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fAntasize/iNside sports

포스코 외면 속에 외롭게 전진하는 포항 스틸러스

728x90
반응형

 

K리그 클래식 초반 레이스에서 선두질주를 이어가고 있던 포항스틸러스가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며, 16강행에 실패했다. 현대오일뱅크 K리그 클래식 2013에서 9라운드까지 5승 4무로 무패행진을 이어가고 있으며, AFC 챔피언스리그에서도 단 한 번 밖에 패하지 않았던 포항의 아시아무대 도전 실패는 큰 아쉬움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포항의 현재 상황을 돌아본다면, 이번 16강 탈락은 당연한 귀결이며, 오히려 다행일 수도 있다. 지난 해 FA컵 우승을 차지하며, K리그 3위를 차지했던 포항 스틸러스의 장성환 사장은 국내 리그와 FA컵은 물론 AFC 챔피언스리그까지 우승을 차지해서 트레블을 달성하겠다고 밝혔고, 올 한해 50만 관객을 유치하겠다는 목표를 내세웠다.

그러나 목표만 창대할 뿐, 그에 따른 포항의 준비는 사실상 전무하다시피 했다. 이는 모기업인 포스코가 자사의 경영난을 이유로 포항에 대한 지원과 운영비를 대폭 삭감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용병 없는 팀 포항, 재계 6위 모기업은 빛 좋은 개살구


포스코는 경영난을 이유로 비상경영을 선언하며, 올 한해 구단 운영비를 기존의 110억 원에서 100억 원으로 삭감했다. 여기에 그동안 구단을 운영하며 누적된 적자도 올해에 털어내겠다고 결정하며, 포항은 사실상 7~80억 수준의 운영비로 1년을 보내게 됐다.

이러한 상황이 되자 포항은 지쿠와 아사모아, 조란 등 기존 용병을 모두 내보냈고, 새 용병도 뽑지 않았다. 용병 영입에 쓸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군 입대와 방출 등으로 기존의 선수단 규모조차도 축소시켰다. FA였던 황진성과 신화용을 잡은 것만 해도 용하다고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포항스틸러스는 올 시즌을 국내 선수들로만 시즌을 치르고 있다. 국군체육부대인 상무를 제외할 때, 한국 프로 축구사에서 용병을 쓰지 않았던 팀은 1997~2000년의 대전 시티즌과 1998년의 울산현대가 전부다.

최초의 시민구단으로 창단한 후, 빈약한 살림살이를 벗어나지 못했던 대전은 용병을 쓸 엄두를 내지 못했던 것이고, 울산의 경우는 당시 김병지, 김현석, 유상철, 정정수 등 화려한 국내 스쿼드를 갖추고 있었기에 용병 없이 시즌을 치른 것이다.

용병이 없는 가운데서도 포항이 무패행진을 이어가며 선두로 치고 나가자, 축구팬들은 황선홍 감독을 ‘황선대원군’이라고 부르며, 토종 라인업의 성공가도를 이어가고 있는 포항에 대해 높은 평가를 하고 있다. 하지만 포항이 이러한 상승세를 시즌 마지막까지 이어가서 우승이라는 결과로 귀결 지을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황선홍 감독은 지난 해 FA컵 우승을 차지한 후, 기자들과의 자리에서 “비록 FA컵을 우승했지만, 장기적인 한 시즌에서 최고의 성적을 내기 위해서는 A급 용병이 꼭 필요하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 AFC 챔피언스리그까지 소화한다면 기존 선수층을 더욱 두텁게 할 수 있는 보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자리에는 포항스틸러스의 장성환 사장도 배석해 있었다. 그러나 올 시즌 포항의 선수 구성은 지난해보다 나빠졌으면 나빠졌지 나아진 사정을 찾아볼 수 없다.

AFC 챔피언스리그에서도 포항은 국내리그와의 병행을 위해 꾸준히 정상급 전력을 가동할 수 없었다. 게다가 팀의 주축인 황진성이 군 입대 문제로 해외 출국이 불가능 해, 원정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결국 포항의 전력은 리그와 챔피언스리그를 함께 병행하기에는 충분치 못했다는 것이다.

