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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그룹은 스포츠단에 지원을 하지 않는다?

삼성그룹이 모기업으로 있는 프로스포츠 구단들에 대한 이야기가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다.

 

‘삼성이 투자를 줄여 스포츠팀들이 망했다’라는 것이며, 그 중심에는 제일기획이 등장한다. 삼성이 지원을 줄이기 위해 스포츠단을 제일기획으로 모두 이관했고, 무능한 제일기획은 삼성 스포츠단을 이끌 능력과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삼성 스포츠단의 부활을 위해 삼성그룹이 다시 투자 규모를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미 이전부터 팬들을 중심으로 주장되던 이야기였지만 K리그에서 수원 삼성이 2부리그로 떨어지면서 다시 한 번, 이 주장이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다. 

 

 

2015년, 삼성라이온즈 경기 관람을 위해 잠실야구장을 방문한 이재용 회장



스포츠단을 제일기획에 버렸다?

우선 이 부분부터 짚을 필요가 있다. 삼성은 스포츠단에 대한 투자를 줄이기 위해 제일기획에 스포츠단 전체를 이관했다고 한다. 정말일까?

삼성그룹은 대한민국 기업서열 1위의 재벌이며 60개 이상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범삼성가라고 하면 CJ, 신세계, 한솔, 중앙(중앙일보, JTBC 등), BGF(예전 보광, CU 등) 등을 포함할 수 있지만, 삼성 계열 자체로만 따지면 그렇다. 스포츠단은 주요 계열사에 분산 소속되어 있었는데, 2015년 이후 일괄적으로 제일기획이 맡게 됐다. 이 과정에서부터 “아버지인 이건희 전 회장에 비해 스포츠에 관심이 없는 이재용 회장이 스포츠를 홀대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삼성이 이건희 전 회장 시절만큼, 스포츠단을 지원하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래서 제일기획에 스포츠단을 몰아줬다고 볼 수는 없다.

자체 스포츠단에 대한 지원은 줄였지만, 스포츠에 대한 전체적인 투자를 대폭 줄였다고 보기는 힘들다. 삼성이 투자를 줄인 것은 국내 스포츠다. 가시적으로 보이는 것은 프로 스포츠지만, 삼성은 산하의 럭비단(삼성중공업 럭비단)을 해체했고, 이건희 전 회장이 무려 16년 동안 회장으로 재임했던 대한레슬링협회에 대한 후원도 중단했다. 삼성은 여전히 국내외 많은 스포츠 대회를 주최 및 후원하고 있으며, 국내 유일의 올림픽 후원사(삼성전자)다. 도쿄 올림픽과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코로나19와 정치 이슈로 제대로 된 성과를 내지 못했지만, 삼성전자는 꾸준히 올림픽 스폰서의 위치를 놓지 않고 있다. 심지어 가장 높은 등급인 월드와이드 파트너 지위를 유지하며, 올림픽 패밀리로 인정받고 있다. 

삼성은 기업 경영과 관련한 스포츠, 문화 및 사회공헌활동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는 그룹집단이다. 이건희 전 회장은 21년간 IOC 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삼성의 스포츠단 제일기획 이관은 지원 축소보다는 이 부분의 연장선으로 봐야 한다.

삼성이 2015년 말부터 스포츠단을 제일기획으로 이관했다. 당시 제일기획의 스포츠사업을 총괄하고 있던 인사는 김재열 전 사장이다. 대한빙상경기연맹 회장, 소치 동계올림픽 선수단 단장,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 부위원장도 맡았던 김 전 사장은 이재용 회장의 동생인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의 남편이다. 삼성그룹은 이건희 회장을 이어, 사위인 김재열 사장을 IOC 위원으로 만들고자 했다. 김재열 사장 산하에 삼성그룹의 스포츠단을 몰아준 것은 IOC 위원 만들기의 일환이었다. IOC 위원이 될 자격 조건을 위해 삼성이라는 대기업의 스포츠단을 총괄하는 대표라는 명함을 만들어 줬다.

 


삼성의 계획은 순탄하지 못했지만 결과로 이어졌다. 김재열 전 사장은 이후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관련자로 등장했고, 한동안 부침이 있었다. 하지만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집행위원을 거쳐 2022년에는 ISU 회장에 올랐고, 지난 10월에 결국 IOC 위원으로 선출됐다. 

