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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드] ‘정의는 입장에 따라 변한다? 승리하는 쪽이 정의다!’ <리갈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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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만하지마. 우리는 신이 아니야. 그저 변호사일 뿐이지. 진실이 무엇인지 알 리가 없지.

지난해부터 우리나라를 강타한 영화 및 드라마의 중심에는 사법부 불신이라는 코드가 짙게 깔려있다. 영화 <도가니>를 시작으로 <부러진 화살>,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로 이어진 충무로의 주제는 1988년 사망한 탈옥수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현실이 지금까지도 별로 달라질 것 없다는 안타까움을 대변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흐름은 지난 5월말부터 8주 동안 20% 이상의 평균 시청률을 기록했던 SBS 드라마 <추적자 The Chaser>를 통해서도 잘 드러났다.

다소 분위기는 다르지만 이웃나라 일본에서도 법조계의 이야기를 다룬 인기 드라마는 여러 차례 존재했다. 일본 드라마 역대 시청률 1위를 기록하고 있는 기무라 타쿠야(木村拓哉) 주연의 <히어로>를 비롯해 아마미 유키(天海祐希)의 열연이 돋보였던 <이혼변호사 / 離婚弁護士>, 2006년 2분기 TBS에서 방영했던 <쓰레기 변호사 / 弁護士のくず>, 여성들의 피해사건을 중점적으로 다루는 여자 변호사들의 이야기를 다룬 <7인의 여변호사 / 7人の女弁護士>, 우에토 아야 주연의 <호카벤 / ホカベン>, 일본에서 도입되던 배심원 제도를 다뤘던 <마녀재판 / 魔女裁判> 등 다양한 소재의 법정 드라마가 존재했다.

소재의 다양성을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로 하고 있는 일본드라마의 다양한 법정 접근 방법에 대해 이번에는 일종의 블랙코미디 형식으로 풀어갔던 드라마 <리갈하이 / リーガル・ハイ>를 말해보고자 한다.

<리갈하이>는 사카이 마사토(堺雅人), 아라가키 유이(新垣結衣), 나마세 카츠히사(生瀬勝久), 코이케 에이코(小池栄子), 사토미 코타로(里見浩太朗) 주연의 11부작 드라마로 후지TV에서 방영한 2012년 2분기 드라마다.

 

맡는 역마다 호평을 이끌고 있는 사카이 마사토가 뛰어난 능력을 지니고 있지만, 독설이 심하며 파탄에 가까운 성격을 갖고 있는 천재 변호사 코미카도 켄스케 역할을 맡았다. 그의 주관은 '법이 정의를 수호한다'는 당연하고, 반드시 지켜져야 할 당위와는 일정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사회에 정의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이기는 자가 정의’라고 주장하는 코미카도는 자신의 의뢰인이 올바른지 여부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을 갖지 않는다. 다만 그 사건을 수임했으면 반드시 승리를 해야 하고, 승리하는 것이 정의라는 것을 항상 주지시킨다. 그로 인해 신입 변호사인 마유즈미 마치코의 타협 없고, 올바른 정의관도 수없이 시험받고 혼돈에 빠진다.

 

극중에서 등장하는 코미카도의 모습은 ‘무엇이 좋은 변호사인가?’ 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우리는 법조계에 종사하는 모든 이들이 청렴하고 결백하며 법 앞에 정의롭고 사회 정의의 수호자이며 선구자여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현실에서는 내가 수임한 재판에서 반드시 승리하는 변호사 이상의 의미는 없다. 이는 곧 정의보다는 실리가 법 앞에서도 우선되는 어쩔 수 없는 인간의 기본적인 심리를 말하고 있다.

코미카도는 드러낼 수는 없지만 현실에서는 그 무엇보다도 당연한 변호사의 조건을 대놓고 과시하는 인물이다. 그리고 그러한 성향과 인간미 없는 성격으로 인해 최악의 평판을 받고 있지만, 그런 만큼 많은 재산을 갖고 있는 성공한 변호사로 묘사된다.