포항, 엷은 선수층과 용병의 부재, 체력적 부담을 극복하라


포항이 여전히 국내에서 성적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는 유스 시스템에서 양성된 어린 선수들이 탄탄하게 자리를 잡고 있으며, 소위 ‘스틸타카’로 불리는 국내 선수들 간의 긴밀한 패스플레이와 팀플레이가 시너지효과를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달 27일, 전북현대와의 원정경기에서 1-1 무승부를 기록하며, 17경기 연속 무패행진을 이어간 포항의 황선홍 감독은 “주력 자원들이 적은 상황에서도 선수들의 의지를 갖고, 열심히 노력해서 이룬 성과”라고 말하며, 어려운 상황에서도 선수들이 하나 된 팀 정신을 보여줬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선두를 달리고, 무패행진을 이어가고 있다고 해서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포항은 지난 시즌부터 최전방의 해결사 부재라는 고민을 안고 있다. 유기적이고 멋진 패스 플레이를 자랑하면서도 이를 결과로 연결하는 마무리에서는 아쉬움이 있는 것이다.

황선홍 감독은 지난 시즌 중반 선보였던 포항의 제로 톱 전술에 대해서도, 최전방 공격수들의 역할이 부족하다보니 꺼내든 고육책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여러 가지 변수가 있을 수 있지만, 만약 포항 특유의 ‘스틸타카’에 마침표를 찍어줄 수 있는 선수가 있었다면 포항은 지금보다 더욱 좋은 성적을 냈을 가능성이 높다. 포항의 용병 영입 불발이 더욱 아쉬운 이유도 바로 이 부분 때문이다.

포항은 자신들의 부족함을 채울 수 있는 용병이나 외부 선수 영입에 자금난으로 인해 나서지 못했고, 여전히 그 약점을 안고 있다. 그리고 그 부족함만큼의 아쉬움이 결과에도 반영되고 있다. 여기에 선수층마저 두텁지 않은 상황이라 체력적인 부담이 가중되는 여름이나 시즌 막판이 되면 포항이 지금과 같은 상승세를 계속 유지할 수 있다고 장담하기는 힘들다.

포항스틸러스의 선수들은 지금, 어쩌면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대한 혹은 그 이상을 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차라리 AFC 챔피언스리그에서 떨어진 것이 다행일 수 있다. 리그 정상을 다투는 팀들 중에서 경기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가장 한계에 부딪히는 것은 포항이기 때문이다. 이제 포항은 해외 일정은 생각하지 않고 국내리그에만 치중하면 된다.

축구계 일부에서는 올 해 포항이 좋은 성적을 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국내 선수들로만 구성하고서도 좋은 성적을 내는 것도 충분한 가치를 지니고 있지만, 결과적으로 대폭 규모를 줄이고 투자에 인색했음에도 성적이 보장된다면, 기존의 적극적인 투자를 주도하고 있는 구단들에게 부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과잉 투자도 문제지만, 투자가 없는 구단이 성공하는 것은 프로스포츠의 구조에 역행하는 것이다.

 

포스코는 얼마나 어려운 상황이기에 이러한 조치를 단행했을까?

포스코는 룩셈부르크의 아르셀로미탈, 중국의 허베이강철그룹과 바오강그룹에 이어 세계 4위의 조강능력을 자랑하는 국내는 물론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굴지의 철강 대그룹이다.

포스코는 지난 2010년만 해도, 5조 470억 원이라는 사상 최대의 흑자를 기록했으며, 지난해에도 세계적인 철강전문 분석기관인 WSD(World Steel Dynamics)로부터 세계 35개 철강사를 대상으로 생산규모, 수익성, 기술혁신, 가격결정력, 원가절감, 재무건전성, 원료확보 등 총 23개 항목을 평가한 결과, 가장 경쟁력이 높은 철강사라고 평가를 받았다.

지난해 3월, 회장 연임에 성공하며 2기 체제에 돌입한 정준양 회장은 철강본업에서 차별화된 경쟁우위를 지속적으로 확보하고, 철강, 소재, 에너지를 주축으로 하는 성장비전을 제시하며, 사업 확장에 상응하는 경영관리 역량과 위기관리 능력을 갖출 것을 강조했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2020년 매출 200조원 달성과 글로벌 100대 기업 진입이라는 목표를 제시했다.