한편, 김재열 회장의 질풍가도가 가장 맘에 들지 않았던 쪽은 SBS다. SBS는 지상파 방송사 중 동계 스포츠를 가장 적극적으로 중계했고, 관심을 보였다. SBS의 지주사라고 할 수 있는 TY홀딩스(태영그룹)의 윤석민 회장은 대한스키협회 회장이었고, 올림픽 선수단 단장을 원했다. 스키협회와 빙상연맹 회장이 번갈아가며 동계올림픽 단장을 맡았기에 당연히 소치동계올림픽 선수단 단장은 윤 회장의 몫이라 여겼지만, ‘갑툭튀’인 김재열 전 사장이 차지하게 됐다. 윤 회장은 이에 불만을 품고 “이건희의 사위 특혜”라고 반발하며 스키협회 회장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갑작스런 윤 회장의 사임에도 흔들림은 없었다. 당시는 이명박 대통령 시절. 정권과 매우 우호적인 관계였던 롯데그룹의 신동빈 회장이 스키협회를 맡게 됐고, 이후 현재까지 스키협회는 롯데그룹 계열 인사가 회장직을 꾸준히 수행하고 있다. 평창동계올림픽 당시 김보름-노선영 사건 때, SBS가 이례적으로 노선영 단독 인터뷰 등을 진행한 것에 대해서도 이에 대한 불만이 아니냐는 의견도 있었다.



삼성그룹의 기존 계열사들은 제일기획으로 스포츠단이 이관된 후에도 자신들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토록 했고, 메인 스폰서로서의 지원을 이어갔다. 지원 규모는 줄었지만, 손 놓고 유기한 것도 아니다. 삼성그룹의 스포츠단 지원 축소는 제일기획 이관과는 무관하게 꾸준히 진행되던 사항이다. 가장 눈에 띄는 프로야구가 2015년까지 한국시리즈에 올랐고 2016년부터 순위가 급락해, 해당 시점에 있었던 가장 큰 이벤트인 제일기획 이관이 부각됐지만, 삼성그룹은 긴축에 들어가 있었고, 이관을 하지 않았다해도 지원 축소는 꾸준한 수순이었다. 이번에 이슈가 된 K리그의 수원 삼성도 이미 윤성효 감독 시절에 투자와 지원 규모가 이전과는 다르게 조정되고 있었다. 

 

 

김재열 ISU회장-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부부



삼성은 왜 스포츠단 지원 규모를 줄였을까?

답은 매우 간단하고 명료하다.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프로야구에서 삼성은 창단 이래로 꾸준히 가장 많은 투자를 한 구단이다. 하지만 삼성 라이온즈가 본격적으로 ‘돈성’ 소리를 들은 것은 세기말을 거치던 시점 부터다. 많은 투자에도 불구하고 삼성은 1983년 전후기 통합 우승 외에는 단 한 번의 우승도 차지하지 못했다. 한국시리즈만 나서면 작아졌다. 우승 보너스로 과자 세트를 지급하던 ‘해태 왕조’에 밀린 가장 큰 피해자였지만, 그렇다고 삼성이 이를 극복하기 위해 금고를 더 활짝 열지는 않았다.

삼성 라이온즈의 ‘돈성’ 등극 시점은 현대 유니콘스 전성기와 비슷하다. 삼미-청보-태평양으로 이어지는 동안 KBO를 대표하는 최약체의 대명사였던 팀을 인수하여 창단한 현대는 압도적인 투자 속에 창단 3년 만에 우승을 차지했다. 현대 역시 ‘돈대’ 소리를 들었다. 고 정몽헌 전 회장이 야구를 좋아했던 탓에 현대전자가 큰 손으로 등장해 전폭적인 지지를 아끼지 않았고, 삼성전자가 배경인 삼성과 라이벌리를 형성했다. 두 팀은 순위 여부는 물론 맞대결에서도 승리 수당을 따로 책정 할만큼 치열한 신경전을 펼쳤다. 심지어 경기 중에 승리 수당이 더 높아질 정도로 이들의 자존심 싸움은 대단했다. 

