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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시계는 멈추지 않는다 - 올림픽대표팀 감독 홍명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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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10년전 이 맘 때, 그는 안방에서 열리는 월드컵을 앞두고 결과가 불투명했던 우리나라 축구 국가대표팀의 주장이었다. 당시에 홍명보라는 이름은 대한민국 국민 누구에게나 ‘축구선수’로 통하는 이름이었다.

10년이 지났다. 월드컵의 영광된 기억과 함께 새겨진 ‘영원한 캡틴’ 홍명보는 이제 런던 올림픽을 준비하고 있는 올림픽 축구대표팀의 감독이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홍명보라는 이름은 여전히 ‘축구선수’가 익숙하다. 그만큼 그라운드에서 붉은 전사들을 호령하던 그의 넘치는 카리스마가 뇌리에 깊숙이 박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홍명보라는 이름에는 더 많은 직함이 붙어 다닌다. 앞서 말한 ‘축구선수’와 ‘축구 감독’은 물론 재단법인 홍명보장학재단의 이사이며 (주) 엠비스포츠의 사장인 동시에 유니세프의 홍보대사이고, UNAIDS의 홍보대사이기도 하다. 대한축구협회를 넘어서 국제축구연맹 FIFA의 선수분과위원회 위원이고 반인종차별 홍보대사로도 위촉되었다.

스페인과의 4강전에서 마지막 승부차기를 성공시키고 양 팔을 벌려 환하게 웃던 홍명보가 이미 10년 전의 기억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그간 그가 역임했던 직함들을 추가하면 정말 다양하고 많은 흔적들이 존재한다. LA관광청 홍보대사이기도 했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홍보대사이기도 했으며, 서울시 홍보대사의 역할도 수행한 바 있다. 축구계에서도 KFA 제50대 집행부 이사와 기술위원을 역임했다.

이제 홍명보는 ‘축구인’의 경계를 넘어서 단순한 유명인이 아닌 ‘사회저명인사’의 범주까지 운신의 폭을 넓히고 있는 것이다. 지난 18일 재단법인 홍명보장학재단에서 주최한 ‘하나은행과 함께하는 SHARE THE DREAM FOOTBALL MATCH 2011'에 참석했던 박원순 서울시장은 홍명보를 일컬어 “이제는 축구 국가대표일 뿐 아니라 나눔의 국가대표”라는 말을 했다.

기부 문화를 두고 여전히 구세군 냄비와 연말소득공제, 그리고 가진 자들의 연말연시 행사라는 생각이 팽배한 우리 사회에서 홍명보는 인상적인 행보를 걸어왔다. 그것이 10년의 세월동안 굳건히 자리를 잡고 있는 재단법인 홍명보장학재단이 존재하는 이유이며 그가 사랑받는 축구선수에서 존경받는 축구인으로 거듭나게 만들어 준 밑거름이다. 이코노미컬쳐에서 홍명보를 만난 것은 국가대표팀 감독이었던 전 조광래 감독의 경질로 분위기가 뒤숭숭했던 지난 12월 13일, 대한축구협회 근처의 한 카페였다.

장학재단의 이사장, 사회사업가 홍명보

 

“2002년 월드컵에서 우리 대표팀이 거둔 성공에는 여러 원인이 있었겠지만 그 중 가장 큰 원동력은 열성적으로 호응하고 응원해줬던 국민적인 성원이 아니었나합니다. 그 당시 국민들이 보여줬던 그 성원의 열기는 정말 잊지 못할 겁니다. 팬들과 국민들께 상상할 수 없는 큰 빚을 졌다고 생각했어요. 운동선수라면 그런 성원에 대한 보답을 경기장에서 보여드려야 하지만, 이미 그 당시에 저는 은퇴 여부를 결정할 시기였죠. 어떤 방법이 없나 고민하다가 생각난 것이 장학재단을 통한 사회 환원 활동이었습니다.”

