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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ntasize/oTaku

Endless Rain...

 

 

고등학교 2학년 때였으니까 1994년.. 아마 그 무렵.

지금과는 분위기와 상권의 규모가 전혀 달랐던 이대 주변을 돌아다니면 X-Japan의 CD를 구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생소했던 미니 CD(보통 2곡 들어있음. instrumental 포함 4곡) 한 장을 2만원 넘게 줘야 살 수 있었다. 군대 가기 전까지 오랫동안 그런 식으로 X-Japan의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적지 않은 돈을 주고 그들의 도쿄돔 라이브 LD를 구했다. CD를 들으면서 X-Japan 노래의 코드를 따고, 악보를 그렸다. Endless Rain을 공연에서 연주하면서 "아.. 보기보다 쉽구나... 이거 후까시였나?" 라는 생각도 했다. 일본을 가면, 타워레코드에서 그들의 신보를 찾고 듣는 건 필수였다.


일본 문화가 개방되면 문화 대국인 일본에 휩쓸려 큰 위기가 올 거라는 우려가 많았다. 하지만 그렇게 20년. 대한민국 음악 방송이 전 세계로 송출되고, 로케이션의 한계도 사라지고 있다. 8-90년대 밴드나 음악을 했던 사람들 중에서, 혹은 '나 음악 좀 들어'라고 자부했던 사람들 중에서 일본의 밴드 음악, 그리고 X-Japan을 듣지 않았던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X-Japan 그 자체라 할 수 있는 요시키가 한국의 음악 방송에 나와 한국의 아이돌과 콜라보를 한다. 한국의 가수가 X-Japan의 대표곡인 Endless Rain을 부른다. 일본어로 부르는 노래가 여과 없이 나온다.

처음 그들의 음악을 들었던 시절에는 불가능했던 것들이다. 이유는 많았지만,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그들의 거대한 음악 산업이 한국의 협소한 시장을 집어삼킬 수 있다는, '적어도 우리보다 10년 이상 앞서 있다'고 했던 일본 음악에 한국 음악이 무방비상태로 소멸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경계(警戒)도 두려움도 없다. 그 음악이, 그들의 언어가 여과 없이 재생되어도, 변별력에서, 경쟁력에서 뒤지지 않는다는 자신감이 있다. 그리고 그 자신감은 클래식과 레전드를 소환하는 데에도, 음악 그 자체로 마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당시 대한민국 밴드의 수많은 기타와 베이스들에게 영감을 주었던 히데, 파타, 타이지, 히스는 무대에 없지만, 얇은 스피어 같았던 토시의 보컬도 없지만, 학생 시절 LD에서 봤던 그 도쿄돔, KAWAI 피아노 앞에 다시 요시키가 앉았다. 한국 가수들이 보컬을 하고, 내레이션 대신 랩을 한다. 한국의 방송을 통해 전세계에 라이브로 나가는 장면이다.

 

있을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일들이 현실로 벌어지는 시대다. 공부하는 게 그렇게도 싫었던 10대 소년 시절과, 불과 몇 년 만에 부쩍 다 자라 세상 모든 걸 다 안다고 자만했던 20대 시절, CDP와 MP3 플레이어를 지배했던 멜로디의 시작은 한참의 시간을 건너, “아 그 후까시...”라는 그때의 오만을 지우고, 마음을 저민다.


25년 전 그 때도 난 이 방, 이 자리에 앉아 이 멜로디를 듣고 있었다. 내 삶의 반 이상을 차지했던 그 긴 시간이 이 곡을 듣는 7분 사이에 빠르게 태엽을 감고 다시 돌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