이 무렵 삼성은 모든 스포츠단에 ‘삼성이 최고’라는 인식을 심어주며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삼성 스포츠단의 황금기다. 2007년에는 용인에 삼성 트레이닝센터(STC)를 건립하기도 했다. 전체적으로 대한민국 스포츠 발전에 기여 했지만, ‘2등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는 삼성그룹의 1등주의를 대표하는 메인 보드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의 삼성에게는 그런 간판이 필요 없다. 굳이 그런 사족을 달지 않아도 삼성그룹은 국내에 경쟁자가 없는 독보적 1등이다. 2021년에는 일본 기업 순위 1위인 도요타자동차보다 시가총액에서 2배 이상 앞섰다.

 

포브스가 지난 6월에 발표한 The Global 2000에서 삼성전자(세계 14위)는 도요타자동차(세계 13위)보다 총 매출과 자산 규모에서 밀렸다. 하지만 순이익은 2배 가까이 높았고, 시장 가치는 도요타자동차가 1882억 달러였던 반면, 삼성전자는 무려 3343억 달러였다. 이 순위에서 100위권 내의 한국 기업은 삼성전자가 유일하다. 현대자동차가 104위, 기아자동차가 256위다. 현대차와 기아차의 매출, 이익, 자산, 시장가치를 모두 더해도 삼성전자에 미치지 못한다. 삼성그룹의 다른 계열사인 삼성물산(513위), 삼성생명(566위), 삼성 SDI(590위), 삼성화재(790위) 등도 세계 1000등 안에 위치하고 있다.

삼성은 이제 국내 스포츠에서 누군가와의 대결을 통해 승리를 차지하고 그 기쁨을 만끽할 레벨과 체급이 아니다. 과거에는 현대와의 재계 라이벌, LG와의 전자 라이벌 등, 스포츠에서도 여러 가지 자존심 싸움이 신경 쓰였지만, 지금은 밖에서 아무리 라이벌이라고 말을 만들어도 아랑곳 할 이유가 없다.

 

The Global 2000에 의하면, 한국 기업 중 삼성전자를 제외한 나머지 상위 20개 기업의 시장 가치 합계(3376억 달러)가 삼성전자(3343억 달러)와 비슷하다. 심지어 상위 20개 기업에는 삼성의 계열사 3개도 포함되어 있다. 현재 삼성의 경쟁상대는 애플, MS같은 글로벌 대기업이지 국내의 다른 기업들이 아니다. 자사 스포츠단에 대한 투자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무형의 이익이 없다.

 

 



동기 부여? 광고 효과?


스포츠에 투자하는 기업에는 이유와 명분이 있다. 지금은 오너가 원해서 무작정 집행하던 시대가 아니다. 투자와 지원에 대한 확실한 근거가 필요하다.

OK저축은행은 러시앤캐시를 운영하는 아프로파이낸셜대부가 예주저축은행을 인수한 것이다. 우리캐피탈 배구단 해체 위기에 네이밍 스폰서로 등장했던 러시앤캐시는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배구계에서 냉대를 받고 우리캐피탈 배구단 인수에는 실패했지만, OK저축은행 배구단을 창단했고, 2018년 KDB생명의 무책임한 해체로 위기에 봉착한 WKBL 연맹위탁팀을 1년간 네이밍 스폰서의 형태로 지원했다. 럭비단도 운영 중이다.

 

OK저축은행에게 스포츠단은 분명한 가치가 있었다. OK저축은행의 시작은 앞서 언급했듯 대부 업체인 러시앤캐시다. 저축은행을 인수하고 운영했지만 이들에 대해서는 금융업보다는 대부업이라는 인식이 더 강했고(물론 대부업 자체도 금융업의 일부지만), 직원들 역시 ‘행원’보다는 ‘사채업자’라는 비아냥을 듣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배구단으로 인해 '은행'이라는 브랜드가 강조됐다. 당시 OK저축은행의 한 관계자는 “스포츠팀을 운영한 후, 우리 직원들이 당당하게 회사 배지를 가슴에 달고 다닐 수 있게 됐다”는 말을 했다. 구성원들의 소속감과 자부심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이다.

2019년 창단한 여자농구단 BNK도 비슷하다. 부산은행과 경남은행이라는 이름은 익숙하지만 BNK 자체에 대한 인지도는 어디까지나 부산-경남권에 한정되어 있었다. BNK의 은행과 캐피탈이 서울과 수도권에도 있다는 것, BNK라는 브랜드가 금융이라는 것이 전국적으로 알려진 것은 농구단의 역할이 컸다. 또한, 지방은행인 BNK에게 대한민국 4대 금융그룹이 모두 참여하고 있는 여자농구에서 이들과 동급의 테이블 파트너가 되는 것도 내부적으로 상당한 가치가 있는 부분이었다. 

