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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KBL] 베테랑 한 명의 힘, 하나원큐의 변화

 

지난 주, 오랜만에 현장을 가봤습니다. 목~금~토~일, 4일간 WKBL을 직관했는데, 오늘은 어제(3일) 삼성생명과 경기를 했던 하나원큐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하나원큐가 삼성생명을 완파했습니다. 65-44로 이겼죠. 하나원큐는 9경기만에 3승을 달성했습니다. 지난 시즌, 개막 8연패 끝에 1승을 어렵게 올렸던 거와는 분명 다른 흐름과 분위기죠. 개막전에서 당한 66-67의 석패를 설욕했습니다. 하지만 이전에도 언급했듯, 그 경기는 10점 이상으로 이겼어야 하는 경기였습니다. 그 경기를 잡았으면 지금 5할 승률을 넘는 상승세였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하나원큐는 긴 터널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일단 어제의 삼성생명은 정상 전력이 아니었습니다. 키아나 스미스, 이주연, 배혜윤이 없었습니다. 이 정도 레귤러가 빠진 삼성생명이라면 10점 차 이상으로 하나원큐가 이기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김정은의 가세는 안팎에서 중심을 잡아줘야 했지만, 고군분투하는 것에 비해 뭔가 시너지를 제대로 만들지 못했던 양인영-신지현에게 확실한 구심점과 촉매의 효과를 가져왔습니다.

 

김정은이 갖고 있는 확실한 아우라도 큰 힘이죠. 지난 주 하나원큐의 경기를 보면 수비 때, 김정은이 안에 있으면 속공이나 아웃 넘버 기회에서 상대가 과감하게 파고 들지 못합니다. 삼성생명 뿐 아니라 우리은행도 김정은이 있으면 숨을 고르고 들어옵니다. 심지어 상대 벤치도 이 부분을 지적하지 않습니다. 블록슛 능력이 상당한 양인영이 있을 때도 아랑곳 않고 달려들던 상대들이 이제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무언가를 특별히 하지 않아도, 김정은이 있다는 것 자체가 주는 부담은 확실합니다. 이전에 하나원큐에게 없던 부분입니다.

 

1라운드 하나원큐 경기를 보면서 개인적으로 가장 아쉬웠던 선수는 신지현이었습니다. 김정은의 영입이 팀에 분명한 플러스 효과를 주겠지만, 기존의 중심 선수들(신지현-양인영, 그리고 정예림까지)이 고비에서 김정은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는 모습이 나오면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특별히 그런 모습이 자주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신지현의 경우 본인이 해결해야 때와 김정은을 활용해야 할 때에 대해 혼동이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효율적으로 김정은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확실히 경기를 거듭하면서 이 부분에 적응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제는 하나원큐의 수비 로테이션이 인상적이었죠. 우리은행이나, 좋았을 때의 KB처럼 완벽하게 맞아 들어갔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동선이 꼬이는 상황도 있었고, 선수들이 겹치는 상황도 있었습니다. 아직 완성도가 리그 정상급으로 올라오지 않았다는 거죠. 하지만 젊은 선수들이 패기를 앞세워 미친듯이 뛰어다니면서 놓치고, 겹치고, 꼬였을 때도 자기 자리를 찾아가려고 하는 절박함과 투지가 보였습니다. 앞선의 주요 자원과 주장 배혜윤이 없고, 윤예빈도 아직 정상이 아닌 삼성생명의 현재 전력은 하나원큐가 조금씩 드러내는 미완의 순간을 공략할만큼 예리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김정은과 양인영이 중심이 되어 인사이드를 지키고(리바운드 38-25), 패기를 앞세워 악착같이 달려드는 하나원큐의 수비 기세에 밀렸습니다.