거기에 선수로서의 마지막 생활을 미국에서 한 홍명보는 그의 소속구단이었던 LA 겔럭시가 지역 사회에서 펼치는 자선활동 및 사회환원활동을 보면서 많은 점들을 느꼈다고 한다. 그러한 모습을 통해 어느 정도 큰 틀만 잡아놓고 있었던 장학재단의 세부적인 사항들을 설정할 수 있었고 이것이 자선경기등을 준비하게 된 밑거름이었던 것이다.

“축구선수였기 때문에 어려운 환경의 선수들을 돕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오랫동안 운동을 하면서 힘든 여건 속에서 운동한 친구나 선후배들을 주변에서 많이 봤으니까요. 어린 나이에 그런 어려움을 겪은 선수들이 좌절하지 않고 축구에 대한 꿈을 꿀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은 제가 장학재단을 하는 이상 반드시 해야할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홍명보장학재단의 제1목적사업은 장학생 선발이다. 어느덧 재단의 장학생 선발은 10년째 이어지고 있다. 10년의 세월 속에 재단의 도움을 받은 장학생의 숫자도 어느 덧 200명을 넘어섰다. 그들 중에는 각급 연령대의 대표팀에 선발이 된 선수들도 있고, 당당히 프로무대에 입성해 팬들의 성원 속에 볼을 차는 선수들도 있다. 한국 여자축구의 대들보로 성장한 지소연과 여민지 역시 홍명보 장학재단의 장학생 출신이다. 그리고 올해 국가대표팀에 이름을 올린 울산현대의 이재성 역시 그렇다.

홍명보는 장학재단의 장학생이었던 선수를 그라운드에서 만날 일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막연히 해본 적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언제쯤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이고, 또 그때에 어떤 느낌이 들지는 예상해 본 바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지난 청소년 대회 때 깜짝 놀랐어요. 내가 데리고 나가야 하는 우리 대표팀 선수 중에 두 명이나 우리 재단의 장학생 출신인 거에요.”

현재 J리그 사간도스에서 활약하고 있는 김민우와 FC서울의 문기한이 그들이다. 홍명보 감독은 그러나 그들에 대해서도 분명한 선을 그었다.

“기특해요. 장학생으로 선발된 그들이 어떤 환경에서 공을 찼고, 얼마나 힘든 시기를 보내며 선수로서의 꿈을 키워왔는지 너무 잘 아니까요. 하지만 마음을 쓰는 건 거기까지입니다. 그렇다고 대표팀에서 좀 더 봐주고 배려해 줄 수는 없는 일이니까요.”

당연한 말이지만 이미지만큼이나 원론적인 홍명보의 말이었다.

한편 얼마 전 MBC TV의 위대한 탄생 시즌2에 출연해 화제를 모았던 구자명이 떠올랐다. 구자명은 지난 2004년, 중동고 시절에 홍명보장학재단의 장학생으로 선발되었고, 17세 이하 국가대표팀에 선발이 되며 장래가 촉망되던 선수였다. 그러던 그가 부상으로 더 이상 축구를 할 수 없게 되었고, 혼란과 방황의 시기를 거쳐 지금은 가수의 꿈을 꾸고 있다. 홍명보의 눈에 그런 구자명은 어떻게 비쳤을까?

“어색해요. 그 자리에 있을 아이가 아니라는 생각이 자꾸 들었어요.”

홍명보는 얼마 전 구자명이 방송에 출연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관심 깊게 해당 프로그램을 시청한 바 있다고 한다. 프로그램에서 많은 전문가들과 시청자들에게 박수를 받으며 감동을 준 구자명이었지만 홍명보의 눈에는 그라운드를 누비던 구자명의 모습이 더 강하게 남아 있다고 했다.