K리그의 '큰 손' 현대자동차에게는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라는 상당한 메리트가 있다. 현대자동차에게 중국과 인도는 놓쳐서는 안 될 거대한 시장이다. 두 나라 28억 인구가 높은 관심을 갖고 있는 ACL은 현대자동차에게 매우 중요한 매체이고, 광고판이다. 과거 현대차의 한 관계자는 “우승 상금도 얼마 안 되는 K리그 우승이 기업에게 큰 가치를 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대륙의 많은 인구가 보는 앞에서 가슴팍에 에쿠스, 제네시스를 달고 뛰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라고 강조한 바 있다. 현대 브랜드를 가슴에 달고, 현대라는 이름으로 뛰는 팀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보여주는 것이 상당한 가치가 있다.

대전 시티즌에 통 큰 지원자로 나선 하나금융그룹도 마찬가지다. 함영주 하나금융그룹 회장이 지역 출신이기도 하지만, 이러한 지원의 가장 큰 이유는 그룹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하나금융그룹은 동남아 진출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우리나라는 인구대비 통장 발급률이 90%가 넘지만, 동남아의 경우에는 30%에도 못 미친다. 은행 부도 사태가 빈번하게 일어나며 은행에 대한 신뢰가 높지 않기 때문. 10여개국으로 구성된 동남아시아의 인구는 7억에 육박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필리핀, 베트남의 인구는 1억이 넘는다. 게다가 동남아는 출산률도 높고, 중위 연령이 30.2세로 상당히 젊은 나라다. 꾸준히 발전하고 있는 동남아의 경제력과 생활 수준을 고려할 때, 금융기관의 필요성은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 소매금융 자체가 현대 금융업의 전부라고 할 수는 없지만, 동남아시아는 분명히 빅마켓이다. 그리고 동남아 역시 축구에 열광하는 나라들이 대부분이다. 하나금융그룹은 자사의 모델로 꾸준히 손흥민을 내세우고 있고, 이제는 대전 '하나' 시티즌이 ACL 무대에 올라 본격적으로 신뢰를 주는 브랜드로 동남아에 깊은 인상을 남기고자 하는 목적이 있다.

그런데 삼성에게는 그런 것들이 없다. 

 

삼성 역시 TV와 노트북, 냉장고, 스마트폰을 팔아야 하지만, 이미 삼성이라는 브랜드가 그 이상의 가치를 갖고 있다. 삼성은 대한민국 자체보다도 높은 브랜드 가치를 갖고 있는 이름이다. OK저축은행이나 BNK같은 이미지 효과도, 현대차나 하나금융그룹같은 시장 효과도 삼성에게는 스포츠를 통해 구현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대기업이 직접 스포츠구단을 운영하는 것이 생소한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불필요한 비용의 지출이라는 인식만 높일 뿐이다. 

국내에서 삼성이 스포츠단에 대한 지원을 줄였다고 아무리 성토해도 삼성에게는 큰 타격이 없다. 글로벌 기업인 삼성에게 대한민국 자체가 스몰 마켓이고, 또 그 스몰 마켓 조차도 스포츠단 지원 감소로 인한 이미지 타격으로 매출 손해같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삼성은 돈이 많고 재계순위 1위인 기업이니 스포츠단에 돈을 많이 써야한다는 논리는 통하지 않는다. 돈 많다고 무작정 많이 쓰라는 논리가 통용되는 시대가 아니다. 사회공헌활동에 대한 책임을 지적한다해도 삼성은 할 말이 많다. 삼성은 사회복지, 환경, 문화, 미술, 의료, 학교, 장학재단, 과학기술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사회공헌 문화예술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사회공헌 활동을 충분히 진행하고 있다. 스포츠단 역시 삼성 라이온즈, 수원 삼성, 삼성 썬더스, 삼성생명 블루밍스, 삼성화재 블루팡스 등 5개의 프로 구단을 비롯해, 탁구, 레슬링, 배드민턴, 육상, 승마, 태권도 등 10개 넘는 팀을 운영하고 있다.계열 스포츠단에 대한 지원 규모를 외부에서 지적할 수 없는 이유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삼성의 지원이 예전보다 줄었을 뿐, 정상적인 구단 운영이 어려운 수준은 아니라는 것이다. 2022년 기준으로 프로야구 삼성라이온즈의 연봉 총액은 리그 3위였다. 지원이 부족하다는 것은 예전보다 줄었다는 것이지 객관적인 잣대를 놓고 봤을 때 부족하다고 할 수 없는 부분이다.

