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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의 중심에는 '人間'이 있다 - 변형윤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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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형윤 교수, "MB정권의 경제정책은 실패"

 

2012년 현재, 대한민국은 ‘경제민주화’라는 화두에 잠식되어 있다. 대선 정국에서 불거져 나온 ‘경제민주화’는 차기 정부가 반드시 수행해야 할 경제적 국정과제로 암묵적 결론이 난 상태다.

여권이고 야권이고 유력 대선 주자들의 경제정책에는 ‘경제민주화’가 공식처럼 존재하고 있다. 하지만 과연 ‘경제민주화’라는 것이 정확히 어떤 것을 의미하는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우리는 이 ‘경제민주화’라는 코드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것일까?

사단법인 서울사회경제연구소 이사장이기도 한 서울대학교 변형윤 명예교수는 오랫동안 우리나라 경제의 실무를 주도한 ‘서강학파’와 함께 주목받았던 ‘학현학파’의 창시자로도 잘 알려져 있다.

지난 60년대 재무부 장관과 경제부총리, 총리를 지냈던 남덕우 전 국무총리를 위시한 ‘서강학파’는 ‘선(先)성장 후(後)분배’를 중심으로 논리를 펼친 반면 ‘학현학파’는 분배경제학을 중심으로 고도성장의 이면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며 서로 다른 논리를 전개했다.

‘진보경제학’이라는 단어로 설명되고 있는 이러한 ‘학현학파’의 주장은 ‘경제민주화’가 회자되고 있는 현재에 더욱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문화저널21>은 ‘학현학파’의 창시자인 학현 변형윤 교수를 만나, 현재의 경제화두와 앞으로 나아갈 길에 대해 조언을 구했다.

분배는 성장의 반대말이 아니다


“경제학에 진보라는 말은 없습니다.”

변형윤 교수는 ‘진보경제학’이라는 세간의 평가에 대해 이렇게 단언했다.

주변과 기자들에 의해 ‘진보경제학’이라고 명명되었을 뿐, 경제학에 ‘진보경제학’이라는 구분은 없다는 것이다. 다만 기존의 경제학을 연구하는 이들 중에서 진보적인 측면을 갖고 있다고 말할 수는 있다고 한 변 교수는 아울러 ‘학현학파’라는 부분에 대해서도 주변에서 기존의 ‘서강학파’와 구분하기 위해 지칭했을 뿐, 거창한 공동연구를 진행하거나 학술지를 내는 것도 아닌데 ‘학파’라고 불리는 것이 여전히 어색하다고 전하기도 했다.

변형윤 교수와 이른바 ‘학현학파’가 강조하는 경제의 중심에는 ‘분배경제학’이 존재한다. 변형윤 교수가 주장하는 ‘분배’의 경제는 가지지 못한 사회 빈민과 약자들에 시선을 두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는 고도성장의 경제정책 이면에 존재하는 부작용이라고 설명한다.

변형윤 교수는 본격적인 경제개발시대였던 박정희 전 대통령 당시에도 이러한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군대식 고지 점령처럼 속도전으로 성장에 몰입하여 고도성장을 이루어내기는 했지만, 그 이면에서 분배 문제가 발생했고, 이로 인한 부익부 빈익빈 문제가 두드러지게 됐다는 것이다. 유신 정권 역시도 말기에는 ‘분배’라는 부분에 관심을 가졌다고 회고한 변형윤 교수는 당시 평가교수로서 상황을 보고하며 물가 안정을 우선으로 하는 분배를 강조했고, 안정 성장을 주장했다.

“무조건 똑같이 나누어 가지라는 것이 아닙니다. 분배의 문제가 발생하면, 부익부 빈익빈의 심화로 사회 양극화는 물론 소외계층과 서민의 불만이 사회 불안으로 이어집니다. 이는 결국 경제적으로도 무너지는 결과가 되는 것이죠.”

일부에서는 분배의 문제를 ‘결과적 평등’이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곧, 이는 자본주의와 별개의 이론이라는 것이고, 분배에 집착하다보면 더욱 발전할 수 있는 경제성장의 기회를 놓쳐버리게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러나 변형윤 교수는 분배를 강조하는 것이 성장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설명했다.

