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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 FC서울로 간 김기동 감독, 자신과 포항을 위한 최선의 선택

 

FC서울이 본격적인 훈련에 돌입했다. 뭔가 어색했던 ‘김기동 FC서울 감독’이라는 단어도 조금 더 익숙함을 더했다. 포항 팬들에게 가장 큰 자부심 중 하나였던 그는 새로운 팀으로 떠나며 일부 팬들에게 결국 배신자라는 비난도 들어야 했다. 포항 써포터였던 나에게도 김기동이 포항이 아닌 서울의 감독이라는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하지만 최근 몇 년, 나는 그에게 “기회가 되면 포항을 떠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그리고 포항 감독을 내려놓고 FC서울을 선택한 것은 감독으로서 현명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의 선택은 누구에게도 비난받을 이유가 없다. 

선수로서, 지도자로서...

1972년생인 김기동 감독은 당시로서는 생소했던 연습생 과정을 통해 프로에 입단했다. 신평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대학 진학에 실패했고, 1991년 포항에 연습생으로 입단했다. 크게 주목받지 못하고 1군 무대에서 단 한 경기도 뛰지 못했던 ‘선수 김기동’은 1993년 유공(당시 부천 SK, 현 제주 유나이티드)으로 이적했고, 박성화 감독을 거쳐 발레리 니폼니시 감독을 만나며 인생역전에 성공한다. 니폼니시 감독의 ‘니포축구’는 미드필더 중심의 패스 플레이를 앞세워 K리그에 신선한 충격을 던졌다. 김기동은 핵심 역할을 한 윤정환, 헝가리 용병 조셉은 물론 윤정춘, 이을용 등과 니포축구를 이끌어가는 미드필더로 급부상했다. 그리고 2003년 포항으로 다시 복귀했다. 2004년부터는 팀의 주장을 맡았고, 최순호-세르지오 파리아스-황선홍 감독을 거치며 K리그, FA컵, AFC 챔피언스리그, 피스컵 우승을 경험했다. SK에서 274경기를 뛰었던 그는 2011년까지 포항에서 227경기를 더 뛰면서 K리그에서 필드플레이어 최초로 개인 통산 500경기를 넘어섰다. 

2011시즌을 마치고 은퇴한 김기동은 영국에서 지도자 연수를 했고, 2013년 성남 일화의 스카우터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2013년 12월, 대한민국 U-22 대표팀 코치로 발탁됐고, 2014 인천아시안게임 금메달, 2016 AFC U-23 챔피언십 준우승, 2016 리우 올림픽 8강을 함께했다. 그리고 리우 올림픽 직후, 최진철 감독이 성적 부진으로 물러난 포항에 최순호 감독을 보좌하는 수석코치로 합류했다. 최순호 감독 복귀 이후 포항의 반등은 손쉽게 이어지지 않았다. 2016년 9위는 최진철 감독 시절의 부진을 이어받았다 치더라도, 2017년에도 상위 스플릿 진출에 실패했다. 2018년에 리그 4위를 차지하며 희망을 보였지만 2019년 초, 다시 초반 침체에 빠졌고, FA컵에서는 K리그 팀답지 않게 4년 연속 32강 탈락이라는 치욕을 당했다. 결국 최순호 감독이 경질되고 수석코치였던 김기동이 감독으로 승격했다.

이례적인 결정이었다. 성적 부진을 오롯이 감독 한 명의 책임으로 돌리기는 어렵다. 성적 부진을 이유로 감독이 물러난다면 코칭스태프 역시 연대 책임을 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수석코치라면 더더욱 그렇다. 시즌 중 갑작스러운 경질로 팀을 이끌 지도자가 부재한 상황이라면 수석코치에게 감독 대행을 시키고, 새로운 감독을 물색한다. 하지만 포항은 최순호 감독 경질 사흘 만에 김기동 수석코치를 정식 감독으로 임명했다. 

