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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드] 우리는 이 순간에도 수없이 역사를 바꾸고 있다 - 진 (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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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모토카(村上紀香)의 원작 만화인 타임슬립 닥터진을 드라마로 제작한 일본드라마 <진 (仁>)은 2009년 4분기에 시즌 1이 방영되었고, 2011년 시즌 2가 방영되며 종영되었다.

결혼을 약속한 여자 친구의 수술을 집도했다가 실패한 외과 의사였던 미나카타 진이 의문의 환자를 수술한 후, 병원외부계단에서 추락했다가 에도시대인 1862년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전개되는 이야기다.

시간여행이라는 소재를 사용한 SF장르라고 볼 수도 있지만 공상과학이라는 분류로 구분하기에는 다소 모호한 구성을 갖고 있는 작품이다. 단순히 과거여행을 통한 에피소드로 구분할 무게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마음만 먹으면 지구의 반대편이라도 갈 수 있다는 것을, 언제라도 마음을 전할 수 있다는 것을, 평범하지만 만족하는 날들이 계속될 수 있다는 것을, 어둠을 잊어버린 것 같은 밤을, 하지만 만약 어느 날 갑자기 그 모든 걸 잃어버리게 된다면... 새와 같은 자유를, 만족하는 생활을, 밝은 밤하늘을 잃어버리게 된다면, 어둠뿐인 밤에 혼자만 남겨져 버리게 된다면, 당신은 거기서 빛을 발견할 수 있을런지... 그 빛을 붙잡으려고 할런지... 아니면 빛이 없는 세계에 빛을 주려고 할런지... 당신의 그 손으로...’

<진>의 첫 편 도입부에 내레이션으로 등장하는 이 부분이 결국 드라마 전체에서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대신하고 있다. 드라마 <진>에서 주인공인 미나카타 진이 가장 심각하게 고민하는 갈등은 미래의 기술로 과거의 문제를 고쳐서 역사를 뒤집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우선은 급성경막외혈종의 외과 수술이 발단이 되고, 이어서는 콜레라를 막는 것과 매독, 그리고 페니실린의 개발에 이르기까지, 그는 자신의 앞서간 의술이 과거의 역사를 송두리째 바꿀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갈등과 고민을 하게 된다. 게다가 이 범주는 단순한 시대극에 머무르지 않고, 주인공을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 라는 실존인물과 조우하게 함으로써 극적인 긴장감을 더욱 고조시킨다.

사카모토 료마는 일본 근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로 손꼽히는 에도시대의 국민적 영웅이다. 여러 가지 이견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료마라는 인물이 막부시대의 종말을 고하고 대정봉환을 통해 정권이 일왕에게 돌아가도록 했으며, 이후 메이지 유신이 이어지는데까지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임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주인공인 미나카타 진 역시 사카모토 료마가 어떤 일을 했으며 언제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는 지까지 알고 있었지만, 자의 혹은 타의에 의해 끝까지 그에게 죽음에 대한 경고를 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에도시대에 머무는 동안 꾸준하게 료마와 접촉하면서 료마의 근대화 된 사상에 큰 영향을 주는 것으로 묘사된다. 허구와 역사 사이에서 절묘한 줄타기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드라마 <진>은 일본 근대사의 혼란기 한가운데에 주인공인 외과 의사를 떨구어 놓고, 그가 봉착하는 개인적인 고난과 역사적인 갈등을 동시에 펼쳐 보이고 있다. 그리고 ‘역사를 바꾸어도 되는가’ 라는 끝없는 고민에게 ‘YES’라는 답을 당당하게 던져주고 있다.

결국 미나카타 진은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한 상황에서도 자신이 알고 있는 의술을 펼쳐나간다. 그 당시에 고칠 수 없는 병이었음을 알면서도 꿋꿋하게 치료해나간다. 신의(神醫)라는 칭송이나 재물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저 의사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 하나에만 주목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이 작품이 끝내 말하고자 하는 바라고 봐도 무방할 듯 싶다.

 

<진>은 주인공을 통해 누구든 처해있는 그 상황에서 최선을 행하는 것이야 말로 바른 길이고 제대로 된 역사를 향해 가는 길이라고 말하고 있다. 미나카타 진은 의료를 행하면서도 역사를 바꿔버리는 자신의 행동이 정당하지 않다는 고민과 항상 싸우게 되고, 언젠가는 역사로부터 정죄 받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그가 행하는 의술이 절대적인 역사적 흐름을 바꿀 수 있는 시점에서는 초월적인 조건에 의해 방해를 받고 끝내 성공하지 못하게 된다. 바꾸어 말하면 미나카타 진은 그저 주어진 상황에 묵묵히 최선을 다하기만 하면 되었던 것이다.

여백의 미와 같은 아쉬움을 남기는 <진>의 마지막은 현재로 돌아오며 과거로부터 완벽하게 잊혀진 자신의 존재를 발견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1862년부터 사카모토 료마가 암살당한 직후인 68년 무렵까지 일본의 근대사에 지대한 영향일 미칠 수 있는 많은 일을 했던 미나카타 진은 현재로 오게 되면서 자신이 임했던 모든 역사에서 깨끗하게 지워져버리고 만다.

여러 겹으로 구성된 평행우주론 속에서 외롭게 존재한 미나카타 진은, 결국 마음을 주고 받았던 타치바나 사키의 기억 속에 아련하게 존재하며 최소한의 대가를 보상받는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120여년의 세월을 건너야 했던 미나카타 진의 존재는 광활한 역사 그 자체에서 어떤 의미였던 것일까? 안타깝게도 <진>은 그 대답까지 던져주고 있지는 않다.

일본드라마 <진>은 2009년과 2011년 방영되며 일본에서도 매우 큰 인기를 끌었으며, 오오사와 타카오, 나카타니 미키, 코이데 케이스케, 아야세 하루카, 우치노 마사아키, 키리타니 켄타, 사토 류타 등이 출연했다. 시즌 1,2를 일본의 실력파 가수인 미샤와 히라이 켄이 나누어 OST를 담당했고, 이들이 불렀던 ‘逢いたくていま’와 ‘いとしき日々よ’도 극의 분위기를 살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현재 <진>은 우리나라에서도 MBC를 통해 리메이크 되어, 송승헌, 박민영, 김재중, 이범수, 이소연 주연으로 방영되고 있다. 애정 관계의 구성도 다른 점이지만, 무엇보다도 쇄국정책을 폈던 흥선 대원군과 현대 서양의사의 만남을 원작과 어떤 구도에서 차이를 두며 묘사해낼지도 관심이다.

항상 리메이크 작품은 원작과 비교되어 많은 아쉬움을 남기는데, 이번 작품이 너무 개인의 사랑에 묶여서 역사적인 흐름의 큰 소용돌이를 간과하는 형태로 머물지 않기를 바래본다.

 

 

문화저널21 / 2012년 6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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