“운동선수에게 치명적인 부상이라는 건 정말 사형선고와 같죠. 그런 상황에서 어려움을 극복하고 또 다른 자신의 재능을 발견해 도전한다는 것에는 박수를 쳐줘야 하고 응원을 해주고 싶습니다. 하지만 보는 내내 저는 어색했어요. 그 아이가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를 달리던 모습이 계속 생각났거든요. ‘저 녀석이 있을 곳은 축구장 필드위인데’ 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던 것은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홍명보장학재단은 꾸준한 장학생 선발을 통해 어려운 환경에 있는 축구 꿈나무를 지원했고, 매년 크리스마스 즈음에 자선축구경기를 개최하여 소아암 환아들을 비롯, 힘든 상황에서도 꿈을 잃지 않고 있는 이들을 도와왔다.

홍명보는 처음 장학재단을 시작했을 때 이렇게 오랫동안 꾸준히 유지하며 활동을 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을 갖지 못했다고 한다. 특별히 발전하게 되리라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고 했다. 처음부터 어렵게 시작했고, 하는 내내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단다. 비영리재단이고 국민들에게 받은 성원을 사회적으로 환원한다는 취지에서 시작했기에 성공과 실패라는 단어 자체가 머리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저 어떻게든 해내겠다는 마음만 있었다고 했다. 스스로의 취지와 이유가 분명했던 만큼 반드시 해내겠다는 책임감이 지금까지 이어진 원동력 중의 하나라고 자평했다.

“그보다 더 큰 건 꾸준히 지켜봐주고 성원해주신 많은 분들 덕분이었습니다. 주변에서 계속 관심을 가져주셨던 덕에 저 역시 이 일에서 더 큰 의미를 찾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회공익재단을 운영하며 홍명보가 느낀 가장 큰 보람은 재단의 도움을 받은 사람들이 그들의 어려운 처지를 극복하고 일어서는 모습을 봤을 때라고 한다. 자신의 처지를 이겨내고 프로 그라운드를 누비는 자격을 얻게 된 재단 출신의 선수들은 물론 어린나이에 암이라는 난치병과 싸워야하는 힘든 시기를 재단의 도움으로 함께 극복한 이들을 만나고, 그들의 소식을 접하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뿌듯함은 물론 장학재단을 시작하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한다.

축구를 통한 사랑 나눔, 홍명보장학재단의 자선축구

그러나 홍명보는 여전히 기부 문화에 대한 사회 인식에는 아쉬움을 표했다. 예전보다 많이 나아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일반의 관심과 힘이 더욱 필요하다는 것이다. 기부 문화 자체를 특별하게 여기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의 조성도 부족하다고 했다. 특히 이러한 부분은 홍명보장학재단이 주최하는 자선경기에서 두드러지고 있다.

“올해로 9년째죠. 자선경기는 큰 행사기 때문에 일단 대회를 개최하는 데 많은 자금이 필요합니다. 많은 분들의 손길과 기업 스폰서의 도움이 절실하죠. 하지만 많은 기업들이 좋은 일들을 많이 하면서도 자선경기처럼 스포츠를 통해 나눔을 실천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직 익숙하게 여기지 않는 것 같습니다.”

사실 홍명보라는 아이콘이 개최하는 자선 축구 행사에 수많은 스타플레이어가 참여한다면 당연히 많은 기업들이 줄을 지어 도와주겠다고 나설 것 같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때문에 홍명보는 자선 경기 자체를 대승적으로 좋게 바라봐주는 시선을 당부했다.

“사실 한번 참여하시고 도움을 주신 기업들은 꾸준히 매년 참여를 하십니다. 그만큼 저희도 스폰서의 권익을 지켜드리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좀 더 큰 틀에서 연말의 나눔 행사를 바라보고 자선 경기에 큰 도움을 주시는 모든 분들게 이 자리를 빌어서 다시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2011년에도 자선 경기는 성황리에 펼쳐졌다. 지난 8년간 크리스마스에 맞춰서 축구경기를 펼쳤던 형태를 바꿔서 실내 풋살로 행사를 진행했다. 2002년 월드컵의 주역들과 현재 대표팀과 K리그에서 멋진 플레이를 보여주고 있는 선수들, 그리고 각 분야의 초청선수들이 모여 경기장을 가득 매운 관중들에게 재밌는 볼거리를 선사했다.