“분배와 복지를 강조하면 성장을 포기하는 것처럼 지적하는데, 이는 매우 잘못된 것입니다. 경제성장은 당연히 필요하고 중요합니다. 하지만 분배가 성장을 가로막는다고 말하기 전에 성장과 고성장을 먼저 구분해야 합니다. 성장과 고성장은 분명히 다른 것입니다. 오히려 고성장을 이루지 못하면 성장이 아니라고 보는 시각이 문제인거죠. 고성장에 대한 집착이 가져오는 여러 가지 부작용은 이미 70년대 박정희 정권 시절부터 드러났습니다. 그런데도 경제가 어렵다는 말이 나오자 다시 외형적인 성장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은 잘못된 현상입니다. 성장만능주의에 입각해, 수치상의 급성장에 매달리는 것 보다는 분배와 복지를 함께 생각하는 균형적이고 안정적인 성장을 생각해야 합니다.”

변형윤 교수는 ‘고성장’이라는 단어에 집착하지 않는다면, 안정적인 성장을 이루어 가며 분배와 복지를 함께 병행할 수 있다고 말한다. 때문에 변형윤 교수는 이명박 대통령의 경제정책에 대해서도 부정적이다.

 

MB정부의 경제정책은 실패, 학점으로 치면 C학점

 

“747공약이라는 것 자체가 현실적이지 못합니다. 7%의 경제성장은 그냥 성장이 아니고, 그야말로 ‘고성장’입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9~11%의 경제성장으로 고성장을 지향했던 성장만능주의의 재현이었습니다. 성장에 집착해서 물가 등에 소홀하게 되니 국민의 살림살이가 나아질 수 가 없는 것이죠.”

747 정책은 ‘경제를 살리겠다’라는 모토를 최전방에 내걸었던 이명박 대통령이 대선 후보였던 시절부터 주장했던 공약으로 ‘7%의 경제성장을 통해 국민 소득 4만$를 달성하고 세계 경제 7대강국으로 도약하겠다’는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하지만 계속된 난항 속에 이명박 대통령의 747 정책은 ‘물가상승률 7% 경제성장률 4% 대통령 지지율7%’라는 비아냥을 듣기도 했다.

변형윤 교수는 그래서 이명박 정부의 경제 정책에 대해서 높은 점수를 줄 수 없다고 말한다. 국제 경제가 워낙 좋지 않아서 소기의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점에 대해서도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5-6공화국 당시 1%대의 물가 안정을 이룬 것은 유가 안정과 국제 금리 인하 등 외부적인 요인에서 플러스가 됐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 들어 국제경제에 어려움이 발생된 것도 분명한 사실이죠. 하지만 그러한 국제적 변화에 대해 미리 예측하거나 대비하지도 못했고, 변화를 줄 수 있는 유연함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747정책은 허황된 공약, 그 이상이 되지 못했던 겁니다. 점수요? C정도 줄 수 있겠네요. D를 줄 수는 없지 않습니까?”

일부에서는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이 신자유주의에 입각하여 노무현 정부의 노선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노무현 정권 당시의 참여정부에는 ‘학현학파’의 인사들이 많은 역할에 주도적으로 나선 바 있다. 현 정부의 경제정책은 지난 정부의 그것과 맥을 같이하는 연결선상에 있는 것일까?

“기본적으로 지난 정부와 이번 정부는 재벌을 두고 완전히 다른 방향을 보였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말하는 ‘비지니스 프랜들리’ 자체가 궁극적으로는 친재벌 정책을 대변하는 것이죠. 참여정부는 친재벌 정책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러다보니 기득권 세력으로 부터의 저항이 훨씬 더 거셌던 것이죠. 두 정부가 실시한 경제 정책의 결과가 비슷하게 나타났다고 볼 수도 있지만 정책의 추진 배경과 과정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경제민주화의 핵심은 결국 ‘재벌 개혁’

 

변형윤 교수는 현재 최고의 경제 이슈로 떠오른 ‘경제민주화’에 대해서도 명확한 결론과 입장을 밝혔다.

경제민주화의 핵심은 결국 재벌 개혁이라는 것이다. 과거 일본이 군국주의에서 탈피하던 시절에 시행했던 경제민주화의 3요소가 ‘재벌해체’, ‘농지개혁’, ‘노동조합의 민주화’였다고 밝힌 변형윤 교수는,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에서 농지개혁은 이미 이루어졌고, 노조 역시 과거에 비해 많은 민주화를 이룬 만큼, 남아있는 화두는 결국 재벌에 관한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변형윤 교수는 재벌 역시 경제 발전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고 인정하면서도, 전체의 2~3% 지분을 쥐고서 기업 전체를 좌지우지 하는 경영 구조 등은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을 말하며 순환출자를 유지하겠다는 일부의 주장은 어불성설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대기업과 재벌이 한국 경제를 이끌어왔는데 이제 와서 이를 제재하는 것은 잘못됐다는 외국 전문가들의 의견에 대해서는 외국과 다른 우리나라의 특수성을 언급하며 상황이 다르다는 것을 강조했다.