김기동 감독 부임 후 포항은 4연승을 달렸다. 2승 1무 5패로 리그 10위, 원정 3경기 연속 무득점 등 답답한 모습을 보이던 포항은 공격적인 축구로 내용과 결과를 모두 잡았다. 4연승을 마친 후, 11경기에서 1승 4무 6패의 부진에 빠지며 다시 위기를 맞았지만, 8월 말부터 5승 1무로 분위기 반등에 성공했다. 특히 고비마다 ‘동해안 더비’ 상대이자 리그의 대표적 강호인 울산을 잡았고, 10위까지 떨어졌던 팀을 4위로 끌어올리며 시즌을 마쳤다.

2020시즌에는 공격 축구를 더욱 강화해 리그 최다득점 팀이 됐고, 양대 큰 손인 전북과 울산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FA컵에서도 4강까지 올랐다. 시즌 더블을 기록한 전북의 모라이스 감독을 제치고 감독상을 수상했는데, 3위팀 감독의 감독상 수상은 K리그 최초였다.

리그에서 부침(9위)이 있었던 2021시즌에는 AFC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이라는 성과를 거뒀고, 2022시즌에는 다시 리그 3위로 올라섰다. 2023시즌에는 리그 2위와 더불어 FA컵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추춘제로 바뀐 AFC 챔피언스리그에서 K리그 팀 중 가장 우수한 내용과 결과를 자랑하며 16강에 진출시켰다. 포항은 다음 달 전북과 16강을 갖는다. 김기동 감독은 2023년 KFA 올해의 지도자상도 수상했다.

 



포항, 김기동을 담을 수 없는 그릇

그런 김기동이 포항을 떠나 FC서울의 사령탑이 됐다. 부임과 동시에 확실한 족적을 남겼고, 감독으로 치른 5시즌 동안 성과가 없던 적이 없었기에 감독이 필요한 팀들이 그를 노리는 것은 당연하다. 원클럽맨도 아니면서 프랜차이즈 스타 같은 인상이 짙었던 김기동 감독의 선택은 팬들에게 큰 아쉬움이자 상처일 수도 있다. 하지만 김기동 감독으로서는 떠나야 할 시점이라고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김기동 감독은 더 이상 리그에서 어린 지도자가 아니다. 같은 또래, 그리고 더 어린 40대 지도자들이 팀을 이끌고 있다. 지도자로서 더 큰 발전과 야망을 꿈꾼다면 FA컵 우승보다 더 큰 성과가 필요하다. 하지만 포항은 그런 꿈을 함께 꿀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창단 51년째가 되는 포항은 한국 축구를 이끌어 온 팀이다. 모기업 포스코는 포항제철이던 시절, 창업주 박태준 전 회장을 중심으로 축구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대한민국 국가대표 선수라면 포항을 거치는 것이 당연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포스코는 과거의 포항제철이 아니었다.

애초 B2B 기업인 철강그룹인 포스코가 프로 스포츠단 운영으로 도모할 수 있는 유무형의 효과는 다른 B2C 기업에 미치지 못한다. 게다가 한때 50%에 이르렀던 포스코의 해외 투자자들은 매년 수십억의 적자를 안기는 프로 축구단을 운영하는 것을 용인할 수도, 이해하고 싶지도 않다. 심지어 포스코는 포항 스틸러스 외에 전남 드래곤즈도 갖고 있다. 

최고의 선수를 끌어모으던 포항제철은 이미 죽었다. 이미 20년 넘게 포스코는 축구단 운영과 지원에 확실한 제한을 두었고, 최근에는 일부 시민구단보다도 투자가 적다. ‘가난한 시민구단’과 ‘부유한 기업구단’으로 K리그 팀들을 구분하지만, 현재 포항 스틸러스는 재정 면에서 볼 때 시민구단만도 못한 기업구단이다.