사회에서 올바른 정의가 우선되어야 하고, 재판의 승리를 위해 타인의 아픈 상처나 약점을 긁어내는 행위를 끝내 피하고자 하는 마유즈미에 대해 코미카도는 ‘아침 드라마의 주인공’이라고 비아냥대며 좀 더 영악하게 굴 것을 주문한다. 결국 마유즈미는 이러한 코미카도에 대해 “성공한 변호사임은 틀림없지만, 올바르지는 않다”며 반드시 법정에서 이겨서 그러한 코미카도의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아 주겠다는 다짐을 한다. 옳은 일을 한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법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드라마는 꾸준히 매 에피소드마다 등장하는 사건을 해결하는 일관된 모습의 코미카도와 마유즈미를 보여주지만, 결국 마유즈미는 거듭된 사건을 통해 차츰 성장해, 마지막에는 코미타도와 법정에서 맞서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이 모든 심각한 상황은 ‘반전’ 코드를 담고 있는 드라마답게 꾸준한 코미디 형태로 진행되고 있어, 사실이지만 받아들이기 씁쓸한 불편한 진실에 대해 시청자가 심각하지 않게 목도할 수 있는 가벼움을 선사한다. 심지어 코미카도라는 변호사가 정의감보다 승리 자체에 매진하는 변호사가 되어야 했던 결정적인 이유마저 ‘반전’보다는 ‘황당’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역전의 스토리에 기인하고 있다.

대부분의 법정드라마가 무거운 소재만큼 진지함과 심각함으로 접근한 반면, 리갈하이는 웃음의 패러독스를 사용하고 있다. 그렇기에 코미카도가 드라마 시작부터 안고 있었던 변화나 가정적인 부분의 페이소스 역시 모든 면에서 ‘반전’이라는 카드를 숨기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드라마가 현실적인 사안들을 결코 가벼이 여기는 것은 아니다. 몇몇 에피소드에서 코미카도는 자신의 변호인에 대한 윤리적 판단과 별개로 이기는 재판을 진행하지만, 마유즈미에 의해 이끌린 재판에서는 이유가 어찌되었건 간에 ‘정의가 승리한다’는 권선징악의 역할을 맡기도 한다.

 

"자랑스러운 삶을 되찾고 싶다면 보고싶지 않은 현실도 직시해야만 한다. 깊은 상처를 입을 각오롤 갖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투쟁이란 그런 것이다. 푸념을 할 생각이면 무덤에서 해라!"

 

"진짜 악마는 거대하게 부풀어 올랐을 때의 민의다. 자신이 선한 사람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그런 선량한 시민들이다."


사람이 사람을 재판하는 것 자체도 절대적인 가치를 지닐 수 없다는 사고. 올바르다는 판단의 기준 역시 완벽한 정의를 내릴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역설하는 이 드라마는 끝내 마지막 재판도 반전으로 진행시키는 묘미를 보여준다. 그리고 자신의 변호로 인해 패배한 상대측 의뢰인에게 재판 후, 다음에 비슷한 일이 있으면 자신과 상의하라며 반드시 승소해 주겠다고 말하는 코미카도는 정의 역시 인간의 판단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절대적이지 않은 가치일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어쨌든 이 작품은 코미디다. 심각하고 무거운 내용을 안고 있지만 끝내 그와 반대로 흐르는 분위기는 결국 ‘진지하게 감상하지 말 것’을 은연중에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만화같은 상상력과는 달리 분명 진지한 메시지는 제대로 전달하고 있다.

개성 강한 코미카도의 역할을 감칠맛 나게 소화한 사카이 마사토의 얄밉고도 웃음을 유발시키는 연기는 드라마를 제대로 살리고 있는 요소다. 또한 토다 에리카(戸田恵梨香), 호리키타 마키(堀北真希), 쿠로키 메이사(黒木メイサ), 요시타카 유리코(吉高由里子) 등과 함께 1988년생을 대표하는 일본 여배우이면서도 줄곧 연기력 논란에 시달려왔던 아라가키 유이의 능청스러운 연기 또한 재미의 요소에서는 빠짐이 없는 작품이다.

법정 드라마의 심각한 매력에 심취했던 이들에게 <리갈하이>는 가벼운 마음으로 접근해서 같은 무게의 진지함을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선물해 줄 것이다.

 

문화저널21 / 2012년 8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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