독점금지법과 공정거래위원회가 강력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면 상관이 없지만, 실제로 그러한 역할이 미진한 우리나라에서는 재벌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변형윤 교수는 우리나라의 공정위에 대해서도 정확한 중립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경제민주화’와 함께 뜨거운 사회적 이슈로 등장했던 ‘복지 포퓰리즘’에 대해서도 입장을 밝혔다. 변형윤 교수는 ‘복지’에 ‘포퓰리즘’을 대입하는 것 자체를 정치적이라고 규정했다. 포퓰리즘(populism)은 정치를 하는 이들에게 중요한 것일 뿐, 경제적으로는 의미가 없는 것인데, 오히려 포퓰리즘에 갈급한 포퓰리스트들이 복지라는 단어에 이를 영합시키고 있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지난해부터 우리 사회는 ‘무상급식’, ‘무상보육’, ‘무상의료’ 등이 화두가 되면서 복지정책 전면적인 확대가 필요하다는 의견과 재정을 감안하지 않고 여론과 선거를 앞둔 포퓰리즘이라는 공방이 치열하게 진행되어 왔다. 서민생활의 안정과 균형적인 발전에 대해서는 입장을 같이 하지만, 여론을 의식한 선심성 복지 정책의 남발이라는 경계의 목소리도 높았다.

특히 현재 전 세계의 경제 문제를 몰고 온 유럽발 경제 위기를 지적하며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한 이들은 그리스를 비롯해 스페인, 이탈리아 등이 국가 재정을 감안하지 않고 지나친 복지정책에 매달리다가 경제파탄의 위기를 맞았음을 주지시키고 있다.

그러나 변형윤 교수는 이에 대해 “나쁜 것만 보고, 이를 극대화 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충분한 고민과 현실성에 입각한 복지정책으로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극단적인 예를 들어 안 좋은 쪽으로 몰고 가고 있다는 것이다.

변형윤 교수는 ‘분배’와 ‘복지’를 강조하면 ‘성장’을 포기하는 ‘좌익’이라고 몰아가는 것은 큰 문제라고 말했다. 오히려 우리나라가 성장의 발목을 잡을 만큼 복지정책을 실행한 바도 없음을 분명히 했다. 또한 미국을 예로 들며 복지 문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한 국가의 소득불평등 통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를 보면 미국이 우리나라보다 더 높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는 미국이 우리나라보다 소득분배가 균형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미국은 사회안전망을 통해 이를 보완하고 있어서, 심각한 사회문제의 발생을 적절히 막아내고 있는 것입니다.”

지난 3월 OECD가 발표한 소득불평등 통계에 의하면 미국의 지니계수는 0.37로 0.3을 기록한 우리나라보다 높았다. OECD평균은 0.311이었다. 일본역시 우리보다 높은 0.323으로 발표됐다. 변형윤 교수는 이러한 나라들이 소득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실업, 빈곤, 재해, 노령, 질병 등의 문제로부터 국민을 보호할 수 있는 사회안전망 제도를 안정적으로 갖추고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복지의 실현은 다시 성장과 분배에 관한 문제로 회귀된다. 변형윤 교수는 성장이 지속적으로 진행된다면 성장률이 낮은 것을 크게 문제 삼을 필요가 없다고 강조한다. 성장률은 인구증가율보다 높으면 된다는 것이다. 마이너스 성장은 문제가 되겠지만, 분배가 제대로 이루어지는 가운데 진행되는 저성장은 결과적으로 더 나은 성장으로 진행되고 있는 과정이라는 것을 확실히 했다. 또한 성장률 자체가 아무리 높아도 분배의 구조가 제대로 구축되지 않으면 실질적인 살림살이가 나이지지 않는다는 것을 거듭 강조했다.

“성장율이 높아진다고 고용율이 높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성장률의 수치가 높으면 살림살이가 나아진다는 믿음은 잘못된 맹신입니다. 고용율이 높아지기 위해서는 중소기업이 중심이 되어 성장이 이루어져야 하거든요. 중소기업을 소홀히 하면 고용효과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혜택이 가진 사람들에게만 돌아가게 되는 악순환 구조가 되는 겁니다. 복지가 성장에 지장을 준다는 논리는 잘못 된 거죠. 복지에 신경을 쓴다고 성장이 안 되는 것은 아닙니다. 결과적으로 궁극적인 경제민주화의 길은 분배와 복지에 그 열쇠가 달렸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문화저널21 / 2012년 12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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