그러나 포스코도 결국 세계적인 철강업계의 위기에 발목을 잡혔다. 중국의 대규모 철강회사들의 등장과 국제 경기 침체로 인해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는 기형적인 구조가 발생하며, 전 세계 철강업계에 비상이 걸린 것이다.

포스코는 협력 업체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하청 공사비를 대폭 내린 것을 비롯해 계열사 구조조정을 단행하며 활로 찾기에 나섰지만, 지난 해 3분기부터는 영업 이익 ‘1조 클럽’에서 제외되는 수모를 겪고 있다.

세계적인 신용평가기관인 S&P와 무디스로부터도 신용 등급 하향조정을 받은 포스코는 내부적으로 자사의 기업 상황을 최악의 상황이라고 평가하고 비상경영체제를 선포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러한 위기를 맞이한 상황에서 그룹차원의 자구책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며, 이로 인해 포항스틸러스의 운영 폭이 좁아진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종합적인 상황을 폭넓게 고려하면, 포스코의 축구단 지원 긴축에는 여전히 아쉬움이 많다.

자산총액 80조가 넘는 공룡그룹의 자구책이 축구단 긴축?


우선은 포스코라는 그룹의 규모와 관련한 문제다. 공정거래위원회의 보도자료에 따르면 자산총액 기준의 2013년 재계순위에서 포스코는 4월 현재, 전체 6위에 올라있다. 자산 5조원 이상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을 대상으로 11개 공기업집단을 제외한 51개의 대기업 집단 중에서도 포스코의 위상은 여전히 대한민국 최상위에 포진하고 있다.

이중 자산총액이 50조가 넘는 국내 기업은 현재 삼성을 비롯해 현대자동차, SK, LG, 롯데, 포스코, 현대중공업, GS 등 8개 기업이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 대한민국 4대 프로스포츠(야구, 축구, 농구, 배구)에 구단을 운영하고 있다.

야구와 축구는 물론 남녀 농구와 남자 배구까지 팀을 거느리고 있는 삼성은 물론, 전북현대와 기아타이거즈를 운영하고 있는 현대자동차그룹은 모든 종목에서 아낌없는 투자를 통해 리그를 이끌어가고 있다. SK는 프로야구 SK와이번스와 프로축구 제주유나이티드, 남자농구 SK나이츠를 운영하고 있으며, LG와 롯데는 프로야구단을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현대중공업과 GS는 프로축구단 울산과 FC서울을 운영 중이다.

그러나 이중 최근의 경제난을 이유로 운영 중인 스포츠단에 대한 지원을 예년에 비해 대폭 삭감한 기업은 없다. 특히, 리그 정상을 노린다는 목표를 설정하고 이러한 조치를 취하는 경우는 더더욱 찾아보기 힘들다.

포스코로서는 포항 스틸러스 뿐 아니라 전남 드래곤즈까지 2개의 구단을 운영하고 있다는 것으로 항변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300억 원 안팎의 1년 운영비가 들어가는 야구단과 비교해서 축구단의 지출이 더 많다고 말할 수는 없다. 더욱이 포스코와 자산총액에서 25조 원 가량이나 차이가 나는 현대중공업과 GS도 포스코보다는 더 적극적으로 스포츠단을 후원하고 있다.

현재 프로축구 K리그 클래식에는 대전 시티즌을 비롯해, 인천, 경남, 대구, 강원 등의 시민구단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들을 비롯해 포항을 제외한 K리그 클래식의 13개 구단은 모두 용병 영입에 지출을 감행했다.

이들 시민구단들 중에서 ‘감히’ 대한민국 10대 재벌에 포함되는 포스코에 비견할 수 있는 재정적 여건을 갖추고 있는 구단은 없다. 심지어 2부 리그인 K리그 챌린지에서도 광주FC, 수원FC, 충주 험멜, 고양 Hi FC가 용병을 보유 중이다. 이러한 사정을 살펴보면 ‘모 기업의 비상경영으로 용병을 뽑을 수 없는 처지’라는 포항의 입장이 쉽사리 와 닿지 않는다.

