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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KBL] 연봉협상의 기묘한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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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 스포츠의 근간은 자본주의다. 이게 맞다. 물론 완전히 자본주의를 인정하지 않는 중국과 러시아가 스포츠에서 더 많은 자본 싸움을 펼치는 걸 보면 당혹스러운 것도 사실이지만, 스포츠의 프로페셔널 자체가 성립하려면 기본적인 자본주의의 토대가 필요하다. 아무튼 '프로스포츠는 돈'이라는 이야기다. '돈이 전부는 아니다'라고 말 할지 모르지만, 아니 말하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그냥 '돈=결과'가 맞다. 이게 아니면 프로의 투자 이유와 목적, 의미도 없어진다. 가치 판단의 기준은 무형의 실력, 이를 유형화 시킬 수 있는 척도가 결국은 돈이고 연봉이다.

 

매년 5월 31일은 WKBL의 국내 선수 등록이 마감되는 시점이다. 국내 선수 계약이 종료되므로 이 날, 선수들의 연봉이 발표된다. 굳이 1억원 이하의 연봉자는 발표하지 않는 프로답지 못한 방침을 유지하고 있지만, 어쨌든 상위권 연봉자들의 서열은 확인할 수 있게 된다. 올해 WKBL은 적어도 비교적 상식선에 많이 부합하는 결과로, 이견이 많이 등장하지 않을 순위로 결과가 맺어졌다. 가장 큰 이유는 박지수의 증발이다.

 

연봉(3억원)과 수당(1억원) 합계 4억원을 받던 박지수가 사라지며 절대선의 기준점도 사라졌다. WKBL 6관왕과 7관왕도 모자라 무려 8관왕에 등극한 박지수다. 굳이 스탯과 결과를 갖다붙이지 않아도, 박지수는 현재 리그에서 비교대상이 없는 최고의 선수다. 그런데 '셀러리캡+연봉 상한선'이라는 특이한 구조로 인해 박지수의 연봉에는 리미트가 걸릴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해 박지수와 비슷한 연봉을 수령하는 선수들도 꽤 있었다.

 

논란의 출발점이다.

 

연봉 상한선을 생략한 채로 현재 다른 선수들의 연봉 수준이 비교적 적정하다고 본다면, 박지수의 연봉은 최소 6-7억원 선에서 시작하는 게 정상이다. 냉정하게 '박지수의 연봉을 기준으로 할 때, 그들이 이만한 가치를 갖고 있는가'라는 질문은 합리적일 수밖에 없다. 심지어 WKBL에는 박지수보다 고연봉의 선수들도 존재했다. 고액 연봉이 온전히 상(賞)이 되기보다, 비판과 논란이 될 수 있는 상황이 이어졌다. 물론, 그 정도 연봉이라면, 논란의 중심이 되더라도 충분히 견딜 가치가 있고도 남을 것이다.

 

아무튼 박지수가 해외 진출로 WKBL에서 사라졌다. '절대선의 기준'이 되는 '독보적인 존재'가 사라졌다. 고액 연봉 수령자들의 부담이 확 줄었다.

 

 

 

 

최고 연봉은 여전히 김단비(우리은행)다. 실력과 가치, 연봉과 연차, 성과 등 모든 면에서 가장 완벽한 기준이자 합당한 인물이다. 4.5억(3억원+1.5억원)으로 최고액. 4억원의 박지수가 존재한다면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박지수가 없는 상황에서는 누구도 이견을 제시할 수 없다. 이후의 상위권도 예년에 비해 큰 문제는 없다. 물론 김단비 연봉을 기준으로 할 때 '2위 이하 선수들의 연봉이 적정선이냐'를 따지자면 '매우 높다'가 정답이겠지만, 앞서 언급했던 셀캡(하드캡)도 모자라  최고 연봉 상한액의 이중 잠금 장치가 있기에 이 폭이 상식적으로 존재하는 건 불가능하다. 