삼성은 농구에서 팀 성적과 관계없이 샐러리캡을 거의 다 소진하는 팀이었다. 정해져있는 셀러리캡은 어차피 선수들에게 지급되는 금액이기에 “최대한의 지원을 할 테니, 거기에 어울리는 결과를 가져와라”는 메시지였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삼성생명이 WKBL에서 우승을 했을 때에도 샐러리캡을 전부 소진하지는 않았다. 냉정하게 평가하고 거기에 맞는 금액을 제시한다. 이제는 “각자가 이루어낸 성과에 맞춰 최대한의 지원을 하겠다”로 바뀐 것이다. 지원의 축소지만, 합리적인 결정이라고 할 수도 있다. 여론의 질타를 받았지만 수원 삼성의 오동석 단장이 신임 감독으로 “이정효 감독이나 김기동 감독 같은 인물”을 언급한 데에서도 그 기조를 볼 수 있다. 두 감독이 맡은 광주 FC와 포항 스틸러스는 리그에서 선수층이 가장 얇고, 투자 비용도 가장 적었던 팀이다. 효율성을 보여주는 지도자가 그에 합당한 결과를 낼 때, 그에 부합하는 지원을 하겠다는 것이 삼성의 스포츠단 운영의 현재 기조라고 볼 수 있다.

 

 

고 이건희 회장과 이재용 회장

삼성 스포츠단의 미래는?

굳이 삼성그룹은 스포츠단의 운영 기조를 바꿀 이유가 없다. 앞으로도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팬들은 물론 외부에서도 이러한 삼성그룹의 운영방침이 불만이다. 과거의 향수를 안고 있는 삼성 팬들 입장에서는 ‘선수 쇼핑=전술=성적’이던 시절의 금수저 과거가 그리울 수밖에 없다. “아빠 저거 사줘”하면 다 되던 시절이 가장 통쾌한 해법이기도 하다. 2부리그로 추락한 수원 삼성은 ‘K리그판 갈락티코’라고 자부했던 팀이었다. 하지만 삼성은 그 시절로 돌아갈 마음은 그리 크지 않은 것 같다. 

관계자들과 스포츠 관련 업종 종사자들 역시 삼성이 다시 지원 규모를 늘리기를 바라고 있다. 삼성이 투자와 지원 면에서 리더 역할을 해줘야 다른 기업들의 지갑도 더 열릴 수 있고, 전체 시장의 규모가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꾸준히 수원 삼성의 2부리그 추락에 대해 ‘스포츠단 제일기획 이관’을 언급하며 직간접적으로 투자 귬모와 지원을 지적한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삼성그룹이 그러한 여론에 부담을 느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그로 인해 삼성이 받는 타격이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삼성그룹이 자사 스포츠단에 대한 지원을 줄인다는 것은 투자자들의 입장에서는 희소식이다. 

여기에 덧붙여 등장하는 것이 프런트 책임론이다. 삼성 스포츠단의 추락에 대해, 야구는 물론 축구와 농구에서도 꾸준히 지원 문제와 더불어 ‘무능한 프런트’라는 언급이 따라다닌다. 실무진은 물론, ‘규모의 경제’가 필요한 분야에서 관리직의 능력은 분명 큰 부분이다. 대한민국 스포츠에서는 여러 종목에서 이런 부분의 문제가 드러난 바 있다. 심지어 신임 단장의 행보 하나로 팀이 나락으로 떨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가장 인재풀이 넓다고 할 수 있는 ‘글로벌 대기업’ 삼성에서 유독 프런트 문제가 여러 종목에 거쳐 등장하는 이유는 뭘까? 오히려 너무 잘 알기 때문은 아닐까?

대한민국에서 ‘프런트 야구’, ‘프런트 축구’, ‘프런트 농구’라는 말이 가장 많이 언급되는 팀이 삼성이다. 삼성에 배구단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프런트 배구’라는 말은 들어보지 못해서 생략한다.(물론 야구에서는 영화 ‘머니볼’ 효과인지 언제부터인가 ‘프런트 야구’라는 말이 전방위적으로 등장했다.) 프런트의 역할에 대해 가장 많이 언급하고, 실제로 실무자들이 미국이나 유럽의 예를 공부하고 확인하며 언급하고 적극 개입하는 부분은 삼성이 절대적으로 1등인 것 같다. 