 

 

 

하나원큐는 삼성생명과의 개막전에서 다 잡은 경기를 졌습니다. 특히 종료 40여초를 남기고 김정은이 이해란과의 충돌로 부상을 당해 빠진 것도 패인이 됐습니다. 김정은이 없던 마지막 시간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정확한 패인을 잡자면 10점 정도의 리드를 지키던 3쿼터 초반의 경기 운영과 승부처에서 이어진 미숙한 플레이들이 먼저였지만, 1점 승부에서 마지막 순간 김정은이 없었던 점은 상징적으로 가장 가시적으로 보이는 부분이기도 했습니다.

 

큰 부상을 당한 김정은은 한동안 결장이 불가피했지만, 완전한 치료를 미루고 다음 경기에 보란듯이 돌아왔습니다. 우리은행 전도 패했지만 하나원큐는 결국 예년보다 좋은 페이스를 유지하는 중입니다. 그리고 삼성생명을 만났습니다.

 

 

 

어제 경기를 마친 후, 삼성생명 이해란의 왼쪽 눈에는 멍이 들어있었습니다. 하나원큐가 "김정은의 원수를 갚겠다"는 생각으로 고의적인 린치를 가한 것은 아닙니다. 이해란에 대해 적극적인 수비가 경기 내내 이어졌고, 팀의 에이스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이해란 역시 거기에 밀리지 않으려고 대응을 하는 과정에서 생긴 타박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하나원큐 선수들이 이 경기를 앞두고 이해란에게 밀리지 않고, 뭔가 보여주겠다는 각오로 나선 것은 사실입니다.

 

하나원큐의 한 선수는 개막전에서 발생한 김정은의 부상에 대해, "고의적인 것도 아니었고 불운한 사고였다. 서로 팀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다가 발생한 상황일 뿐"이라고 분명히 선을 그었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팀은 졌고, 맏언니가 크게 다쳤다. 그 팀과 다시 만나는데 우리가 그냥 경기에 임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경기에서 하나원큐는 그런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개막전에서 교체 없이 40분을 소화하며 18점 8리바운드, 그리고 8개의 파울을 얻어내며 맹활약했던 이해란은 어제, 37분 동안 2득점에 묶였습니다. 야투 8개(3점슛 5개)를 시도했지만, 1쿼터에 얻은 2점이 전부였고, 여전히 7개의 파울을 얻어냈지만 자유투도 놓쳤습니다. 이해란을 상대로 김정은(8점 5리바운드 3어시스트)과 양인영(16점 10리바운드 4어시스트)이 확실하게 설욕했습니다.

 

이 부분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하나원큐에게 정말 오랫동안 볼 수 없던 '근성'입니다.

 

김정은은 FA로 친정에 복귀하면서 "다 늙은 내가 이제 와서 복귀한다고, 하나원큐가 갑자기 이기는 팀이 되고, 플레이오프를 가고, 우승을 할 수는 없다. 솔직히 그럴 능력도 없는 선수다. 매 경기 더 나아지고 발전하는 모습이 나올 수 있도록, 후배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다만 상대 팀 언니들한테 지레 겁먹고 밀리는 꼴은 죽어도 못본다. 그건 가만두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개막전 부상이 생각보다 심각한 것 같아 다음날 괜찮냐고 묻자, "경기 진 게 너무 열 받아서 아픈 건 생각나지 않는다"고도 했습니다. 박신자컵 이후, 대화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밖에서 볼 때, 어떤 것 같아? 우리, 좀 달라진 거 같긴 해요?"라고 묻고, 또 물었습니다. 그런 김정은의 캐릭터가 하나원큐에도 스며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제 하나원큐는 삼성생명을 21점차로 이겼습니다. 큰 점수차의 대승이었습니다. 시간에 쫓긴 김애나의 3점슛이 림을 통과하고 신지현이 3점슛에서 앤드원을 얻어 4점 플레이를 하는 순간부터 벤치는 축제 분위기였습니다. 하나원큐에게 익숙하지 않은 완승이었죠. 그런데 그런 승리 후에도 이해란의 이날 기록을 물어본 하나원큐 선수들이 있다고 합니다. 선수들의 자세가 확실히 이전과 다르다는 생각이 듭니다.