줄어든 지원 속에서도 포항은 확실한 유스 시스템의 강점이 있었다. 이미 1990년대부터 시스템을 구축한 포항은 좋은 신인들을 꾸준히 수급할 수 있었다. 하지만 2002월드컵과 FIFA의 의무 조항이 강화되며, 대한민국의 프로 축구단에게 유소년부터 연령별 유스 시스템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선도하던 시절에는 포항의 시스템이 특별했지만, 모두가 함께한다면 이 역시도 재정 면에서 앞서는 팀들이 유리하다. 과거에는 포철공고와 광양제철고 등 포스코가 운영하는 포항과 전남의 유스가 확실한 강점을 보였지만, FC 서울, 수원 삼성, 전북 현대, 울산 HD 등 다른 구단들 역시 지금은 수준 높은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부족한 지원 속에서도 다크호스의 기적을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말 그대로 기적이다. 매번 일어나면 기적이 아니다. 하지만 김기동 감독은 기적에 준하는 결과를 꾸준히 만들어냈다. 매년 기대 이상의 성과를 이뤘다. 이러한 결과는 선수의 가치도 끌어올린다. 

축구는 셀러리 캡이 없는 스포츠다. ‘가성비 끝판왕’으로 평가되던 선수들의 가치가 올라가면, 재정에 여유가 없는 팀은 이를 감당하지 못한다. 포항은 매년 선수를 팔아왔다. 완델손, 정재용을 시작으로 일류첸코, 팔로세비치, 송민규, 강상우, 신진호, 이수빈, 임상협 등이 팀을 떠났다. 심지어 감독 모르게 진행된 이적도 있었다. 2023년 말미에도 포항의 주요 선수들이 다음 시즌에는 팀에 잔류하지 않을 것이라는 루머가 쉴 새 없이 돌았다. 

시즌을 함께했던 핵심 선수들이 한꺼번에 빠져나가면 감독으로서는 팀의 연속성을 떠나, 다음 시즌을 운영하는 것 자체가 어렵게 된다. 김기동 감독은 부임 후 매년 이런 싸움을 펼쳐야 했다. 선수를 판다고 그에 상응하는 좋은 선수들을 마음껏 영입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팀 연봉도 꾸준히 리그 하위권이었다. 선수층은 얇았고, 심지어 외국인 쿼터도 다 채우지 못했다. 

2023시즌 포항은 정규리그는 물론 AFC 챔피언스리그도 병행했다. FA컵 결승까지 소화했으니 전북과 더불어 가장 많은 경기를 뛴 팀이다. 리그 2위, FA컵 우승을 차지한 팀인데 국가대표가 단 한 명도 없는 팀이 포항이다. 개인 능력에서 상대를 압도하는 스쿼드가 아니기에 포항은 많이 뛰는 축구를 하는 팀이다. 가용 인원이 적은 상황에서 활동량 많은 축구를 펼치며, 가장 많은 경기를 치르다 보니 선수단에 과부하가 올 수밖에 없다. 지난 시즌 포항의 줄부상은 불운과 더불어 이런 이유도 있었다고 본다. 외국인 선수 오베르단과 완델손은 시즌 아웃됐고, 백성동, 정재희, 심상민, 그랜트, 고영준이 빠졌다. 김종우와 신광훈, 김승대도 부상으로 결장한 바 있다. 

김기동 감독은 시즌 중반, 비어있는 외국인 선수 쿼터 한 자리를 채워달라고 건의했지만, 구단은 “여전히 적자”라는 이유로 거부했다. 스포츠단 지원에서 흑자와 적자를 논하는 것이 국내 프로스포츠 시장에서 어색하기는 하지만, 그 규모를 떠나 ‘적자라도 더 투자하라’라고 하는 것이 억지일 수 있다. 하지만 리그에서 기업구단 중 선수단 연봉 최하위(전체 9위), 인천-대전-강원 등 시민 구단보다도 적은 연봉을 지출한 구단이 “적자라서 외국 선수를 쿼터만큼 다 활용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포항이라는 구단이 갖고있는 지금의 한계를 여과없이 보여준다. 

게다가 포항이라는 도시 역시 선수 수급에 매력적인 곳은 아니다. 몸값과 조건이 비슷할 경우, 선수들은 지방 도시보다는 대도시를 선호한다. 과거에는 외국인 선수들에게 두드러졌지만, 지금은 모든 선수들에게 적용되는 부분이다. 가족, 여가, 교육 등 여러 면에서 대도시 대한 가치가 절대적이다. 포항 역시 경북을 대표하는 큰 도시지만 서울은 물론 수도권, 광역시 등 포항보다 더 큰 조건을 갖추고 있는 도시를 연고로 하는 팀들이 많아 이 부분 역시 장점이 되지 못한다.