물론 위기 극복을 위해서 기업이 결정을 내린다면 나름의 가치는 충분히 있을 것이다. 또한, 적자를 줄이기 위해 포항 스틸러스의 재정을 긴축한다는 결정의 권리 역시 포스코에 있기다. 하지만 포항 스틸러스의 상징성을 감안한다면 이러한 포스코의 결정에 대해서도 재론의 여지가 충분하다.

포항 스틸러스가 갖고 있는 상징성


포항 스틸러스는 대한민국 프로축구리그를 대표하는 구단으로 최고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팀이다. 2002년 월드컵 이후 K리그에 관심을 가진 이들에게는 생경할 수 있지만, 적어도 ‘프로축구 르네상스’라고 일컬어졌던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직후만 해도 포항스틸러스의 구단 명 앞에는 항상 ‘전국구 인기 구단’ 이라는 수식어가 함께했다.

1973년 실업축구단으로 창단하여 올해로 40주년을 맞이한 포항스틸러스는 설립자인 故 박태준 명예회장의 축구사랑과 전폭적인 지지 속에 꾸준히 성장했다. “포항을 거치지 않으면 스타가 아니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실업시절 이회택, 박창선, 이영무, 조광래 등을 비롯해 80년대 박성화, 최순호, 최상국, 이흥실, 조긍연, 정기동, 조병득 등으로 이어지는 포항의 선수진은 화려한 면모를 자랑했다.

90년대에 이르러서는 황선홍-홍명보의 조합과 라데라는 초특급 용병이 함께 했고, 박태하, 최문식 등의 스타를 보유했던 구단이다. 현재 K리그 클래식의 14개 팀 중 지도자들 또한 대부분이 포항을 거쳐 갔다. 현재 포항의 사령탑인 황선홍 감독은 물론, 제주의 박경훈 감독, 부산의 윤성효 감독, 성남의 안익수 감독, 전남의 하석주 감독이 포항의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를 누볐던 이들이다.

포스코 신화의 주역으로 추앙받고 있는 박태준 명예회장은 축구에 대한 열정과 관심이 남달라 포항을 철강도시로 성장시킴과 함께 축구도시로 키워냈고, 그 중심에 포스코가 있었다.

열거된 화려한 스타플레이어들 뿐 아니라 장기적인 축구발전 비전과 계획에서도 포항은 국내 리그를 선도했다. 1983년 프로축구 출범 이후 31년 동안 유일하게 팀명과 연고지가 바뀌지 않고 운영되고 있는 구단인 포항이 지난 1990년 준공한 포항스틸야드는 대한민국 최초의 축구 전용 구장이며, 20여년이 지난 지금에도 주요 도시에 세워진 화려한 월드컵 경기장들보다도 인기가 높은 전용구장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선수단 숙소인 클럽하우스 역시 포항이 국내 최초로 건립하여 운영하고 있으며, 대한축구협회에 프로축구연맹이 유소년 시스템의 체계적인 추진을 강조하기 전부터 국내 최초로 유스 시스템을 운영했다. 포항만 올 시즌 영입하지 못한 용병 역시 포항이 K리그에 제일 먼저 도입한 바 있다.

박태준 명예회장의 확고한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련의 과정은 포항을 축구 명가로 키워냈고, 우리나라는 물론 아시아를 대표하는 구단으로 포항 스틸러스를 우뚝 세웠다. 때문에 포항 스틸러스의 역사는 한국 프로축구를 대변한다고 말 할 수 있는 큰 상징성을 갖고 있다.

또한 이러한 포항스틸러스의 선도적이고 발전적이었던 발자취는 당시의 축구 전문가들 중 누구도 추진하지 못했던 거대한 사업을 뛰어난 통찰력과 혜안으로 이룩한 ‘대한민국의 철강왕’ 박태준 명예회장의 의지와 능력을 방증하고 있다.

그리고 아무것도 없었던 포항의 모래밭에서 반세기만에 세계 굴지의 철강그룹으로 성장한 포스코의 거대하고 위대한 성공스토리를 설명하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민영화를 이뤘지만, 최대 대주주가 국민연금관리공단으로 사실상 공기업이나 다름 없는 포스코는 이 때문에 정권이 바뀔때마다 회장이 교체되는 전례를 거듭해왔다. 어쩌면 이 때문에 선대(先代)에서 역점을 두었던 부분의 유지가 꾸준히 이어지는 것이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박태준 명예회장과 창업의 역사와 의지는 이와 별개일 것이다.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낸 대한민국 경제 발전기의 거인 중 한 명인 박태준 회장은 인구 50만의 중소도시인 포항을 ‘철강의 도시’ 이자 ‘축구의 도시’로 키워내는 역사를 창조했고, 포항스틸러스는 세계클럽선수권에서의 활약으로 아시아를 넘어 유럽의 축구팬들에게도 그 이름을 각인시켰다.

