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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왜 '책임'이라는 단어를 두려워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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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수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23,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국가안보실은 재난과 관련해 컨트롤타워가 아니다라고 발표했다. 김 실장은 국가안보실은 안보·통일·국방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한다고 전하며 다만 산하의 위기관리센터에 재난 상황에 대해서도 정보를 빨리 알 수 있는 여건이 갖춰져 있으므로 상황을 확인한 후 관련 수석실에 통보하는 것이 국가안보실의 역할이라고 선을 그었다.

앞장서서 책임회피하는 국가안보실장
김 실장의 이러한 발언은 당연히 엄청난 비난에 직면했다. 야당은 물론 시민들과 심지어 보수진영 인사들도 비판에 가세했다. 일부에서는 김 실장이 말하는 국가 안보에 재난은 포함되지 않는 것이냐고 반문하며 어이없다는 반응을 나타내기도 했다.
 
심지어 이러한 김 실장의 주장은 거짓말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투명사회를위한정보공개센터는 25, 해양수산부의 위기관리 실무매뉴얼을 분석한 결과 국가안보실이 조직도상 보고체계 가장 상위에 존재한다고 밝혔으며, 또한 상황이 발생했을 경우 중앙안전관리위원회와 중앙사고수습본부에 모두 관여하도록 되어있다고 강조했다. 이 뿐이 아니다.
 
김 실장은 지난해 4, 국회 운영위원회에 출석해서 국가안보실은 안보재난국가핵심기반 시설 분야 위기 징후에 대한 24시간 모니터링 체제를 구축하고 있다고 말하며, “국가비상사태에 대비하는 컨트롤타워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국가위기 관리업무 수행체계를 구축하고 있다”라고 말한 바 있다. 본인이 본인 입으로 직접 발언한 것이다. 
 
김 실장이 국회 속기록에도 명시된 본인의 발언을 1년 만에 뒤집은 이유는 무엇일까? 당연히 책임회피 외에는 이유가 없다.
 
비겁해진 대한민국 
국가적인 비극을 차치하고라도 한 무리를 이끄는 수장은 자신의 잘못이 아닐 때에도 전체의 책임을 대신하는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것이 사회를 이끄는 리더십이며, 동요를 막고 안정을 도모하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판단될 때 선택하는 지도층으로서의 결단이다. 때로는 전체를 대신하는 리더와 지도층의 결단이 더 큰 신뢰와 의지로 작용하기도 하며, 실패를 딛고 도약하는 계기와 발판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모습은 우리나라 각 분야에서도 자주 있어왔다그러나 언젠부터인가 이러한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특히 정부에서는 면피성 발언과 책임회피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박근혜 정부 들어 특히 심하다. 심지어 이번 '세월호 참사'처럼 확연히 보이는 지적에 대해서도 구차한 변명으로 국민의 공분만 키우는 행태를 반복하기도 한다.
 
이는 내각에 관료들의 대거 득세한 이후 더욱 눈에 띄는 현상이라고 볼 수도 있다. 대한민국이 비겁해졌다.
 
관료 약진에 따른 부작용만 나타나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후 처음 내각을 구성하면서 관료 출신을 대거 중용했다. 국무총리를 포함한 18명의 국무위원 중 12명이 직접적인 관료 출신이거나 국책 연구기관 출신으로 광의적 의미의 관료였다. 관료 출신은 정무감각이 떨어지고 포용력이 부족하다는 단점이 꾸준히 지적되는 집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 대통령이 이들을 중용한 것은 관료들의 '전문성'을 높게 평가했기 때문이다.
 
관료들의 역할을 바탕으로 가장 비약적인 발전을 보인 나라는 일본이다. 일본은 과거 야마토(大和)조정 당시 중국으로부터 받아들인 율령제를 발전시켜 관료제를 정착시켰다
 
일본에서는 국가 공무원 채용 1종 시험이나 외교관 시험을 통과한 이들과 중앙성청의 고급공무원인 테크노크라트를 일반적으로 관료로 구분하고 있다. 이들은 일본 경제의 고도성장을 이끈 주역들로 평가받고 있지만 관료 조직의 폐쇄성과 규제 및 권한의 남용으로 인한 문제도 함께 지적받고 있다.
 