“너무 추웠어요. 경기를 뛰는 선수들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경기를 보러 와주시는 팬들이죠. 자선경기를 찾아주시는 팬들은 좋은 취지의 나눔에 동참을 해주는 분들이나 마찬가지 인데 날씨가 춥다보니 관중석에서 오히려 많이 힘들어하기도 했거든요. 그래서 이번에는 실내에서 진행을 해 봤습니다. 우리나라에는 돔구장이나 실내 축구장이 없으니 풋살로 준비를 했구요.”

9회째를 맞아 자선 축구가 갑자기 풋살로 진행된 이유다. ‘하나은행과 함께하는 SHARE THE DREAM FOOTBALL MATCH 2011'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자선경기는 홍명보와의 인터뷰를 진행한 이후인 지난 12월 18일에 잠실실내체육관에서 개최됐다. 자선축구라는 이름을 걸고 축구가 아닌 풋살을 진행하는 것에 대해 적잖이 부담감도 느꼈던 주최측의 우려와는 달리 경기장을 찾은 팬들은 물론 경기를 뛴 선수들 모두 호평 일색이었다.

초청선수로 경기를 뛰었던 프로야구 선수 김현수(두산베어스)는 앞으로도 계속 자선경기에 뛰고 싶다는 적극적인 의사를 표명했고, 기회가 되면 야구도 이러한 자선 경기가 개최됐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내비쳤다.

홍명보장학재단에서 마련하는 자선축구는 2012년에 10주년을 맞는다. 강산이 한 번 변하는 세월을 보내는 기념비적인 시기의 개최에 대해 홍명보도 많은 기대와 생각을 갖고 있었다.

“아무래도 10주년이니까 좀 더 신경 써서 대회를 준비하고 싶어요. 해외의 유명선수도 초청하고, 팬들에게 뭔가 더 좋은 볼거리를 줘서 꼭 오고 싶은 행사로 만들고 싶은 욕심이 이는 건 사실이죠.”

오랜 시간 동안 자선경기를 진행하면서 많은 이들에게 이 대회가 알려졌지만 여전히 더 많은 계층의 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참여하는 것이 홍명보의 바람이었다. 홍명보장학재단의 감사이며 자선경기에 단 한 차례도 빠지지 않고 개근을 하고 있는 경남FC의 김병지는 이렇게 말했다.

“이런 자선 경기가 계속 이어질 수 있는 것도 홍명보라는 사람의 힘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축구라는 경기로 이런 큰 자선 이벤트를 또 누가 지속적으로 진행할 수 있겠습니까? 자선경기가 자리를 잡아서 모든 축구 선수들이 ‘난 올해 열심히 하고 잘 했으니까 연말에 자선경기에 뛸 수 있을 거야.’라는 생각을 가질 만큼 위상이 높아지고, 국민 모두가 당연히 그 시기에 열리는 경기라고 인식하게 되길 바랍니다.”

 

결국은 축구인, 그라운드 위의 홍명보 

 

 

사회 공헌 활동은 잠시 접어두고 이번에는 국민들과 축구팬들의 관심이 더 첨예하게 쏠린 올림픽 대표팀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목표가 뭐냐? 라던가 메달을 따올 수 있겠냐? 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대답을 잠시 미뤄두겠습니다. 지금의 당면과제는 올림픽 본선에 오르는 것 자체니까요. 일단 현재 상황이 긍정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스포츠에는 변수가 존재하기 때문에 항상 철저히 준비하고 한시도 방심을 해선 안 되는 것 역시 사실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본선에서의 목표는 아직 정하지 않았습니다. 그건 예선을 통과한 다음에 세워도 늦지 않거든요.”

청소년 대표들을 이끌고 이집트에서 좋은 성적을 낸 이후 3년여 동안 그 선두를 꾸준히 끌어올려 현재에 이른 감독 홍명보에게 지난 광저우 아시안게임은 실패라는 멍에로 남아있다. 아시안게임에서 실패했다는 평가에 대해 홍명보는 이렇게 말했다.