이러한 가치와 상징성을 갖고 있는 포항이기에 포스코는 축구단의 운영과 지위에 대해 더욱 신중하게 접근을 해야 한다.

 

대한민국에서 프로스포츠는 안타깝게도 수익사업의 범주에 들지 못한다. 때문에 종목을 막론하고 구단을 운영하는 주요 기업들은 스포츠단의 운영을 숫제 자선사업처럼 여기는 경우도 있다.

또한 스포츠단이 갖고 오는 무형의 가치에 대해서도 간과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IMF 경제 위기 이후, 그 어떤 정책과 정치인, 그리고 그 어떤 대기업도 해내지 못했던 우리나라 국가 이미지 제고에 큰 효과를 이루어 낸 것은 2002년 한일 월드컵의 성공이었고, 아시아 최초의 월드컵 4강이라는 역사를 창조한 대표팀의 역할도 상당했다.

실제로 스포츠의 파급효과와 광고효과를 인지하고 있는 기업들은 자사가 운영하는 구단의 스토리텔링을 기업 홍보에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최근 몇 년 간 최악의 성적으로 만년 꼴찌로 전락했던 여자농구의 춘천 우리은행 한새 농구단이 지난 시즌, 파란을 일으키며 통합 우승을 차지하자, 우리은행은 각종 자사의 광고에 이들을 활용하며 감동적인 우승 도전기를 함축하여 내보내기도 했다. 금융 라이벌이 모두 모여 있는 여자농구에서 꼴찌를 딛고 우승을 해낸 것은 우리은행에게도 상당한 시너지 효과를 발휘했다.

포항 스틸러스 역시 이러한 대단한 역사를 최근까지 일궈냈다. 암흑기였던 2000년대 초반을 딛고 일어선 포항은 2007년 정규리그를 5위로 마쳤음에도 플레이오프에서 5전 전승을 거두는 기적과 같은 드라마로 프로축구 역사 최고의 언더독 반란을 완성했다.

2009년 AFC 챔피언스리그에서는 전력적 열세라는 평가를 딛고 우승을 차지했다. 특히 포항은 8강 1차전에서 우즈베키스탄의 분요드코르에게 1-3으로 패했던 위기를 딛고, 2차전에서 대역전의 드라마를 만들었다.

연장까지 가는 접전 끝에 안방에서 분요드코르를 4-1로 제압하고 승승장구한 포항은 결승에서 ‘아시아의 깡패’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절대적인 전력을 자랑하던 사우디아라비아의 알 이티하드를 만나, 노병준의 그림 같은 프리킥과 김형일의 헤딩골을 묶어 2-1로 승리하고 우승을 차지했다. 특히 결승골을 기록한 김형일은 부친상을 딛고 출전한 경기에서 귀중한 골을 기록하고, 하늘을 우러르는 골 세리머니로 많은 감동을 선사했다.

이 밖에도 현재 팀의 감독을 맡고 있는 황선홍 감독이 홍명보-라데 등과 포항 스틸러스의 인기 절정 시대를 대표하는 주인공인 만큼 이끌어낼 수 있는 스토리는 앞으로도 무궁무진하다.

그러나 딱히 ‘라이벌’이라고 일컬을만한 기업이 존재하지 않고, 국내 철강계에서 독점적 지위를 유지하며, 이른 바 ‘슈퍼 갑(甲)’으로 군림하고 있는 포스코는 이러한 효과에 대해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듯하다.

특히 B2B라는 철강의 특성은 포스코를 직접적인 여론의 영향으로 부터도 둔감하게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다보니 포스코가 포항스틸러스라는 축구단과 스포츠를 통한 기업의 이미지 제고에 대해서도 비슷한 규모의 재계 기업집단들에 비해 이해도가 부족한 것일 수도 있다.