 

그런데 생각해 볼 부분이 있다. 국내에서 투자 및 지원 대비 좋은 성적을 낸 팀들의 경우, 프런트가 획기적인 장점을 발휘한 예가 과연 있었던가? ‘화수분 야구’로 평가된 두산 베어스가 스카우트팀과 2군 육성 기조에 대해 찬사를 받은 것이 유일한 사례인 것 같다.

없는 살림에 꾸준히 성적을 내고 있는 KBO의 히어로즈에 대해 “프런트가 능력있다”고 평가하는 칭찬은 거의 들어본 적이 없다. 보통 “장사꾼들”이라고 폄하한다. 경영진의 법적인 문제가 등장하는 것 등을 보면, 좋은 평가를 하기 힘든 게 사실이긴 하다.

K리그의 포항스틸러스나 광주 FC 역시 프런트가 기민하고 훌륭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프로 스포츠 관련 협력업체에 종사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확실히 자금력 있는 구단들이 일을 잘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들이 평가하는 ‘일을 잘 한다’의 범주는 당연히 프런트에 국한된다. 

능력 있는 감독을 선임한 후, 전면에 나서지 않고 잠자코 있었던 것이 오히려 성과를 냈다는 평가를 받은 이들의 역할이었다. 감독의 요청에 가부 판단만 했다. 지난 시즌 KBL 우승팀인 KGC인삼공사(현 정관장 레드부스터스) 역시 프런트가 잘했다는 평가는 없었다. 오히려 우승 후 비시즌을 지나며 주요 FA를 놓쳐 비난의 중심에 서기만 했다. 

몇 년 전,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아이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할아버지의 재력과 엄마의 정보력과 아빠의 무관심이 필요하다는 말. 오히려 대한민국 스포츠에서 가성비의 성과를 낸 팀들의 경우 프런트는 거의 아빠의 역할에 가까웠다는 생각이다. 무언가를 나서서 적극적으로 한다기보다 운신의 폭을 최소한으로 하며, 주어진 가이드에 충실했다. 감독 모르게 선수를 파는 경우는 있었어도, 가용 비용 안에서 선수 영입과 관련해 감독과 각을 세우지는 않았다. 그 부분은 자신들의 영역 밖이었다. 뒤집으면, 능력 있는 지도자를 선임하고 그 지도자가 꿋꿋이 자기 주관대로 하도록 두었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누군가를 임명했지만, 다른 팀만큼 제대로 된 지원을 할 수가 없기에, 한 발 물러서 아무말 하지 않았던 것이 좋은 결과로 이어지면, 방임은 인내와 신뢰로 치환된다.

반면 삼성의 프런트들은 너무나 스포츠에 관심이 많고, 선수 출신과도 토론을 펼칠만큼 해당 종목에 조예가 깊었고, 미국이나 유럽의 프런트가 일하는 방식, 그리고 그들의 권리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 선수 영입과 선수단 관리에 대해서도 본인들의 주관이 확실하고, 감독이 단기간의 성과에 집중한다면, 본인들은 팀의 미래까지 먼 시야로 사고한다는 믿음이 있었다. 어쩌면 과유불급이라 해야 할까?

프런트를 바꾼다해도 당연히 더 많이 공부하고, 프런트 중심의 스포츠에 대한 이해가 더 깊은 인사가 등장할 것이다. 이들에게 방임은 무책임이다. 하지만 결과가 어느 쪽에 더 긍정적일지는 장담할 수 없다. 그래서 단기간에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날 것 같지는 않다.

결론적으로 자사 스포츠단에 대한 삼성의 지원이 과거 수준으로 돌아갈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고 본다. 수원 삼성의 2부행이 삼성그룹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지만, 삼성이라는 초대형 글로벌 그룹에게 자사 축구단이 우승을 하든, 1부에 있든, 2부에 있든, 그 자체가 자존심의 범위는 아닐 것이다. 물론 우승에 의미를 두지 않는 것은 아니다. 2021년 삼성생명이 WKBL에서 믿기지 않는 업셋 우승을 차지했을 때, 삼성생명은 물론 삼성전자도 그 결과에 매우 고무적인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그 결과에 오너가가 직접 만세를 같이 부를 시기는 이미 한참 전에 지난 게 사실이다.

