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을 '결혼에 대한 환상'이라고 적어 놓으니까, 뭔가 삐뚤어진 심기를 표현한 거 같다. 하지만 부정적인 표현이 아니다. 특별한 이유로 인해 일본 드라마를 2년 동안 거의 100편 이상을 봤던 적이 있었다. 다양한 작품을 봤고, 그중에 멜로와 로멘스 작품도 많았다. 하지만 해피앤딩이 압도적인 일본 드라마들 사이에서 개인적으로 '연애와 결혼에 대한 환상'을 느꼈던 거의 유일한 작품이 <야마토 나데시코>다.
2000년 4분기의 게츠쿠(げつく)였던 <야마테 나데시코>는 일본 드라마 시청률을 견인했던 여배우 중의 한 명인 마츠시마 나나코가 주연을 맡은 드라마다. 남자 주인공인 츠츠미 신이치는 당시에도 살짝 아저씨 같다. 사전적 의미로 찾아보면 야마토 나데시코(大和撫子)는 야마토와 나데시코의 합성어로 일본 여성을 술패랭이꽃의 가련하고 청초한 아름다움에 비유한 말이라고 한다. 단순한 단어라기보다는 일본의 문화라고도 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의 비슷한 표현으로는 요조숙녀, 현모양처, 양갓집 규수 등을 들 수 있다. 실제로 이 드라마를 리메이크한 우리나라 드라마의 제목은 <요조숙녀>로 김희선, 고수 주연으로 2003년 SBS에서 16부작으로 방영했다. 그런데 원작인 <야마테 나데시코>를 우리나라의 케이블 TV에서 방영하면서 제목을 <내 사랑 사쿠라코>로 바꿨다. 현재는 넷플릭스에서 시청할 수 있다.
드라마 자체는 별다를 게 없다. 어렸을 때부터 가난이 싫었던 여주인공 진노 사쿠라코는 돈 많은 남자와 결혼하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다. 스튜어디스가 되었지만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은 돈 많은 남자를 만나는 것이다. 남자에 대한 기준은 오로지 재력이다.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개척하고 극복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 문화에 존재하는 여자력(女子力)을 극대화하여 능력있는 남자를 만나고자 한다. 그래서 외모를 가꾸고, 스튜어디스가 되었으며, 여전히 가난하지만 버는 족족 자신의 외적인 부분을 치장하는 데에 아낌이 없다. 또한 돈 많은 직업군과의 미팅에 적극적이다.
"빚더미에 앉은 잘생긴 남자와 부유한 뚱보 남자 중, 어느 쪽이 결혼해서 여자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까?"
연애도 중요하지 않다. 사쿠라코의 목표는 결혼이다. "남녀는 만난 후 일주일이 승부"라고 주장한다. 그런 사쿠라코의 이성관과 결혼관에 대해 동료들도 꾸준히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톤 다운일 뿐 비판이다. "비뚤어졌다"고 직격하지만 사쿠라코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외모나 성격으로 남자를 고르는 건 괜찮고, 돈으로 고르는 건 안 돼? 키, 얼굴, 성격은 타고난 거잖아. 유전자와 환경 문제야. 노력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불공평한 장벽이 있어. 하지만 부자가 될 수 있느냐는 본인의 노력에 달린 거잖아. 선천적으로 못생긴 남자도 후천적 노력으로 부를 쟁취할 수 있어. 내 선택 방법이 더 공평한 평가 아니야?"
아무 생각 없이 들으면 설득력 있다. 하지만 사쿠라코가 원하는 결혼 상대의 조건은 자수성가한 부자가 감히 명함을 내밀 수 있는 수준은 아니다. 얼굴과 성격도 의술과 노력으로 바꿀 수 있는 반면, 세습적인 부가 압도적인 위력을 유지하고 있는 현재의 관점에서 보자면 사쿠라코의 주장은 여전히 어긋나 있다.
아무튼 사쿠라코는 생선가게를 운영하는 나카하라 오스케를 만나게 된다. 미국 MIT의 촉망받는 유학생이었던 오스케는 집안 사정으로 수학자의 길을 포기하고 귀국해 생선 가게를 맡게 됐고, 과거에 헤어졌던 연인과 너무도 닮은 사쿠라코와의 인연을 이어가기 위해 부자인 척 위장을 한다. 사쿠라코는 이미 남자를 만날 때마다 자신의 가정 환경을 속여 왔기 때문에, 그냥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고 보면 된다. 서로를 속이는 위선과 기만의 만남이지만, 유약한 오스케는 사랑 때문에 한 번 한 거짓말이 눈덩이처럼 커진, 본래는 순수하고 착한 인물로 나오고, 사쿠라코는 속물 근성 가득한 밉상이지만 그 모든 것을 유쾌하게 용서받을 수 있을 만큼의 매력을 자랑하기에, 현실에서 벌어졌다면 꼴불견이겠지만, 드라마니까 웃어 넘길 수 있는 스토리를 이어간다. 일종의 막장이다.
결국 오스케는 다시 기회를 얻어 수학자의 길을 선택하게 되고, 돈이 아닌 진실한 사랑을 깨달은 사쿠라코와 이어지는 아주 전형적이고 뻔하며 반전 없는 엔딩으로 마무리 된다. 냉정하게 평가한다면 속물 근성 가득하다가 전형적인 멜로의 흐름을 한 치도 벗어나지 않은 채 예상되는 결과에 이르는 작품이다. 다만 25년 전의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영상에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참 예쁘다. 영상미가 아니다. 대부분은 진노 사쿠라코를 연기한 마츠시마 나나코의 힘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전성기의 젊은 여배우가 갖고 있는 사랑스러움을 여지 없이 발현했다.
"내 눈에는 보여요. 10년 후에도, 20년 후에도 당신 옆에는 내가 있을 거예요. 유감스럽게도, 당신과 있으면 난 행복해요."
작품의 90% 이상에 공감이 전혀 갈 수 없는 밉상으로 등장하면서도, 물 없이 고구마 10개를 집어 삼킨 것 같은 답답함을 한 마디 대사로 바꿔버리고 용서하게 만든다. 결혼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는 사람도 결혼과 행복을 쉽게 연결하고 수긍할 수 있는 그림이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OST는 미샤(Misia)의 Everything인데, 이 곡도 우리나라에서 2004년에 리메이크해서 발표했다.
야마테 나데시코 (やまとなでしこ, 2000, 일본)
연출 : 와카마츠 세츠로(若松節朗)
진노 사쿠라코 : 마츠시마 나나코(松嶋菜々子)
나카하라 오스케 : 츠츠미 신이치(堤真一)
마리코 사쿠마 : 모리구치 요코(森口瑤子)
히가시주조 츠카사 : 아즈마 미키히사(東幹久)
카스야 신이치로 : 카케이 토시오(筧利夫)
시오타 와카바 : 야다 아키코(矢田亜希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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