더 큰 투자는 기대하기 힘들다. 더 좋은 선수들의 영입은 어렵다. 그런데 기존의 주축 선수들도 지키기 어렵다. 결국 김기동 감독에게 포항에서의 성적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와 같다. 잘하면 더 나은 미래가 있다기보다, 잘하면 잘 할수록, 다음 시즌 준비가 더 힘들어지는 상황이 반복됐다.

 

포항은 이번 이적 시장에서 주장 김승대, 공격의 핵심 제카, 주전 수비수 그랜트, 하창래, 심상민을 잃었다. 영입도 이어지고 있지만 ‘당연히’ 눈을 번적 뜨이게 할 만한 뉴스는 없다. 김기동 감독이 포항에 잔류했다면, 포항이 안고 가야하는 ‘승자의 저주’ 속에 또 처절한 시즌을 준비했어야 할 것이다. 현실적 상황을 떠나 팬들과 주변의 기대치는 항상 작년보다 나은 올해를 원한다. 지난 시즌 K리그 2위와 FA컵 우승을 이끈 김기동 감독은 적어도 그에 준하는 성적을 올려야 하며, 힘든 여건과 엷은 선수층 속에 다시 아시아 무대까지 뛰어야 하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결과가 기대에 못미치면 평가는 날카롭다. 어려운 상황은 핑계가 되지 않는다. 그런 조건 속에서 성과를 냈던 이전의 결과가 있기에, 과거의 김기동이 현재의 김기동을 짓누르게 된다. 포항은 이 어마어마한 무게를 덜어주기는 커녕 가중시키는 조건의 팀이다.

 



모예스와 다르다는 증명

그런면에서 FC 서울은 김기동 감독에게 매력적인 선택지다. 오랜 K리그팬들에게는 여전히 ‘북패’일 뿐이지만 FC 서울은 천만 명이 넘는 인구가 있는 대한민국 수도 서울을 연고로 하는 빅마켓 팀이다. 무늬만 기업구단이라는 허울을 씌운 포스코와 달리 GS는 투자의 목적과 명분이 존재하는 대기업이며, K리그 최고의 큰손인 두 현대가를 제외하면 가장 많은 금액을 지원하고 있다. 선수층도 두텁고, 몸값 높은 용병 쟁탈전에서도 밀리지 않는다. 한국 축구의 상징이 된 서울월드컵경기장을 홈으로 쓰고 있으며, 이미 구성되어있는 선수들의 면면도 객관적인 능력에서 포항보다 확실히 우위에 있다. 

하지만 최근 성적이 기대에 못 미친 대표적인 팀이기도 하다. 2019년 3위를 차지했지만, 2020년 9위, 2021년 7위, 2022년 9위, 2023년 7위 등 4시즌 연속 하위 스플릿에 머물렀다. 좋은 전력과 달리, 당장 우승보다는 안정적으로 팀이 정상 궤도에 오르는 것이 우선인 상황이다. 게다가 AFC 챔피언스리그를 뛰지 않는 까닭에 오히려 국내 리그에만 집중할 수 있다는 것도 김기동 감독에게는 나쁠 것 없는 시즌 2의 시작이다. 충분한 시간을 갖고 확실한 도약을 도모할 수 있다.