삼성은 자사 스포츠단에 대한 비난 여론이 지나치다는 판단이 들면 언제라도 철수할 수 있다. 지금 삼성의 스포츠단 운영이 불만인 이들은 그 가능성을 저울질 하기 보다는 만약 삼성이 철수할 경우 대안이 있는가를 생각을 해봐야 한다. 삼성이 특정 구단을 해체할 경우, 삼성보다 더 나은 지원을 보장할 인수자가 등장할 수 있을까? 여러 조건을 고려해도 지금의 삼성보다 더 나은 선택지는 찾기 힘들다. 각 종목 관계자들도 삼성의 투자 및 지원 축소는 아쉽지만, 불필요한 구설로 인해 삼성이 발을 빼는 결과가 발생하는 것보다 더 나쁜 시나리오는 없다. 어떻게든 삼성이 해당 종목에 남아있도록 하는 것이 우선이다.

수원 삼성의 2부행은 지원 축소의 처참한 결과라기보다, 지원 축소의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기후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생명체가 멸종한 것과 다르지 않다. 같은 종목 포항의 경우, 이미 2000년대 초반부터 포스코의 지원이 빈약해졌다. 현재는 시민구단보다도 모자란 지원 속에 시즌을 치른다. 포항 역시 프런트 문제에 속앓이를 한 바 있다. 플레이오프에서 연이은 업셋으로 역전 우승을 차지하자 당시 사장이 선수들에게 약속됐던 연승 수당과 우승 수당 중 하나만 선택하라고 압박했다. 당연히 선수들이 거부하자 다음부터는 연봉 협상시 무조건 마이너스 옵션을 포함하라고 윽박을 지르기도 했다. 하지만 그래도 최하위로 내려앉은 적은 없다. 10개 구단 중 9위를 기록(2000년)했던 게 모기업의 지원이 유명무실해진 후, 포항이 기록한 최하 성적이다. 사실 2000년만해도 지금에 비하면 지원이 윤택한 편이었다. 이후 승강제 실시 이전에도 포항은 승강 플레이오프권인 하위 3위 이내로 떨어진 적이 없다.(물론 당장 다음 시즌에 그렇게 될 수도 있다.) 꾸준히 재기되고 있는 지원과 투자, 프런트 문제 외에 팬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있는 삼성 스포츠단 소속의 선수들도 달라진 상황에 충분히 절박했는지에 대해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이미 다양한 종목에서 ‘지원=결과’라는 공식이 깨지고 있다. 언더독 팀의 반란은 일회성이어야 긍정적이다. 이런 팀의 좋은 결과가 꾸준하면 종목 전반에 투자 침체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없는 집에 주구장창 지기만 하면서 아낌없이 지갑을 열고 싶지는 않다. 당연히 “너는 이만큼 가져가면서 왜 쟤만큼 못해?”라고 추궁할 수밖에 없다. 야구에서 두산과 키움이, 축구에서 포항과 광주가, 농구에서는 캐롯이 성과를 냈다.

 

삼성스포츠단 안에서도 성공의 예가 없는 것은 아니다. WKBL의 삼성생명은 다른 스포츠단에 비해 견고하다. 부침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삼성생명은 꾸준히 상위권 전력과 플레이오프 성적을 유지하고 있다. 삼성생명의 샐러리캡 소진율은 현재 96.71%로 우리은행과 KB(이상 100%), 신한은행(97.71%)에 이어 6개팀 중 4위다. 5위 BNK(96.43%)와도 얼마 차이가 나지 않는다. 삼성생명은 WKBL에서 가장 두터운 준주전급 선수층을 갖추고 있으며, 젊은 유망주들이 많다. WKBL에 샐러리캡이 존재하는 종목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제한규정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는 있지만, 바뀐 환경에서 성과를 낼 수 있는 예를 분명 보여주고 있는 팀이다.

 

지원 확대가 솔루션일까? 아마 삼성그룹의 판단은 다를 것이다. 대부분의 시선은 삼성그룹을 향해있지만, 지금이 정말 위기라고 생각한다면, 모기업이 아닌 각개의 스포츠단 자체에서 결과를 찾아야 할 것이다. 방법도 당연히 그들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