지난 2009년 여론조사에 의하면 일본 국민들은 일본의 정치와 정책을 리드하고 있는 조직이 관료들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면서도 이들에 대해 대부분 부정적으로 반응했으며 내각을 이끄는 것은 관료가 아닌 정치인이 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일본인들의 정치 불신은 정치인들보다 관료들을 향해 있었다.
 
관료라 함은 쉽게 말해 공무원이다. 일본인들이 일본 사회의 고도성장을 이끌었던 관료조직을 불신하는 이유는 우리 국민이 일부 공무원들에게 갖고 있는 불만과 크게 다르지 않다.
 
철밥그릇’, ‘그들만의 특권’, ‘무사안일주의’, ‘불친절’, ‘권위주위’, ‘상명하복과 같은 태도에 대한 불만이다. 게다가 정치인의 경우는 선거를 통해 국민이 심판을 할 수 있는 반면, 관료는 국민이 나서서 제어할 수 없는 조직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이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 대통령이 관료 출신을 대거 내각에 중용한 것은 분야에 대한 전문성이 떨어지는 정치인의 낙하산 논란을 최대한 배제하고, 관료 출신의 전문성을 최대한 극대화하겠다는 의지였을 것이다. 그러나 관료 조직의 가장 큰 병폐 중의 하나인 '책임 회피'가 박근혜 정권들어 반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정부내에 만연된 보신주의 
정치인들은 여론을 읽는 감각과 정치적 상황 판단에 따라 스스로 책임을 혼자 감당하기도 하고 후퇴하거나 물러서기도 한다. 억울하더라도 민의에 따라 굽히거나 선거 시기의 흐름을 이용하는 영민함, 혹은 간사함도 갖고 있다.
 
그러나 공무원은 다르다. 그들에게 책임을 진다는 의미는 옷을 벗는다는 것이다. 또한, 자리에서 물러난다는 것은 철 밥그릇을 내려 놓는다는 것이다. 본능적으로 문제가 발생했을 때 나서서 책임지기 보다는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먼저다. 이는 사고가 터졌을 때만 발생하는 문제가 아니다.
 
소위 공무원은 일을 만드는 것을 싫어한다라는 말이 있다. 주어진 일만 처리하며 되는 공무원이 굳이 일을 만들어 더 해봤자 이익도 없고, 잘못됐을때 책임만 늘어난다는 거이다.
 
박 대통령이 공무원 개혁을 강조하는 사항에도 이 부분이 포함되어 있다. 일하지 않는 공무원은 필요 없다고 일갈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내각에 중용한 인사의 2/350대 이상의 관료 출신이었다. 수 십 년 간 몸에 익은 습관이 단번에 고쳐지기는 쉽지않다.
 
구태에 익숙한 공무원, 즉 관료들은 일을 추진할 때도 자신이 책임을 지고 과감한 돌파를 하겠다는 주장과 의지를 나타내는 경우가 흔치 않다는 지적이 많다. 누군가의 등을 떠미는 것은 흔해도, 앞서 나가기는 쉽지 않은 공무원 조직 사회의 특징이다.
 
관료가 갖는 장점인 전문성이라는 부분이 순효과로 나타나기도 전에 박 대통령이 구성한 관료 출신 내각은 출범 첫 해부터 불협화음만 만들어왔다.
 
제도의 정비나 발전을 기대하기도 전에 각종 문제와 비리가 터져 나왔고 이에 대한 대책과 문제 제기에 내 책임은 아니다라는 식의 모습이 이어졌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은 박근혜 정부 전체에 만연한 것처럼 보인다. 보신문화와 무책임만 눈에 띈다.
 