물론 고민할 부분도 있다. FC 서울을 이끈 감독들이 하나같이 무능해서 성과를 내지 못했다고 볼 수는 없다. 대행을 제외하고 정식 감독을 맡았던 최용수, 황선홍, 박진섭, 안익수 감독 등은 나름의 성과와 능력을 인정받았고 기대를 모았던 지도자들이다. 김기동 감독이 포항을 떠나 FC 서울에 안착하며 얻게 된 팀의 강점을 오롯이 안고 시작했지만, 결말은 아름답지 못했다. FC 서울은 감독에게 축구 자체의 전술적 역량 외의 플러스알파를 요구하는 팀이다. 전북 현대, 울산 HD도 마찬가지다. FC 서울과 같은 고난을 겪었다. 선수 구성 면에서 확실한 강점을 갖고 있지만, 팀보다 위대한 선수들이 넘쳐나면 곤란하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처럼, 선수단을 장악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2002년 월드컵 당시 한국 대표팀 감독직을 제안 받던 자리에서 거스 히딩크 감독은 “한국 선수들은 훈련 중에 내가 나무 위로 올라가라고 하면 올라가느냐”는 질문을 했다. 감독이 이상한 것을 주문해도 믿고 따를 수 있는 선수들이냐는 질문이다. 김기동 감독에게 따르는 의문도 항상 이 부분이다. 포항보다 네임벨류가 높은 선수들을 장악하고 이끌 수 있느냐의 문제. 

EPL 웨스트햄의 감독인 데이비드 모예스 감독은 2000년대 초반 에버튼을 12년 동안 이끌었다. 강등 위기까지 몰린 에버튼을 구해냈고, 자금력이 좋지 못한 상황에서도 꾸준히 팀을 중위권으로 이끌고 유럽 대회 진출권 싸움을 펼쳤다. 은퇴를 앞두고 있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자신의 후임으로 모예스를 직접 언급했고, 결국 지도력을 인정받은 모예스는 포스트 퍼거슨 시대의 맨유 수장이 됐다. 하지만 맨유는 에버튼과는 전혀 다른 팀이었다. 맨유와 6년 계약했던 모예스는 계약 기간의 절반도 채우지 못하고 경질됐다. 어려운 상황에 놓인 팀이 기대 이상의 성적을 올리게 만드는 능력은 인정받았지만, 좋은 전력을 갖춘 팀이 우승컵을 들어 올리게 하는 능력은 인정받지 못했다. 김기동 감독은 더 높은 커리어를 위해 자신은 모예스와 다르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포항에게도 감사한 이별

김기동 감독은 포항 축구의 핵심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축 선수들이 빠져나가는 상황에서도 포항이 흔들리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힘은 김기동 감독의 지도력에서 발원했다. 그런데 그런 김기동 감독이 나갔음에도 언론은 ‘포항에 큰 타격’이라는 위기론에 앞서, ‘감독과 구단 모두를 위한 적절한 시기의 이별’이라고 한다. 포항 구단에게도 그저 손실만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이유는 무엇일까?

부임 이후 꾸준히 상한가를 기록한 김기동 감독 자체가 이제는 포항 구단에게 부담이기 때문이다. 이 정도의 성과를 올린 김기동 감독에게 다음 목표는 당연히 리그 우승, 아시아 무대에서의 성과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없는 살림에 쥐어짜기만 해서는 탈이 나고 한계에 봉착한다. 팀을 이끄는 감독인 그가 그 한계를 가장 절실하게 느꼈을 것이다. FA컵 우승으로 AFC 챔피언스리그 엘리트 진출권을 확보한 후, 큰 의미가 없었던 경기에서도 그는 1군 멤버들을 최대한 투입했다. “투입할 수 있는 2군조차 부족하다”는 이유였다. 부임 초기, 혹은 성과가 미진한 감독이라면 모를까, 이 정도 성과를 낸 지도자라면 더 높은 곳을 향하기 위한 지원에 대해 당연히 목소리를 내게 된다. 김기동 감독은 포항에서 재계약을 할 때마다 난항을 겪었다. 그는 항상 주요 선수를 지켜줄 것과 선수단 보강을 말했지만, 이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2023년. 그는 공개적으로 부족한 지원으로 인한 어려움을 토로했다. 유튜브 채널에서 농담을 섞은듯한 자조적인 표현으로 “50억만 더 지원해준다면...”이라는 말을 했다. 50억이 결코 적은 금액은 아니지만, 그 금액을 더한다 해도 포항이 리그 정상을 다투는 팀들보다 운영비가 적은 게 사실이다. 