 

 

 

1라운드 때는 승리의 수훈갑, 그러나 2라운드에는 꽁꽁 묶였던 이해란이 3라운드에는 이를 갈고 나오겠죠. 김정은과 신구 포워드 맞대결을 치열하게 펼칠 수도 있을 겁니다. 이런 그림이 결국 스포츠를 더 재미있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오랫동안 부진에 빠져 있었던 하나원큐 선수들은 누구보다 간절할 겁니다. 패배가 익숙해져서 의지도 박약하다는 평가도 있었지만, 간절함과 절박함은 당연한 겁니다. 다만 그런 것들을 코트에서 경기력으로 끄집어 내는 투지와 근성이 좀처럼 발현되지 못했습니다. '김정은 영입 효과'는 '인사이드 강화'. '수비 강화'. '기존 에이스 부담 감소', '승부처에서의 루트 다양화' 등 가시적인 요소의 장점도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다소 모자란 부분도 극복할 수 있는 힘'. 곧, 간절함과 절박함을 무형의 경기력으로 끌어올리는 투지와 근성을 구축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제 경기 후 오랜만에 김정은의 환한 미소를 봤습니다. 김정은은 아이싱을 하며, "봤어, 우리 애들 수비하는 거? 장난 아니죠?"라면서 뿌듯함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김정은이라는 슈퍼스타가 친정에서 어떤 변화를 더 만들어 낼 지... 그리고 창단 이래 수없이 시도했던 리빌딩을 번번이 실패했던 하나원큐가 드디어 그 꿈을 이루어 낼 지 기대가 됩니다. 특히 그 리빌딩 과정에서 팀을 떠나야 했던 김정은이 다시 돌아와, 중심에 서서 리빌딩의 기틀을 마련하고 있다는 점이 더 인상적이네요.

 

솔직히 이런다고 해서 하나원큐가 당장 이번 시즌에 더 큰 결과를 얻어낼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김정은이 하나원큐로 이적하며 말했던 '최소한 10승'은 상당히 가능성 높은 그림이 되는 느낌입니다. 거기에 3-4승을 더하면 플레이오프도 노려볼 수 있습니다. 거기까지도 가능할까요? 개인적으로 10승 돌파는 가능하지만, 플레이오프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다른 팀들의 상황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변수는 존재하죠.

 

하나원큐는 올해 당장 결과를 원하는 팀이 아닙니다. 달라진 모습과 활기차고 긍정적인 팀 분위기 속에, 다음 시즌, 내부 FA를 지키고, 외부 FA 대어 영입에 성공한다면, 하나원큐의 목표치는 이전과는 분명히 다른 높이로 향하게 될 겁니다.

 

힘든 상황에 놓인 모든 팀들이 성과를 내고, 올라서는 모습이 그려지길 바랍니다.

 

사진은 여전히 말 안 듣는 이현수...

 

 

 

P.S. 김정은의 이적과 관련해 우리은행의 위성우 감독은 많이 아쉬워 했었습니다. "김정은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면서도 "우리은행의 팀 상황도 그렇고, 또 김정은 개인을 위해서도 하나원큐로 가는 게 더 좋은 선택"이라고 했죠. 그러면서 이런 말도 했습니다. "우리 팀에 있으면 길어야 2년이지만, 하나원큐에서는 더 오래 선수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도요... 김정은은 하나원큐와 2년 계약했습니다. 본인도 팀에서 이루고자하는 바를 이루고, 개인적으로는 정선민 감독의 WKBL 역대 최다 득점 기록을 깨고 2년 후에 은퇴하겠다고 했죠. 그런데 위성우 감독은 "4년은 뛸 수 있다"고 단언했습니다. 흠.... 지켜보도록 하죠..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