 

금액을 제외하고 상위권 연봉자의 순위만 보면 비교적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다. 분명 기술했지만 '비교적'이다. 당연히, 순위 속에 의문이 존재하는 이름이 몇몇 있지만, 실력과 가치 외에 FA 시기의 시장 상황 등 운을 비롯한 외부적인 요소도 작용한다는 걸 용인해야 한다. 이는 WKBL만 그런 게 아니다. '인생은 OOO처럼~' 이라는 말은 모든 종목에 걸쳐, 늘 등장한다.

 

갑자기 이 순위가 이전보다 '상식선'이라는 느낌을 주는 이유는 단 하나. 역시 '박지수의 삭제' 때문이다. 압도적이기에 독보적인 최상위여야 하는 랭커가 무리 중 어느 선에 어중간하게 위치하면서, 원하지 않는 시장 교란종이 되어  순위의 신뢰도를 떨어뜨렸는데, 그 이름 하나가 지워지면서 매우 합리적으로 보이는 착시효과가 나타났다. 그런데 그러면서 참 기묘한 현상이 나타났다.

 

지난 시즌 27승 3패로 정규리그 1위를 차지했던 KB 소속 선수가 연봉자 상위 9명 중 단 한 명도 없다. 강이슬이 10위로 탑 텐에서 유일하다. 이는 구단별 셀러리캡 소진율로 가면 더욱 극명하게 나타난다.

 

 

 

 

올해 FA 시장은 역대급이었다. '폭삭 망했구나'했던 구단들이 '아니 그건 아닌데!'로 불쑥 솟아나기도 했고, 껄껄껄 웃고 있던 팀이 마지막 순간에 그대로 추락하기도 했다.

 

FA 최대어를 뺏겼던 BNK는 이후 못지 않은 공격적인 영입에 성공했다. 챔프전을 우승한 우리은행은 2차 FA 3명을 모조리 놓쳤을 뿐 아니라, 생각도 못했던 1차 FA 박지현의 해외 진출 선언으로 선수도 털리고 멘탈도 털렸다. 하지만 보상선수 선택 등 이후의 과정에서 구성된 전력을 보면 여전히 준수하다. 신한은행은 FA 시장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며 손실도 있었고 성과도 있었는데, 모든 게 끝나고 보니 선수만 바뀌었을 뿐 제자리인 것 같은 느낌도 있다. 최대어 쟁탈전에서 승리하며 창단 후 첫 PO진출의 기세를 좀 더 가져가보자 했던 하나원큐는 뭔가 순위경쟁이 더 빡빡해졌다는 느낌도 있다.

 

대어 시장에서는 경쟁을 펼치지 못했지만 알토란같은 영입을 가져간 KB는 우리은행의 비보 속에 경쟁자 없는 1강으로 올라섰지만, 박지수의 튀르키예 진출로 대들보가 사라졌다. 손실이 있는 다른 팀들은 어떻게든 십시일반을 그려볼 수 있는 반면, 박지수의 부재는 보완 자체가 불가능하다. 판을 다시 그려야 한다. 아무리 다시 그려도 대들보가 있던 시절에 비할 수는 없다. 무슨 그림을 그려도 복장이 터질 것이다. 오히려 10년 째 FA 시장에서 집 밖을 나가보지 못한 삼성생명은 속시끄럽게 돌아다니지 않고, 시장 끝난 다음에 문 열고 나와 봤더니 갑자기 우승권이 보이고 있다.

 

혼란스러웠던 FA를 거쳐, 국내 선수 등록을 마치고 나니, 구단별 셀러리캡이 이렇게 정리됐다.

 

 

 

 

참 묘하다. 프로스포츠는 자본주의가 기반이고 '실력=돈'이 맞다. 당연히 셀캡도 상위권 팀이 빡빡하다. 지난 해 셀캡 소진율을 보면 우승팀 우리은행, 준우승팀 BNK, 그리고 박지수가 버티는 최고의 우승후보 KB가 100%였다. 적어도 소진율 자체는 상식적이었다. 

 

그런데 올해는 판이 바뀌었다. 단 10승으로 플레이오프에 올랐던 4위 하나원큐,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지 못했던 신한은행과 BNK가 셀캡 소진율 1~3위다. 하위권 3팀의 연봉이 가장 높게 됐다. 정규리그 3위였던 삼성생명이 4위, 챔프전 2연패에 성공한 우리은행이 5위, 그리고 정규리그를 우승했던 KB가 꼴찌다.

