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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신보다 위험한 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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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 되면 더 이상 정부를 믿어달라혹은 해경을 믿어달라는 말을 할 낯이 있을까? 해경이 세월호 참사와 관련하여 실종자 수를 변경했다. 세월호 침몰 사고가 발생한지 무려 22일 만의 발표다.


김석균 해양경찰청장은 지난 7, 진도군청에서 브리핑을 갖고 선사에서 제출한 탑승객 명단을 토대로 카드매출전표, CCTV, 추가 접수 실종자 등에 대한 확인 작업 등을 벌인 결과 구조자가 2명 감소하고 실종자가 2명 증가했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세월호 총 탑승자가 476명으로 변함이 없는 가운데 구조된 생존자가 172명으로 2명이 줄었고 실종자는 35명으로 2명이 늘어났다. 희생자는 269명이다.
 
해경은 구조된 인원 중 한 명이 본인의 성을 으로 다르게 두 번 기재했고, 한명은 본인이 생존자라고 주장하면서 동승자와 함께 탔다고 증언했지만 실제로는 세월호에 탑승하지 않았던 사람으로 밝혀졌다고 전했다. 그러나 어떤 변명을 댄다 하더라도 이러한 해경의 발표는 구차하기 짝이 없다.
 
해경과 정부 당국은 지난 달 16일 사고 발생 직후 구조된 인원을 제외하고는 단 한 명의 구조도 성공하지 못했다. 그런데도 사고 발생 22일이 지나서야 구조자 숫자가 실제와 다르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이 조차도 스스로 확인한 것이 아니다.
 
중국 대사관 측에서 중국인 희생자가 더 있다고 주장하자 신용카드 매출 전표를 확인한 결과 두 사람이 예약 후 발권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세월호에 탑승한 것을 확인하여 구조자 수가 발표된 것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다.
 
사고 직후 정부는 탑승자와 구조자, 사망자 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했다. 3면이 바다로 이루어진 나라에서 해양 교통에 대해 얼마나 무사안일하게 대처해왔고 안전대책이 엉망이었는지가 적나라하게 드러났고, 대통령과 정부가 그토록 외쳐대던 규제완화가 가장 시급한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과 부끄러운 사회의 치부가 낱낱이 밝혀졌다.
 
초보적이고 후진적인 정부의 헛발질도 급작스러운 사고에 당황했다는 측면에서 볼 때 백번 양보하고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치자.
 
그러나 정부는 지난달 19일, 구조자 수가 당초 179명에서 5명이 줄어든 174명이라고 발표했다. 여러 기관이 구조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동일인이 중복 집계되었다는 것이 이유였다. 사고 발생 후 3일이 지난 시점이었다. 상식적으로 용납이 되지 않는 핑계다.
 
구조자가 분산 수용된 병원에서 구조된 인원을 직접 세어보기만 했어도 이보다는 나았을 것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심지어 사고 발생 후 3일 동안 수색은 제대로 진행도 못하고, 승선자 수를 4, 구조자 수를 6번 정정하는 촌극을 벌였다. 그런데 그로부터 19일이 지나 또다시 구조자 수를 2명 줄였다. 무슨 변명이 필요할까?
 
이번 사고를 통해 해경은 구조적인 문제와 함께 전문성 부족, 예산 문제를 비롯해 각종 비리 등의 문제 앞에 무력하게 노출되어 있음이 드러났다. 단순히 숫자 파악의 오류라고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사람의 생명이 오가는 문제에서 국가의 안전을 책임지는 이들의 발표가 수없이 정정과 번복으로 점철되고 있다. 구조는커녕 숫자파악도 못하는 해경이라는 지적을 어떻게 모면할 수 있단 말인가?
 
믿음은 강압과 세뇌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불신의 요소를 사방에 뿌려놓고 무능과 무책임의 표본이 되었음에도 해경을 믿으라고만 한다.
 
믿음을 얻고 싶으면 그에 합당한 모습부터 보이라. 이는 미취학 아동도 아는 당연한 명제다. 불신보다 위험한 것이 맹신이라는 점에서, 차라리 의심하는 국민이 현명하다. 오히려 이번 사태로 국민이 국가와 행정기관에 갖고 있던 실낱같은 희망과 믿음마저도 사라지고 말았다.
 

만일 누가 믿음을 잃었다면, 그에게는 의지하고 살 수 있는 무엇이 남았는가?’ 영국의 철학자 로저 베이컨(Roger Bacon)의 말이다. 국민이 국가로부터 의지할 수 있는 가장 기본의 조건을 빼앗겼다. 강요 이전에 통렬한 반성과 성찰이 필요하다.


토요경제 / 2014년 5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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