감독 김기동은 이제 포항 프런트가 통제할 수 있는 수준의 지도자가 아니다. 감독의 직접적인 토로는 이름만 굴지의 대기업일 뿐, 막상 축구단에 대한 투자는 다른 대기업은 물론 시민 구단에도 미치지 못하는 포스코에게 불편할 수밖에 없다. 창단 50주년에 맞춰 어떻게든 우승컵을 들어 올리겠다는 의지로 FA컵 정상에 오른 선수단에게 세계 굴지의 철강 그룹인 포스코의 회장이 소고기 회식을 해주는 것으로 생색을 내는 수준인 포항 스틸러스에게 김기동은 너무 버겁다. 팀에 남아 꾸준히 성과를 이루는 것은 고맙지만, 성과에 어울리는 전력 보강과 지원을 요구하면 감당할 수가 없다. 

광주 FC 역시 마찬가지 일 것이다. 김기동 감독과 더불어 돌풍을 일으킨 이정효 감독 역시 직접적으로 “돈이 없다”는 말을 하고, 경기장 상태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다. 광주시의 부실한 지원을 직격했다. 좀처럼 지원의 폭을 넓히기가 쉽지 않은 광주시와 광주 FC로서는 성적이 나온다 해도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이정효 감독 역시 2023시즌의 성과가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는다면, 결국 빅클럽으로 행선지를 틀 수밖에 없을 것이고, 광주 FC 역시 지금의 포항처럼 기쁘게 이별할 것이다.

포항 프런트 입장에서는 ‘너무 잘하는 감독’보다는 ‘적당히 잘하는 감독’이 낫다. 우승을 하면 너무 좋겠지만, 그로 인해 감당하기 힘든 후폭풍이 오는 것보다는, 적당히 상위 스플릿에 머무는 중상위권 정도의 결과가 가장 아름답다. 그러다가 어느 해, 한 번 힘을 내서 정상에 도전하는 그림이 나와주면 더할 나위 없다. 그래서 김기동 감독과의 동행은 구단에게도 부담이다. 이별은 필연이었다.

일부 팬들은 김기동 감독이 FC서울과 협상을 하면서도 팀에 잔류할 것처럼 팬들을 기만했다고 한다. 시즌을 치르고 있는 감독이 “내가 매 경기 열심히 임하고, 팀에 대한 애정도 있지만, 사실 지금 다른 구단과 협상 중에 있다”라고 말하는 게 더 비상식 아닐까? 그리고 그런 움직임을 포항 구단이 몰랐을까? 한국프로축구연맹 기술위원장이었던 박태하 감독을 포항이 발빠르게 영입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박태하 기술위원장이 곧 포항 감독으로 온다는데, 김기동 감독이 다른 데로 가는 것 같다”는 루머가 이미 11월부터 공공연하게 돌고 있었다. 그만큼 김기동 감독과 포항 구단은 최선의 상황에서의 이별을 그려냈다고 볼 수 있다.

이제 포항의 축구는 온전히 신임 박태하 감독에게 넘어갔다. 김기동 감독의 성과는 신임 감독에게 상당한 부담이다. 게다가 지난 시즌의 성과를 냈던 주축들 대부분이 팀을 떠났다. 박태하 감독은 새롭게 판을 짜야 한다. 그런데 시간도 없다. 추춘제로 바뀐 AFC 챔피언스리그 16강이 2월이다. 하필 지난 시즌, 단 한 번도 지지 않았던 전북과 만나게 됐다. 전북은 미친 듯이 선수단을 보강하고 있고, 포항은 핵심 전력이 빠진 채로 새롭게 리빌딩을 거쳐야 한다. 전력도 약하고, 선수층도 얇은데다가 시간은 부족하며, 그런 가운데 소화해야 할 대회와 경기수는 많다. 프랜차이즈 스타인 박태하 감독의 포항 복귀에 모두가 기뻐하며 반갑게 맞이했지만, 어쩌면 포항에게 2024년은 가장 큰 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고, 박태하 감독 역시 지도자 경력에서 가장 고난의 시기를 겪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