 

삼성생명의 셀캡 소진율은 사실 지난 해와 비슷하다. 해당 수준을 유지했는데 셀캡 소진 5위에서 4위로 오히려 올라왔다. 다만 박지현과 박지수가 빠져나간 우리은행과 KB의 셀캡은 매우 놀랍다.

 

우리은행의 셀캡 소진율은 최소한 2012-13시즌 이래로 최소다. 고액 연봉자가 넘쳐나는 팀이라 등록 선수는 가장 적어도 항상 셀캡은 빈틈이 없었다. 오히려 일부 팬들은 우리은행 선수들의 페이컷을 지적할 정도였다. 그런데 주요 고액 연봉자들 중 김단비를 제외한 선수들이 모두 나갔다. 그러면서 챔피언에 어울리지 않는(?) 연봉 사용 결과가 나타났다. 

 

하지만 우리은행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KB다. 샐캡 소진율 80% 이하, 수당도 50% 이하. 여기에는 정규리그 우승과 챔프전 준우승 상금은 포함되지 않으니, 실질 금액은 더 지출했을 지 모르지만, WKBL에서 이 정도 수치를 본 기억 자체가 가물하다. (솔직히 처음에는 '없다'고 단언했는데, 잘 생각해보면 있었던 것 같기도하다. 사실, WKBL이 구단 별 셀캡 소진율을 미리 보도자료로 배포한 게 몇 년 안 된 일이다. 이전에도 물어보면 가르쳐주긴 했지만 먼저 공개하지는 않았었다.)

 

WKBL 구단들은 기본적으로 운영비에서의 차이는 있었지만, 셀러리캡 제한 금액 자체는 그냥 선수들에게 매년 지급되는 금액이라도 여겨왔다. 어떤 팀들은 성적과 관계없이 셀캡은 거의 100%에 가깝게 지출하기도 했다. 어차피 예산에 잡혀있는 금액이고, 최대한 연봉을 지원하면서 그에 합당한 성적을 내라며 사기 진작을 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래서 구단의 운영방침 변화, 혹은 특별한 이유가 존재하지 않는 한 셀캡이 80% 이하로 떨어지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든 게 맞다.

 

어쨌든 KB의 이번 시즌 셀캡 소진율은... BNK가 새롭게 창단하기 전, 연맹 위탁 구단이던 OK저축은행 시절 수준이 아닌가 싶다.

 

일단 이 결과로 유추할 수 있는 건 KB는 박지수의 다음 시즌 복귀를 철저하고도 간절하게 믿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점이다. 아니면 처절한 바람이랄까?

 

갈라타사라이에서 이번 겨울 시즌에 인정받고, 2025년 WNBA에 진출해서, 겨울 시즌에는 굳이 유럽 리그 뛸 필요 없이 KB로 복귀하리라고... 확신급의 기대를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다면 저 만큼의 공백을 굳이 유지할 필요가 없다. 

 

KB가 사용하지 않은 금액은 연봉 3억원, 수당 1억 5300만원이다. 김단비(우리은행)의 현재 연봉총액과 비슷한 수준이다. 오롯이 박지수에게 들어간다 해도 이상할 것 없는, 딱 그 정도 액수다. KB로서는 박지수를 위한 금액을 남겨뒀다는 느낌이다. 올해 안 쓴다고 내년으로 이월되는 것은 아니지만, 올해 저 부분까지 채워서 지출했다가, 내년에 박지수의 복귀로 인해 그만큼을 다시 비우고자 한다면, 교통정리의 문제가 더 복잡할 것이다. 결국 KB의 셀캡 소진에는 박지수의 빈 자리가 그대로 보인다.

 

그런데... 사실 그렇다해도 꼭 그걸 굳이 저렇게 다 비울 이유가 있을까 싶긴 하다. 물론 '굳이 이유없이 지출할 필요가 있냐'고 하면 할 말 없는 것도 사실이다.

 

다만, KB는 박지수를 잃은 상실감을 저 셀캡 소진율 지표를 통해 세상을 향해 울부짖고 있는 느낌이다...

 

소리 없는 아우성...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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