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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ntasize/dReam hunting

2010년 남자 셋이 떠나는 전국일주 #1 장전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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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전히 이 여행의 계획을 잡은 건 나의 주관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새로 장만한 카메라에 적응하기 위해 전국을 돌며 괜찮다는 풍경을 좀 담아 보면 사진이 좀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40D를 쓰던 시절 내 사진이 그 나마 가장 마음에 들게 찍혔을 때가 호주에서 찍었을 때와 제주도에서 찍었을 때였다. 그래서 계획한게 차를 끌고 우리나라를 작게 한 바퀴 돌아보자는 생각이었고, 여기에 동조해 준 두 명이 더 모여 나름의 전국 일주를 출발했다.


나즈막한 계곡으로 폭포를 담는다

가리왕산 장전계곡

 

 

아침 일찍 출발하겠다고 마음 먹었지만 나름 1주일을 여유있게 돌겠다고 마음 먹었기에 게으름은 필수였다. 천천히 지도를 펴고 일정을 잡은 다음 모여서 오후가 될 때 쯤 서울을 떠났다.

 

강원도는 뭔가 막연하게 이름만 접하면 서울에서 어느 정도 멀리 가야할 거 같다는 느낌, 그리고 동해바다가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막상 차를 끌고 달리다보면 길만 막히지 않을 경우 얼마 가지 않아 강원도에 도착할 수 있다. 처음 목적지로 잡은 곳은 장전 계곡 위 쪽의 이끼 계곡이었다.

 

이 이끼 계곡은 말로만 많이 들었을 뿐, 이상하게 나와 궁합이 맞지 않는 곳이기도 했다. 몇 차례 근처를 들른 적이 있었는데 이상하게 여기에만 발길이 와닿지 않았다. 한참 찍기 좋을때는 사람들이 많아 원하는 사진을 찍을 수 없고, 사람이 없을 때를 선택하면 수량이 많지 않아 기대한 사진을 얻기 힘들다고 했었다. 하지만 6월의 평일인 월요일날 사람이 있을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서울에서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달려서 진부 IC를 나가서 59번 국도로 가다보면 장전리계곡 입구가 나타난다. 난 사실  거기가 이끼계곡인 줄 알고 차에서 내리려 했다. 다행히 동행한 형님이 이끼계곡은 더 올라가야 한다고 하셔서 차를 끌고 계속 올라갔다.


사실 지도에 표시한 위치가 맞는지는 잘 모르게다. 아무튼 장전리 계곡이라는 푯말을 보고 입구에서 계속 들어가서 다 온게 아닐까 싶어도 무조건 계속 올라가야한다. 차를 세워놓고 올라가도 되지만 산길로 걷는 거리가 만만치는 않을 것이다. 그렇게 올라가다보면 크게 오른쪽으로 꺽여 올라가는 길이 나오고 간이 화장실과 철망으로 막아놓은 계곡이 등장한다. 거기가 이끼계곡이다. 별로 붐비지 않는다면 이 근처에 차를 세울 수 있다.

 

그닥 붐비지는 않았지만 사람이 없으리라는 나의 예상은 빗나갔다. 사진에 대한 열정이 충만한 분들이 몇 분 이미 사진을 찍고 계셨다. 계곡을 누벼야 한다는 생각에 슬리퍼로 갈아신었다. 그리고 일단 계곡이 어떤지 보기위에 삼각대는 차에 놓아둔 채 카메라만 들고 계곡으로 들어섰다. 이것이 패착이었다.

 

이끼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미끄럽다는 것이고 슬리퍼를 신고 다니기엔 그만큼 위험이 도사린다는 것이다. 여행 시작 후 3시간도 채 안되어 물에 입수하는 비참한 처지가 됐다. 깜빡하고 운동화만 갖고 왔다며 푸념을 했던 한 명만 무사히 자신의 라이카 M9을 지킬 수 있었고, 안타깝게도 나머지 두 명은 값비싼 카메라를 지키기 위해 몸을 던져야 했다. 사실 여기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에게 이러한 경우는 다반사인 것 같다.

 

카메라를 지키기 위해 몸을 틀어 대신 입수하여 옷을 버리는 경우는 행복한 경우에 속했다. 카메라를 물에 빠뜨리고 절망해본 이도 있었으며 카메라 대신 몸을 던졌다가 이빨을 다친 이도 있었다. 다행히(?) 옷만 흠뻑 적신 나는 유유히 촬영을 계속할 수 있었다. 하지만 차에 두고 온 삼각대는 두고두고 한이 되었다. 다시 내려가서 가져오기에는 나의 게으름이 너무나 위대했다. 그냥 내 손으로도 버틸 수 있으려니 생각하고 1/5초 대의 승부를 걸었다.







카메라의 LCD가 너무 발전했다는 게 비극이었다. 저녁 때 숙소로 돌아와 결과물을 확인했을 때 나는 여행 첫 날부터 발휘된 나의 진절머리나는 게으름을 원망할 수 밖에 없었다. 심지어 ND필터는 물론 릴리스도 챙겼으면서 차에 두고 고작 5분 정도 왕복하는 것이 게을러 나는 사진의 퀄리티를 날리고 말았다. 게다가 물에 빠져 옷도 흠뻑 젖었고 넘어지면서 부딪힌 팔꿈치는 더욱 아팠다.

 

처음 차를 세운 곳을 중심으로 내가 사진을 찍은 곳은 위로 올라가는 코스였다. 철망이 쳐져 있긴 하지만 살짝 돌아서 들어가면 충분히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반대로 그곳을 중심으로 아랫쪽으로도 이끼계곡이 형성되어 있다고 한다. 숲이 울창하고 접근이 쉽지 않아 이끼의 보존상태는 오히려 더 양호하다고 한다.

 

1주일의 시안을 두고 전국일주를 목표한 만큼 첫 날은 최대한 많이 이동해야 한다는 생각에 아랫쪽은 내려가지 않고 철수하기로 결정했다. 좋은 풍경들을 사진에 담아보겠다고 생각했지만, 이끼 계곡을 보면서도 계곡에 긴 원피스를 입은 여자 모델 한명을 물의 흐름 따라 눕혀놓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왠지 햄릿의 약혼녀 오필리어를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아마 나의 이 궁극적 생각에 동조해 줄 여성은 죽을때까지 못찾을 것 같다.

 

6월초에 오르던 이끼계곡에는 수많은 모기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갓 부화된 모양인지 피를 빨리는 일은 없었지만 1-2주만 더 늦었으면 난데 없이 소득없는 헌혈을 당할 뻔 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 곳에서 찍은 사진을 볼 때 마다 당장 삼각대를 들고 다시 뛰쳐 가고 싶지만 숲을 장악하고 있던 모기떼가 떠올라서 11월까지는 참아야 하나 하고 아쉬운 마음 뿐이다.

 

어제 비가 내려서 오늘도 수량이 만만치 않을텐데. 뿌리는 모기약이라도 휘감고 미친 척 나서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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