 

 

포항스틸러스의 성공신화, 이제는 한계가...


사실 박태준 회장이 사실상 현역에서 물러난 이후 포스코는 축구단에 대해 전폭적인 지원을 실시하지 않았다. 때문에 포항은 대기업이 운영하는 축구단임에도 불구하고 신흥 명문으로 꼽히던 팀들과의 경쟁에서 밀리기 시작했고, ‘별들의 고향’ 이었던 포항은 ‘스타를 찾아보기 힘든 구단’으로 전락했다.

2000년대 초반 추락일로를 걷던 포항은 세르지오 파리아스 감독 부임 이후 ‘파리아스 매직’으로 일컬어진 성공 신화와 젊은 선수들의 성장으로 꾸준히 K리그를 대표하는 강호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이러한 포항의 행진도 이제는 한계점에 근접해가고 있다.

포항 유스 시스템의 최고 성공작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이동국을 비롯해, 오범석, 박원재 등은 이미 포항의 선수가 아니다. 2000년대 후반 포항의 우승 역사를 주도했던 최효진과 황재원도 다른 유니폼을 입고 있으며, 지난 시즌에는 리그가 진행되는 도중에 팀의 주장이었던 신형민을 이적 시켰다. 유스 시스템에서 성장한 선수들이 리그를 대표하는 정상급 선수로 성장 한 후에는 모두 포항을 떠난 것이다.

포항은 대표선수로 성장한 자신들의 유소년과 젊은 선수들을 감당할 수 있는 재정적인 능력을 갖추지 못했고, 결국 경제력에서 우위에 있는 팀들에게 자신들이 키운 선수들을 공급하는 구단으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대한민국 대표기업인 포스코가 모기업인 포항 스틸러스의 현 주소는 이미 이러한 처지였다. 그런데 여기에서 포스코는 더욱 긴축을 선언했다.

올 시즌 포항을 이끌고 있는 선수 중에는 비교적 어린 나이의 전도유망한 선수들이 두루 포진되어 있다. 지난 시즌 신인상을 수상한 이명주를 비롯해, 신진호 등 미드필더들과 공격진에서 활약하는 고무열, 배천석, 청소년 대표에서 괄목할만한 모습을 보여준 문창진 등이 꾸준히 성장하고 있으며, 이들의 활약 속에 포항은 지금보다 미래가 더 기대되는 팀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과연 이들이 지속적인 성장을 이루며 FA 자격을 획득했을 때, 포항이 잡을 수 있는 선수는 몇 명이나 될까? 지금과 같은 포스코의 지원 속에서 이들이 포항의 유니폼을 입고 포항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영원하기를 바라는 것은 그저 욕심에 불과하다.

게다가 화수분처럼 등장하던 포항의 유소년 자원들이 지금처럼 꾸준히 이어질 지도 미지수다. 과거와 달리 수원과 서울, 울산 등 K리그 클래식의 주요 구단들이 유스 시스템 구축에 적극성을 띄고 있어, 포항이 우수한 유소년 자원 수급에도 지금과는 다른 경쟁과 난항이 예상된다.

프로나 유소년이나 기본적으로 같은 조건일 경우에는 지방보다는 수도권을 선호하고 있는데다, 충분치 못한 지원으로 위상과 비전이 내려가고 있는 포항에 비해 아낌없는 투자와 지원으로 꾸준히 정상에 대한 도전을 강조하는 구단들이 선수들에게도 메리트가 높기 때문이다.

 

포항스틸러스 … 당면의 목표가 우승인가, 흑자경영인가?


대한민국 최고의 인기 스포츠로 군림하고 있는 프로야구에서도 폭발적인 인기와 적극적인 마케팅을 구가한 롯데 자이언츠 역시 흑자를 기록하지 못했다.

만약 포스코가 포항스틸러스라는 구단을 통해, 흑자 혹은 그에 준하는 경영성과를 바란다면 포항은 반대로 우승이라는 원대한 목표와는 점점 멀어지게 된다. 국내 실정을 고려할 때, 축구단이 경영성과를 위해 강조할 수 있는 것은 각종 대회의 성적을 통한 우승 상금 획득보다는 인건비를 비롯한 비용 절감이다. 결국 포스코의 경영성과 기조가 구단에도 이어진다면, 포항은 꾸준히 운영비를 절감하며, 시민구단과 다를 바 없는 경쟁에 놓여 질 수도 있다.