“동의합니다. 변명할 생각도 없습니다. 금메달을 목표로 하고 간 대회에서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으니 실패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이전부터 말했듯이 항상 이 선수들의 목표는 올림픽에 있었습니다. 아시안게임 자체를 놓고 봤을 때 실패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올림픽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는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던 대회라는 점 또한 기억해야 한다고 봅니다. 저는 물론 선수들도 아시안게임을 통해 성장할 수 있었고, 이는 분명 올림픽을 준비하는 데 좋은 밑거름이 되리라 믿습니다.”

사실 축구라는 종목에서 올림픽은 그다지 큰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 심지어 국제축구연맹 FIFA는 자신들의 주관 대회가 아니므로 올림픽과 관련한 각국 대표팀의 선수 차출에 대해 강제성을 적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홍명보는 올림픽과 관련해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했다.

축구 역시 하나의 스포츠이며, 세계 최대의 종합 스포츠 제전인 올림픽에 함께 한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는 걸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또한 올림픽은 우리 국민들이 가장 관심을 갖고 집중하는 대표적은 국제대회이므로, 대회에서 보여주는 각 종목 선수들의 모습이 국민들에게 힘이 되고 자긍심이 되어 준다는 사명감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모두가 알고 있다시피 올림픽의 메달은 선수들에게 병역을 면제 받을 수 있는 혜택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홍명보는 병역 혜택에만 치중되는 관심에 대해 분명한 선을 그었다.

“병역 혜택은 선수들에게 민감한 부분입니다. 그냥 군대를 안간다는 의미보다 축구 선수에게는 해외 진출은 물론 장래의 진로와 관련해 많은 부분이 얽혀 있는 문제가 병역이니까요. 그래서 병역 문제는 당연히 민감하고 중요한 부분입니다. 하지만 단지 그런 목적 하나 때문에 올림픽 팀에서 뛴다는 건 문제가 있는거죠. 그 부분에만 온 신경을 집중하면 당연히 성적도 잘 나올 리가 없습니다. 감독으로서 선수들의 그런 플레이는 분명히 눈에 보입니다. 그런 부분에만 집중하는 선수를 기용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한 나라의 대표로 출전했다는 자부심과 책임감이 우선입니다. 국가를 대표한다는 생각을 접어두더라도 같은 연령대 선수들과 세계 최고의 종합 스포츠 제전에서 뛴다는 자체에 의욕과 의지를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사실 조광래 전 감독이 경질되기 전까지 올림픽대표팀은 국가대표팀과 선수 선발을 두고 몇차례 잡음이 일었다. 올림픽대표팀에서 두각을 나타낸 선수들이 국가대표팀으로 차출이 되며 국가대표팀의 조광래 전 감독과 올림픽대표팀 감독인 홍명보 사이에도 신경전이 존재했던 것이다.

“당연히 국가대표팀이 먼저입니다. 다만 국가대표팀에 가서 벤치에만 앉아있고 제대로 플레이를 하지 않을 거라면 국가대표팀에 가 있는 게 선수 본인에게도, 올림픽 대표팀에도 손해입니다. 그 부분을 확실히 하고 싶어요. 우리 올림픽 대표팀의 핵심 선수라 하더라도 대표팀에서 꼭 필요한 선수라면 당연히 내줘야 하는 게 맞다고 봅니다.”

사실 국가대표와 올림픽대표팀을 오가는 젊은 선수들이 어느 때보다 많은 게 사실이다. 유럽파인 구자철과 손흥민, 지동원을 비롯하여 J리그에서 활약하는 조영철, 김영권, 김진현, 김보경, K리그에서 두각을 나타낸 홍정호, 홍철, 서정진, 윤빛가람 등 귀에 익숙한 선수들이 모조리 출동한다면 전에 없는 드림팀이 올림픽 대표팀에서 만들어진다는 기대가 있다. 게다가 여기에 와일드카드로 23세 이상의 선수가 3명 더 포함될 수 있다.