국민이 두렵지 않은 관료는 내각에 있을 자격이 없다
국정원 간첩 증거 조작 사건에 대해 책임 있는 태도를 보여야 할 이들은 몰랐다로 일관해왔다. 국정원의 정치 개입 의혹 등 모든 문제에 대해 국정원과 정부의 대응은 지금까지 한결같았다. 국민이 알아서 잊어주기 바란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사상 최대의 정보 유출 사건과 관련하여 카드사와 금융그룹들은 발칵 뒤집혔다. 심지어 새로 부임한 임원진과 사장단까지 징계를 받은 곳도 있었다. 그러나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음에도 금융당국의 수장은 책임론만 나오면 불편한 기색이다. 심지어 정보유출 사고가 연이어 발생하고 절대 없다고 단언했던 2차 피해까지 나왔지만 자리보전에 대한 의지는 한결같다.
 
이번 '세월호 참사'도 마찬가지다집어들면 터지게 되는 이 참사라는 폭탄을 끌어안지 않으려고 서로에게 떠넘기기에 바쁘다. 서로 자기 잘못이 아니라고 여론전에 나서고 있다. 실은 여론이 아니라 대통령에게 자기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엄청난 재난의 참사 앞에 망언과 망동으로 국민에게 두 번 상처를 내는 무능한 관료들과 정치인들은 여전히 민심과 따로 놀고 있다. 국민에게 심판받을 일이 없는 관료들에게는 임면권자가 우선인 것이다. 관료에게는 민주주의도 왕정과 다르지 않을 수 있다. 국민이 두려울 리 없다.
 
민주주의 제도에서 국민을 두려워 하지 않는 이가 내각에 있는 것보다 불행한 정부와 국가가 있을까? 국민을 섬기겠다는 대통령 아래에 있는 그들은 임면권자에게는 한없이 약하지만 국민에게는 당당히 군림하는 모습만 보여줬다.
 
대통령 순방길에 성추행 추문에 휘말린 대변인인 대국민 사과에 나서며 국민보다 대통령에게 머리를 숙였고, 경제부총리는 대통령으로부터 적절치 못한 발언으로 국민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불신을 키운 공직자로 지적되기도 했다.
 
국가적 재해이자 국민적 비극인 이번 사태에 잇따르고 있는 고위 공직자들의 부적절한 처신과 발언을 보고 있자면, 이들이 얼마나 국민을 가볍게 여기고 있는지를 충분히 가늠할 수 있다. 내각과 고위직에서의 구태와 병폐가 만연하고 현실이 처참한데, 현장에서의 책임감을 요구하는 것은 어쩌면 욕심일지도 모른다.
 
미국의 35대 대통령 존 F. 케네디(John Fitzgerald Kennedy,1917~1963)국가는 시민의 하인이지 주인이 아니다라고 규정했으며, 유태인 최초로 미국 연방대법관에 올랐던 루이스 브랜다이스(Louis Dembitz Brandeis,1856~1941) 판사는 가장 중요한 공직은 일반 시민이라고 강조했다.
 
집권 1년 여 동안 야심차게 꾸려왔던 관료 위주의 내각이 성과보다는 패악과 불찰로 오명을 뒤집어썼다는 것은 박 대통령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제는 박 대통령 스스로도 관료를 일하게 하는 법을 모른다는 오명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이미 지난해 말부터 꾸준히 전면적인 개각론이 제기되고 있다. 박 대통령이 여러 가지 개혁을 추진하면서 공무원 개혁에 특별히 힘을 주는 이유도 이러한 부분에 대한 우려가 충분히 작용한 것이라 생각한다 
 
국민은 비탄에 빠져있지만 정치권은 여전히 선거에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번 참사가 비록 선거정국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벌어진 일이었다 해도 박 대통령은 공무원 개혁의 일환이라든가, ‘민심전환용 개각카드등의 편협한 생각보다는 남아있는 자신의 임기 전체를 아우르는 큰 그림에서의 결단을 내릴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카트리나 모멘트’(Katrina moment)이상을 걱정하고 감싸 안는 지혜와 포용을 발휘해주기를 감히 바래본다.


토요경제 / 2014년 4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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