게 휴식을 허락한 뮤지컬 ‘황태자 루돌프’는 황태자의 자살 여부에 대한 역사적 논쟁은 차치하더라도 ‘세계를 뒤흔든 위험한 사랑’이라는 논픽션의 소재 여부를 떠나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작품이다.

 

주인공 루돌프 황태자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혈통을 계승했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정통성을 이은 후계자였지만 안타깝게도 자신의 정략결혼에 적응하지 못했고 신분이 다른 마리 베체라와 사랑에 빠져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작품의 앞 뒷머리를 다 떼어버리고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줄거리는 이게 전부다. 소위 ‘막장’코드다. 현대판으로 치자면 태어날 때부터 모든 걸 가졌지만 모정이 그리웠고 우유부단했던 유부남이 뒤늦게 예쁘고 똑똑한 아가씨를 만나 권위적이고 집안의 명예를 지키고자 하는 아버지와 자신의 자존심보다는 대외적인 이미지가 더 중요했던 아내에게 무너지는 아침 드라마의 소재로 어울린다고 볼 수도 있다.

 

‘황태자 루돌프’는 2006년 헝가리에서 초연을 한 이래로 일본, 오스트리아 등 각각의 프로덕션마다 색다른 차이를 두었다. 특히 비엔나 버전이 자국의 역사였던 만큼 정치적·역사적 사실을 강조했다면 국내 버전은 루돌프와 마리의 비극적인 사랑을 애절하게 그려내는 데 주안점을 맞추고 있다. 

 

유럽, 황제, 귀족, 지키려는 자, 신분 상승, 그리고 금지된 사랑. 이 뮤지컬, 한국에서의 흥행 요소는 모두 갖췄다.

 

Love never dies.

믿느냐, 믿지 않느냐의 차이겠지만, 사랑의 불멸성은 ‘사랑’을 주제로 하는 작품에 진부하도록 등장하는 주제다. ‘오페라의 유령’에서 팬텀의 사랑도 그랬고, 서양 문화권에서 가장 무서운 오컬트의 존재에서 로맨티스트로 탈바꿈한 드라큘라 역시 사랑을 위해 영혼을 내던지고 500년을 기다린 존재로 재해석하기도 한다. 

 

루돌프와 마리 역시 사랑이 불멸이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죽음을 끝이 아닌 하나가 되기 위한 과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대제국의 황제보다 평범한 삶을 꿈꿨던 황태자가 자신이 원하는 사랑에 이르는 길은 결혼이 아닌 죽음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 작품에서 사랑을 앞에 두고 수없이 두려워하지 말라고 당부 하는 것은 극복해야 하는 것이 신분의 차이나 주변의 반대가 아닌 그것을 넘어 생명을 걸어야 하는 문제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변화를 갈망했던 루돌프는 평생을 그리워했지만 끝내 닿지 못했던 어머니 엘리자벳의 자유로운 영혼을 그대로 닮아있던 마리에게서 사랑은 물론 과거의 상처에 대한 보상과 미래까지 모든 것을 꿈꾸었을 것이다. 

 

두 연인이 세상을 떠나면서 꿈은 깨졌다. 그래서 작품은 비극이다. 그러나 사랑은 죽지 않는다는 믿음과 ‘황태자 루돌프’가 왜 연인들이 반드시 봐야하는 작품으로 꼽히는 지를 확인하고자 한다면 커튼콜이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킬 것을 추천한다. 그들은 죽음으로 사랑을 지켰다.

 

나쁜 사람은 없다. 다른 사람만 있다.

루돌프는 정치적인 문제로 아버지 프란츠 요제프 1세와 사사건건 대립한다. ‘황태자 루돌프’는 약 100여 년 전의 애절한 러브스토리지만 지금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갈등과 대립을 똑같이 안고 있다. 

 

신분제의 사회가 자본으로 서열화 되는 것으로 바뀌었을 뿐 ‘보수’와 ‘진보’로 이분되는 구도는 여전하며, 언론을 두고 통제와 자율을 논하는 것도 변함이 없고, 기존 세대와 젊은 세대가 소통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도 다르지 않다. 

 

주인공인 루돌프의 관점에서 볼 때 황재와 타페 수상은 절대적인 구악(舊惡)을 대변한다. 비엔나에서 새 극장이 열리는 행사에 뛰어들어 권총자살을 한 서민소녀의 죽음을 도외시하는 모습은 이를 방증한다. 