“아무래도 그런 말들이 많죠. 하지만 해당 연령대에 해외 활동하는 선수들이 많다보니 그게 선수들의 이름값으로 작용하는 부분도 있는데, 감독으로서의 내 철칙은 선발하는 시점에서의 상태가 그 선수의 이름값보다 더 중요하다는 겁니다. 그게 내 역할이고 지금까지도 그렇게 해왔습니다. 자신의 기량을 인정받아서 해외에서 경험을 쌓고 있는 좋은 선수들이 많은 것은 물론 장점이지만, 팀 스포츠이기 때문에 이름값만 내세워서는 팀웍을 발휘하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그리고 아직 어리고 발전할 것들이 많은 선수들이기 때문에 당장 내일 일도 장담할 수 없는 게 사실이죠. 어떤 포지션에 그 누가 되었던, 저는 그 시점에서 가장 상태가 좋은 선수를 뽑을 겁니다.”

훌륭한 선수는 훌륭한 감독이 될 수 없다는 말도 있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볼 때 홍명보는 그 속설에 포함되지 않는 인물인 걸로 보인다. 홍명보는 가끔 2002년 당시의 영상을 접하게 되면 “내가 정말 저때 저기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 만큼 여전히 꿈같고 아련하다고 한다. 어려움이 없었던 몇 안되는 선수였다는 평가에 대해서는 분명 자신도 어려운 시기를 겪었고 극복해냈지만 남들이 그런 부분을 알아주기 보다는 본인 스스로 위기때마다 항상 준비하고 극복해냈던 노력에 더 의미를 두고 싶다고 했다.

학창시절, 또래보다 크지 않은 체격조건으로 많은 고민을 했고 축구를 포기할 생각도 했었다는 홍명보는 결국 그 모든 순간을 극복하고 이겨내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축구선수가 되었고, 월드컵의 별이 되었으며, 전세계에 이름을 알린 축구인으로 우뚝 섰다. 그리고 이제는 올림픽을 준비하는 대표팀의 감독이며, 스포츠인 출신으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사회사업가이기도 하다.

그에게 선수로서, 그리고 지도자로서 경험했던 최고의 경기를 물었다.

“가장 잊을 수 없는 경기는 역시 2002년 월드컵 첫경기였던 폴란드 전입니다. 우리나라 월드컵 역사의 첫승이었고, 기적같았던 그 당시의 역사를 만들었던 첫 경기였으니까요. 지도자로서의 최고의 경기라... 글쎄요. 그건 나중에 말씀드릴께요. 아직 많은 경기가 남았잖아요. 감독 생활이 끝나고나면 그 때 대답해드리겠습니다.”

그렇다. 감독 홍명보의 시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꿈을 향해 달려가는 모든 이들과 함께 하고자하는, 그리고 축구 선수와 감독을 거쳐 축구 행정가로의 목표를 여전히 가슴에 품고 있는 홍명보의 삶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런 그에게 자꾸 지금까지의 베스트를 회고해내라 강요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

촉망받는 축구 대표로 고려대학시절 태극마크를 가슴에 단 후, 오랜 시간동안 변함없이 국민들에게 환희와 감동을 선사하고 이제는 추억과 미래를 선물하고자 하는 홍명보. 점차 각박해지고 개인주의가 만연해가는 현대사회에서도 자신의 상황에 안주하지 않고, 또 그늘진 곳의 안타까움도 놓치지 않으려는 그의 도전정신과 나눔 정신은 여러 분야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라운드의 시계는 멈췄을지 모르지만 홍명보의 시간은 여전히 끝을 모르고 전진하고 있다. 그라운드에서 항상 당당하고 자랑스러웠던 등번호 20번의 홍명보가 그려나가는 축구의 꿈과 사회사업의 소망이 우리 사회를 더욱 밝게 비춰주기를 기대한다.


이코노미컬처 / 2012.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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