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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KBL] 일본 선수들도 들어오고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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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리그, 혹은 외국 선수들이나 국제대회 경기 기사를 쓸 때 가장 신경 쓰이는 것 중 하나가 외국 선수들의 이름이다. 알파벳 발음대로 대충 옮겨 쓰면 그만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적어도 선수의 이름은 최대한 정상에 가깝게 적어야 하는 게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 상당한 어려움이 발생한다.

 

A를 'ㅏ'냐 'ㅐ'냐 'ㅓ'냐로 고민하는 문제는 애교다. WNBA 코네티컷 선의 가드 레이첼 밴험(Rachel Banham)의 경우, 일반적으로 우리가 배운대로 옮기자면 '반함'일 것이다. 다만, 경험의 영역으로 인해 저 성은 밴험 혹은 밴흠에 가깝게 발음한다는 걸 알고 있다. LA 스팍스의 데리카 햄비(Dearica Hamby)의 경우 WKBL 외국인 선수로 지원했을 당시, 연맹에서 한글명으로 '데리카 함비'라고 적어뒀었다. 햄비를 선발한 KB의 박재헌 코치가 '햄비'라고 바로 잡아, 이후에 바뀌었다.

 

'앨레나' ,'엘레나, '알라나' 중에서, 혹은 '앨리스'와 '엘리스' 중에서 맞는 표기법 대로 쓰는 것은 속보 작성 중에 자주 혼동과 실수가 발생하는 부분이다. 심지어 Alice와 Elise가 현지에서 읽는 방식이 전혀 다르지만, 우리에게는 차이가 없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아 더욱 그렇다.

 

단순히 영어 발음만 갖고도 옮기는 게 쉽지 않은데, 세계화 시대에 다양한 국적과 출신의 외국 선수들이 몰리면서 더욱 발음이 어려워졌다.

 

댈러스 윙스의 에이스 아리케 오군보왈레(Arike Ogunbowale)의 경우는 '오군보왈레', '오군보와일', '오군보웨일' 등 현지 코멘테이터나 애널리스트들도 부르는 편차가 다양하다. 이미 한 시대를 풍미한 네카 오구미케(Nneka Ogwumike)는 국내에서 처음에 '은네카 오구미케'로 표기하다가 이후 '네카 오구미케'로 바뀌었다. 프랑스, 터키, 아프리카 등, 우리에게 익숙치 않은 언어를 사용하는 배경의 선수들이 많아지면서 이 표기는 더 어려워졌다.

 

과거 EPL은 전세계 해설진을 위해 선수들이 직접 자기 이름을 발음한 자료를 공유했다. WNBA는 현재 선수들의 실명 발음을 홈페이지에서 제공하고 있다. 홈페이지 선수 프로필을 보면 이름 옆에 스피커 표시가 있다. 이걸 누르면 선수 이름을 읽어준다. 그만큼 선수의 이름을 발음하고 쓰는 게 우리만 골치 아픈 게 아니라는 것이고, 또 이 부분을 정확히 할 필요가 있다는 방증일 것이다.

 

 

 

발음의 문제는 비단 먼 나라 선수들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중국 국가대표로 활약하고 있는 센터 리유에루(李月汝, Li Yueru)도 마찬가지다. 이 선수 이름의 한글 표기도 상당한 혼선을 겪었다. 현재 WNBA LA 스팍스에에서 뛰고 있는데, 홈페이지에서 발음을 들으면 '리예루'라고 읽는다. 또 한 명의 중국 센터인 한쉬(韩旭, Han Xu)는 여전히 매체마다 '한쉬'와 '한슈'로 표기가 다르다. 별 차이가 없는 발음이라 해도 상당히 고민이 되고, 최대한 현지 발음에 가깝게 표기하고자 노력하는 입장에서는 쉽지 않은 부분이다.

 

과거 월드컵을 앞두고, 네덜란드의 스트라이커 루드 반 니스텔루이(Ruud van Nistelrooy)는 '뤼트 판 니스텔로이'로 표기법이 완전히 바뀌었다. 네덜란드 선수들은 이름에 들어가는 van이 '반'에서 '판'으로 바뀌며, '피에르 반 후이동크 → 피에르 판 호이동크', '마르코 반 바스텐 → 마르코 판 바스턴', '로빈 반 페르시 → 로빈 판 페르시' 등으로 모두 바뀌었다. 언론사로는 표기법과 관련한 기준 지침까지 내려왔다. 이유는 현지 발음에 가장 가깝게 표기한다는 원칙 때문이었다.

 

 

우메키 치나츠(梅木 千夏)

 

 

그런데 WKBL은 외국 선수 이름의 한글 표기에 대해 크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느낌이다.

 

앞서 언급한 '함비 → 햄비'의 사례는 그냥 넘길 수 있는 해프닝이다. 오히려, 전혀 다른 표기를 한 후, 잘못됐음을 인지했는데도 수정하지 않은 예도 있다.