포항스틸러스는 포항과 한국 프로축구를 대표하는 자존심이다. 그러나 자랑스러운 역사와 전통을 갖춘 포항스틸러스는 그 가치를 제대로 가늠하지 못하는 모기업에 의해 이제는 ‘그저 그런 구단’으로의 내리막길 앞에 서있다. 어쩌면 포스코에게 포항스틸러스는 의무적으로 운영해야하는 애물단지 밖에 되지 않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지금과 같은 상황이 변하지 않는다면, 더 이상 포항의 축구팬들은 국내 리그는 물론 아시아 무대에서 우승컵을 들어 올리던 자랑스러운 팀의 역사를 마주하는 일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아시아 축구에 관심이 많은 세계 축구팬들도 심판의 이해할 수 없는 판정으로 3명이 퇴장당하는 악조건 속에서도 아르헨티나의 축구 명문이자 남미 챔피언이었던 에스투디안테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고, 북중미 챔피언이었던 멕시코의 아탈란타를 제압해 3위를 차지했던 포항 스틸러스의 거침없는 경기를 추억으로만 간직할 가능성이 높다.

 

빛 좋은 개살구’와 ‘돼지에 진주’


포항의 모기업인 포스코의 경영 위기는 단지 국제적인 철강 위기 때문만은 아니다.

포스코의 정준양 회장은 취임 후 본격적인 몸집 불리기에 나서, 2008년 31개였던 계열사를 3년 사이에 2배가 넘는 71개로 늘렸다. 인수한 기업의 상당수가 재정 악화 상태였고, 일부는 업무와 연관성이 없는 기업도 있어, 포스코의 전반적인 재무구조는 큰 타격을 입을 수 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서 포스코 계열사의 적자규모는 무려 6배나 늘어났다.

결국 포스코는 공격적인 기업 인수를 시작한 후 채 5년도 버티지 못하고, 계열사 매각과 일부 계열사 간의 통폐합을 추진했고, 2012년 당시 70개였던 계열사의 수를 현재의 52개로 축소했다. 이 과정에서 포스코는 자본잠식 기업에 대한 인수 의혹이 등장하기도 했고, 이에 따라 정치권의 개입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국제적인 철강위기에 경영 능력 부재가 겹쳐 비상경영사태까지 이른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경영진의 실책은 포항스틸러스의 긴축경영까지 이어지게 됐다.

결국 이름에 걸맞지 않은 모기업의 지원 속에도 그 명맥을 유지했던 대한민국 프로축구의 대표 구단 포항스틸러스는 기업 경영진의 실책에 된서리를 맞고 자랑찬 역사와의 단절이라는 위기를 극복해야하는 숙제를 떠안게 됐다. 시민구단들에게는 그토록 탐나고 부러운 ‘대기업’ 포스코의 정체는 결국 빛 좋은 개살구에 지나지 않았을까?

돼지에 진주, 개 발에 편자라는 속담이 있다. 아무리 뛰어난 가치를 지니고 있다 해도 그 값어치를 모르는 이에게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말이다.

한국 프로 축구사에서 빛나는 가치를 지니고 있고, ‘철강왕’ 박태준 회장의 의지와 꿈이 서려있는 찬란한 보석이 포스코에게는 진정 녹슨 고철 이상의 의미는 없는 것일까? 여전히 포스코라는 기업에서 거대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故 박태준 회장이 생존해 있어도 포항스틸러스가 이런 처지에 내몰렸을 지를 진지하게 고민해보게 된다.

그리고 ‘맨 땅에 헤딩’과도 같았던 선수단의 처절한 의지로 얻어 낸 성적에 부합하는 지원 없이, 턱 없이 원대한 청사진만 노래하는 포항의 ‘우승 타령’도 이제는 ‘희망고문’을 버리고 진지한 현실 직시의 눈높이로 조절 되어야 할 것이다.

 

 

사진 : 포항스틸러스 / 포스코 / 뉴시스

문화저널21 / 2013년 5월 2일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