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fAntasize/oTaku

[일드] 세상에 존재했던 증거를 기념한다 - VOICE 命なき者の声

728x90
반응형

 

지난해 초 SBS에서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벌어지는 일과 법의학자를 조명했던 드라마 <싸인>을 방송한 바 있다.

총 20부작으로 방영된 이 드라마는 우리에게 생소했던 ‘법의학’이라는 부분을 직접적으로 다루었고, 박신양, 김아중 , 전광렬 등 정상급 배우들의 열연 속에 시청률 25%를 기록하며 인기행진을 이어가기도 했다. 하지만 이보다 2년 전인 2009년 1분기, 일본에서는 법의학과 관련된 드라마를 이미 방영한 바 있다. <보이스 - 생명 없는 자의 목소리>가 바로 그 것이다.

물론 이 일본 드라마와 SBS 드라마 <싸인>은 죽은 이의 사인을 규명하는 법의학을 소재로 하고 있다는 것만 같을 뿐, 전체적인 초점과 흐름은 전혀 상이하다고 봐도 무방하다. <노다메 칸타빌레>와 <베토벤 바이러스>가 비슷한 느낌을 주었지만, 치아키가 세계적인 지휘자를 꿈꾸는 학생이고, 강마에가 이미 세계적인 지휘자였던 것처럼, <싸인>에서 윤지훈과 고다경, 이명한은 이미 현역 법의학자이지만 <보이스>의 주인공들은 법의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이다.

정확히 말하면 법의학 세미나를 듣는 의대생들의 이야기로, 해부를 하게 되는 유체(遺體)로부터 마지막 메시지를 담아내서 진실을 규명하고자 하는 법의학에 관한 부분을 휴머니즘의 측면에서 목도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시체가 등장하고 여기에 과학적 잣대를 들이대는 분석과 해부가 필요한 부분을 강조하는 법의학이라는 주제로 볼 때 드라마는 수사물이나 추리물로 받아들여지기 쉽다. 하지만 <보이스>에서 추리는 그저 전개의 과정일 뿐 극 중에서 카지 다이키가 계속해서 입에 달고 다니는 "どうして" (어째서?) 라는 물음이 처음과 끝에 꾸준히 존재한다.

진실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태도는 어떤 것이 좋을까? 당연하고 천편일률적인 것에서 ‘막장’이라는 설정을 투입해서 비난을 받는 우리나라의 일부 드라마에 대한 회의가 어쩌면 일본 드라마에 대한 관심을 부추기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일본드라마도 막장의 내용을 가지는 것들은 눈치 따위는 전혀 보지 않고 확실하게 막나가고 있다. 어쨌든 <보이스>는 추리의 과정을 통해 밝혀지는 것의 권선징악적 측면보다는 ‘나타나는 진실’이라는 존재 자체에 대한 물음을 던지고 있다. 그것은 이전의 <백야행>에서 느꼈던 "꼭 사실을 파헤쳐야만 하는가?" "정의가 반드시 진리일까?" 라는 질문과 맥을 같이한다.

 

<보이스>에 등장한 초반의 에피소드는 유체에 남겨진 증거들을 통해 확실치 않았던 사인을 확실히 밝히고, 이를 통해서 먼저 떠나간 이가 세상에 남기고자 했던 따스함을 담고 있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밝혀지는 진실이 그 자체로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의 의문을 던지기도 한다.

법의학의 장치인 부검으로 인해, 의문사에 대한 막막함과 갑자기 떠날 수밖에 없었던 망자의 유훈이 전달되는 과정이 있다면, 그 후 ‘모두가 유체의 부검과 확실한 사인을 알고 싶어할까?’라는 의문을 만나고, 유족을 위해 존재한다고 했던 법의학이 항상 유족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냐는 딜레마와 마주하게 된다. 물론 정답은 "그렇다."로 귀결 지어진다. 하지만 낱낱이 밝혀진 사실의 조각 자체로 현실이 남겨주는 과제만 놓고 보자면 그것이 항상 옳았다고 볼 수는 없다.

예를 들어 한 에피소드에서는 자신의 죽음으로 가족들에게 보험금을 남겨주고자 했던 아버지의 죽음이 등장한다. 비록 법의학에 의해 자실임이 밝혀져서 유족들은 보험금을 받을 수 없게 되지만, 사고사로 위장되었으면 가족들이 인지하지 못했을 아버지의 마음, 즉 죽음으로라도 내 가족들에게 더 나은 생활을 보장해주고 싶었던 가장의 마음을 전달할 수 있었다는 결론을 내린다.

가장의 죽음이 사고사가 아닌 자살로 밝혀져 보험금을 받지 못하게 된다면 그의 죽음은 결국 아무 의미 없는 것이 되냐는 유족의 울음에 대한 대답은 이제부터 그들이 망자의 마음을 가슴에 담고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서 그 의미가 결정지어질 수 있다는 답으로 마무리한다. 하지만 결국에 마주하게 되는 최후의 결론은 "자실을 하면 안 된다." 는 보편타당한 결론이다.

 

에피소드 형태로 극을 진행시키는 이 작품은 수없이 반복되는 웃음과 감동이라는 코드의 반복으로 단조로움을 줄 수도 있다. 하지만 똑같은 방법을 통하지만 각기 다른 질문을 던져서 종국에 같은 결론을 내리는 장치를 통해, 삶이라는 것에 대한 마음가짐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매력이 있다. 진실을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혼란스러운 방법은 망자가 자신의 유체를 통해 던져준 메시지가 결코 단순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방증이라고 할 수 있다.

가장 마음을 울린 것은 30년을 함께 산 노부부의 이야기였다. 오랫동안 함께 살아온 남편을 위해 죽음의 순간이 경각이었던 시기에도 일상을 차분히 준비했던 할머니의 모습은 잔잔함 속의 먹먹함을 전달하기도 한다.

또한 소설가의 존엄사와 관련된 에피소드도 무척 인상적이다. 특히 의사에게 자신의 펜을 건네주며 "내가 살았던 증거" 라고 말하는 부분은 무척이나 긴 여운이 될 듯하다. 각자의 차이가 있는 만큼 사람들은 자신의 삶이 세상에 화려하게 남길 바랄 수도, 혹은 조용히 지나치길 바랄 수도 있다. 하지만 세상에 남겼던 자신의 자취가 무책임하게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지워지길 바라는 이는 없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살아 숨 쉬는 이 공간과, 발걸음이 딛고 있는 세계 모두가 이 세상을 스치고 지나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생명체들이 이곳에 살았던 증거인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증거로 말미암아 세상의 가치가 더욱 빛날 수 있는 것이다. 죽은 사람을 위한 의사라는 법의학 전공 부검의에 대한 설명은 결국 망자의 죽음을 위로하기 위함이 아니라, 언젠가는 유체가 될, 아니 유체가 되기 위해 하루하루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위한 자위이자 위로인지도 모른다.

매회 마다 지겹도록 외쳐대는 카지 다이키의 "どうして" (어째서?)는, 그래서 사인에 대한 의문이자 그러한 사인에 이르기까지 이어진 상황과 역사에 대한 질문일지도 모른다. ‘잃어버린 목숨을 구하는 의학’인 법의학의 중요성을 함께 인식시키고 있음은 물론이다.

2009년 1분기, 후지TV를 통해 방송됐던 <보이스 - 생명 없는 자의 목소리>는 에이타, 이시하라 사토미를 비롯해 이쿠타 토마, 엔도 유야, 사토 토모히토, 야다 아키코, 토기토 사부로 등이 출연했다.

 

 

문화저널21 / 2012년 6월 24일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