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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ntasize/gIbberish

기분이 태도가 되어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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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아퀴나스는 '인간은 창조자의 피조물 가운데 이성을 부여받은 존재'로서 '피조물의 질서 영역에서 가장 위에 위치한다'고 했다. 여기에서 '자유 의지'가 등장하는데, 인간이 이성적으로 자유 의지를 공유할 수 있는 방법이 아마도 대화일 것이다.


단, 대화는 상식이 존재하는 이들 사이에 가능하다. 굶주린 승냥이 앞에서 대화를 시도한다 해도 이성적인 결론이 나올 수는 없다. 아무리 노력을 쏟아도 승냥이는 그저 배가 고플 뿐이다.

 

드라마 '스토브리그'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대사는 '기분이 태도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어느 방향으로든 통용되는 가치다. 기분이 태도가 되는 이들의 기저에는 한없는 교만이 존재한다. '나는 이래도 돼'라는 스스로의 가치에 따라 자신에게 놀라운 면죄부를 부여한다. '내가 오죽하면 이렇게까지'라며 스스로가 그동안 쌓아온 배려의 영역을 무한 확장 하지만, 일종의 생리 주기처럼 가려진 사실(진실인지는 알 수 없다. 때로는 이 논리를 창조한 자조차 진위여부에 무감각하다)에 불과하며, 그 조차도 필요에 따라 등장했다는 의심을 주는 부분이다. 무지성과 몰상식의 조합이다.

 

논리가 무너지면 다른 것을 가져와 태도를 기분으로 장식한 행동을 합리화한다. 상대방도 다른 것을 똑같이 꺼내어 놓는다면, 그때는 망각을 무기로 갑작스러운 무지를 주장할 것이다. 스스로에게 주는 면죄부가 익숙해서 간악하게도 모든 문제에 존재하는 자신의 책임은 이미 순결하게 탈색시켰기 때문이다. 나의 배려와 지난 행동은 놀랍도록 가치가 높고, 상대의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이기적이고 괘씸한 의식의 발로다.


모두의 앞에서 꺼낼 수 없는 말이라면, 둘만의 공간에서도 입을 열지 마라. 앞에서 할 수 없는 말이라면 뒤에서도 하지 마라. 합리적이라 착각하겠지만 비열한 것이다. 양두구육과 인면수심도 결국 거기가 출발점이다. 최소의 영역과 공간의 제약이 주는 안식도 스스로가 부여한 착각에 불과하다. 입을 열 수 있도록 허락한 공기가 통하는 구멍으로 당신의 방언도 분명 돌고 돈다. 가면 뒤의 추악함을 감추지는 못한다. 거울에 비친 간사한 협잡꾼이 보이지 않는가?


아! 물론 토마스 아퀴나스도 자유 의지에서 선과 악을 모두 명시했다. 다행이다. 어느 쪽이든 당신도 자유 의지를 가진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자격은 인정이 됐다. 부끄럽지만 그래도 그게 어딘가?

 

참으로 특별해 보이지만, 안타깝게도 아무렇지 않은 일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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