 

지난 해 열린 3X3 트리플잼은 외국 팀들이 참가하면서 좋은 평가를 받았고, 많은 볼거리를 제공했다. 일본 W리그 팀인 도요타 안텔롭스가 우승을 했고, 여러 일본 선수가 주목을 받았다. 그 중에서 가장 돋보인 선수는 2점슛 콘테스트 1위를 차지하고, 대회 MVP도 수상했으며, 유쾌한 쇼맨십도 보여준 우메키 치나츠였다. 그런데 WKBL은 이 선수의 이름을 유메키 치나츠라고 표기해 배포했고, 대회 내내 선수 소개는 물론 상을 수상할 때도 '유메키'라고 호명했다.

 

'우메키나 유메키나 거기서 거기'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메키 치나츠의 이름은 梅木 千夏. 매실을 뜻하는 梅는 '우메'로 읽고 표기한다. 매실로 만든 일본 음식 우메보시(梅干し)와 같은 표기다. 오사카 여행을 가서 '유메다 공원에 다녀왔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었나? 유메다 공중정원이 아니라 우메다 공중정원(梅田スカイビル 空中庭園展望台)이라는 건 모두가 알고 있다. 일본에서 '우메'는 매실이고, '유메'는 꿈(夢)이다. 완전히 다르다. 

 

WKBL이 이런 실수를 한 이유는 선수의 영문명을 보고 이름을 한글화 했기 때문이다. 우메키의 영문명은 Umeki였고, 이를 유메키라고 옮긴 것이다. WKBL에는 영어를 잘하는 인력은 있지만, 일본어까지 능숙한 인력은 없다. 그런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다.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착오다.

 

하지만 대회 첫 날, 선수 이름 표기와 발음이 잘못됐음을 통역을 통해서도 확인하고 WKBL에 알렸지만, WKBL은 이를 정정하지 않았다. 이미 유메키로 시작했으니 그냥 끝까지 유메키로 진행하겠다는 것이었다. 앞서 말한대로 '우메키나 유메키나...' 라고 생각한 것이다. 

 

실수는 고치면 되지만, 잘못을 알고도 간과하고 바로잡지 않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이병완 WKBL 총재가 일본 행사에 갔는데, 일본 연맹 측에서 "WKBL 이븅완 커미셔너가 왔다"고 소개하면 기분이 어떨까?

 

서로 다른 언어를 쓰기에 이름조차 정확하게 발음하기 힘든 게 현실이다. 하지만 충분히 인지하고, 할 수 있음에도 하지 않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모욕이다. 유학생 시절 때, 일부러 내 이름을 틀리게 발음하거나, "영어 이름을 만들라"고 요구한 이들도 있었다. 반복되면 상당히 불쾌하다. 기본적인 존중의 부분이다.

 

사실 우메키 치나츠는 우리나라에 크게 알려지지 않은 선수였다. 그 선수가 유메키인지 우메키인지에 대해 일반 대중들은 전혀 모르다시피 한다. 이때의 보도를 보면 이 선수를 우메키라고 표기한 언론도 있다. 현장에서 내가 선수 이름이 잘못됐다고 지적했기 때문에, 이를 들은 기자들만 수정했던 부분이다. 이 후에 받아쓰기 한 언론들도 각각 차이는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 연맹이 공식명을 정정하지 않으면 그대로 인용한다. 연맹은 대회 종료 후 배포한 보도자료에도 우메키 치나츠의 이름을 유메키 치나츠로 적었다.

 

우메키 치나츠의 소속팀 도요타는 박신자컵 서머리그때도 우리나라를 방문했다. 이 때는 도요타에 190cm의 센터 우메자와 카디샤 주나(梅沢 カディシャ樹奈)도 있었다. 1998년 생인 우메자와는 아버지가 트리니다드 토바고 계 캐나다인으로 혼혈 선수이며, 초등학교 1학년까지 캐나다에서 생활했다. 일본으로 간 뒤 농구를 시작했고, 현재는 일본을 대표하는 여자농구 빅맨 중 하나다. 이러한 우메자와를 유메자와라고 발음한 이도 없었고, WKBL 역시 당연히 우메자와라고 칭했다. 그가 일본 국가대표를 뛰고 있는 유명 선수이기에 영문표기(Kadysha Juna UMEZAWA)가 어떻든, 유메자와라고 읽는 일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우메자와(梅沢)는 우메자와가 되고, 우메키(梅木)는 유메키가 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우'와 '유' 발음의 구별이 어려워 그렇다면 모르겠지만, 충분히 구별할 수도 있는데 부주의와 성의 부족으로 선수를 홀대한 것이기에 있어서는 안되는 문제다.

 

크게 고민할 것도 없고, 잠깐의 수고, 그리고 길어야 10분 안팎의 점검만 있으면 발생하지 않을 일이다. 특히 일본어와 우리 말은 유사한 발음으로 전혀 다른 뜻, 때로는 상당히 입에 담기 민망한 차이를 보이는 단어도 있기 때문에 더 주의가 필요하다. 관계자의 업무 실수로 선수의 공식 이름과 등록명을 바꿔 버리는 건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라 기본 중의 기본을 어기는 무책임이다. 아시아쿼터 트라이아웃 등 앞으로 더 많은 일본 선수들의 이름이 국내 팬들에게 소개 될텐데, 가장 기본적인 부분의 예의에서 어긋남은 없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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