 

그러나 방법과 생각의 차이로 볼 수도 있다. 루돌프가 헝가리의 독립에 가담하겠다는 결정을 내리는 것은 국가와 국민을 위한 결정이었다. 하지만 황제 역시 국가와 만족, 그리고 역사를 앞세워 이러한 루돌프의 선택에 절규한다. 

 

타페 수상 역시 마찬가지다. 이 모든 비극을 만든 것 같은 인물인 타페 수상 역시 결국 목적은 견고한 제국이 흔들림 없이 유지되도록 지키는 것이었다.

 

마리의 후견인이었던 라리쉬 부인 역시 루돌프의 의중을 이해하지만 적극적으로 지지하지는 못하고 그 선택이 얼마나 큰 희생을 불러오게 되는지에 가슴 아파할 뿐이다. 동상이몽의 다른 길을 가는 이들의 아픈 현실이 세기 이전에도 같은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어쩌면 ‘황태자 루돌프’는 단순한 러브스토리가 아닌지도 모른다.

 

황태자의 모든 것.

루돌프의 연인 마리는 사상적 역할로는 타페 수상과 배치되는 역할이기도 하다. 황제의 정치적 신념을 공고히 하고, 이를 앞서 실행하여 현실화 시킨 것이 타페 수상이라면, 숨어있던 루돌프에게 총을 쥐어준 것은 마리였다. 

 

‘두 도시 이야기’의 ‘마담 드파르지’처럼 적극적고 격렬하지는 않지만, 그녀는 추진력 없는 루돌프에게 강력한 촉매였다.

 

마리는 베체라 가문을 일으키기 위해 돈 많은 집안으로 시집가라는 친척 라리쉬 백작 부인의 소개로 사교계에 입문했지만 목표가 된 브라간자 공작이 아닌 루돌프의 연인이 된다. 

 

마리는 ‘황태자 루돌프’보다 급진적인 사설을 신문에 기고하던 루돌프의 또 다른 이름인 ‘율리우스 펠릭스’를 더 사랑했다. 루돌프는 그녀에게 봄이 오면 마이얼링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고 말했지만, 마이얼링의 봄은 그들을 기다려주지 못했다.

 

루돌프에게 꿈꾸던 새로운 모든 것이 마리 그 자체였던 것처럼 마리 역시 루돌프가 그랬다. 루돌프가 꿈을 이루지 못했지만 마리는 그를 버리지 않았다. 

 

‘그가 없는 삶’

처음부터 표독스럽게 문을 열어 악녀의 표본으로 등장하는 스테파니 황태자비는 권력욕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루돌프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루돌프의 면전에서 그 옆 자리는 자신의 것이라고 절규한다.

 

루돌프와 마리의 불륜현장을 목도하고 루돌프의 수많은 외도를 알아도 묵인한다. 권력만 가지면 사랑은 없어도 되는 여자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어찌 보면 쿨한 여자다.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여자, 스테파니의 반전은 작품 막바지에 이르러 성당에서 마리와 마주하며 나타난다. 

 

17살에 루돌프와 결혼식을 올렸던 성당에서 과거를 회상하며 황태자비로서의 무게를 고백하는 스테파니가 마리와 함께하는 ‘그가 없는 삶’은  ‘사랑이야’ ‘알 수 없는 그 곳으로’ ‘내일로 가는 계단’ 등 프랭크 와일드혼의 명곡이 즐비한 이 작품에 숨어있는 명곡이자, 국내 공연을 위해 추가된 넘버 중 하나다.

 

성당에서 조우한 스테파니와 마리는 서로 교차하며 루돌프 없는 삶을 상상하며 ‘영원히 떠나서 살 수 있을까, 가슴이 무너져 내려와’라며 슬픔을 노래한다. 

 

두 여인의 슬픔이 같은 아픔을 의미하는지 아닌 지는 해석하기 나름이겠지만, 적어도 앙칼진 표독스러움을 잠시 내려놓았던 스테파니의 처연함과 안타까움은 루돌프와 마리의 ‘러브라인’에 가장 큰 걸림돌 같았던 그녀 역시 얼마나 큰 상처와 짐을 안고 살아야 하는 지를 보여준 장면이었다.

 

지난 11월 18일 마지막 티켓 오픈에 들어간 ‘황태자 루돌프’는 내년 1월 4일까지 서울 디큐브아트센터에서 공연된다. 모든 것을 다 가졌지만 사랑만은 허락받지 못했던 불행한 황태자 루돌프 역에는 안재욱, 임태경, 팀이 캐스팅 됐으며, 운명을 거스르는 사랑의 여주인공 마리 베체라는 최현주, 김보경, 안시하가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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