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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斷片/短篇] 당신의 선수는 안녕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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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FIBA 여자농구월드컵을 앞둔 우리나라 대표팀의 강화훈련 소집이 실시된 지난 8월 1일. 뜻밖의 소식이 들려왔다. 대표팀의 에이스 박지수가 훈련에 참가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사유는 더 당혹스러웠다. 박지수는 공황장애 초기 진단을 받아 대표팀 소집에 응할 수 없었다. 이미 소속팀 청주 KB스타즈의 훈련에서도 제외됐고, 모든 훈련을 중단하고 안정을 취하고 있는 상태였다.

 

국가대표 주축인 선수가 소집에 응하지 못하는 경우는 종종 있었지만, 신체의 물리적인 부상이 아닌 정신적인 문제로 상황이 발생한 것은 사실상 박지수가 최초였다.

 

치열하게 싸워온 박지수의 10대... 그는 아직도 스물 셋
박지수는 지난 몇 년간 우리 대표팀의 주축이자 에이스였다. 특별한 변수가 없는 한 앞으로도 당분간은 박지수가 대표팀의 중심이다. 그런 만큼 박지수의 공백은 대표팀 전력에 큰 차질이다.

 

196cm의 신장에 뛰어난 수비력, 신장에 비해 민첩한 몸놀림과 정확한 야투를 자랑하는 박지수는 그동안 우리나라 여자농구에 존재하지 않았던 스타일의 빅맨이다. 국제대회에서 평균 30분 이상을 혼자 골밑에서 고군분투하고, 높은 신장과 힘을 자랑하는 외국 센터들과 높이 대결을 마다하지 않으며 일대일로 싸우는 빅맨은 한국 여자농구에 박지수가 처음이다.

 

아시아 농구에서 가장 강력한 높이를 자랑하는 중국도 한쉬(208cm), 리유에루(201cm) 를 비롯해 신장이 190cm가 넘는 빅맨들을 돌려가면서 박지수를 상대한다. 현존하는 아시아 최고의 센터다. 국내 농구인들이 박지수를 괜히 ‘보물’이라고 부르는 게 아니다.

 

오랫동안 국가대표로 활약했던 김정은(우리은행)은 박지수의 위력을 확실하게 증언한다.

 

“(박)지수와 대표팀에서는 한 대회만 뛰어봤는데, 정말 대단해요. 난 대표팀 선수로 뛰면서 중국이랑 경기하면, 항상 나보다 머리 1~2개는 더 큰 선수들이랑 싸우느라 힘들었거든요. 우리를 내려다보는 중국 선수들과 경기하는 게 정말 힘들었어요. 그런데 지수가 뛰면서 완전히 바뀌었죠. 우리가 국제대회에서 중국을 상대로 그런 농구를 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어요. 중국의 그 큰 선수들이 지수와 상대하면서 불안해 하는 눈빛, 겁먹은 표정을 보이니까요. 내가 3~4살만 어렸다면... 아니면 지수가 조금만 빨리 태어났으면 대표팀에서 더 같이 해 볼 수 있었을텐데 아쉽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박지수 한 명의 부재로 이번 월드컵에 나서는 우리 대표팀에 대한 기대치 자체가 바뀌어 버렸다. 하지만 지금은 이러한 박지수의 공백으로 인한 대표팀의 전력 문제를 논할 때가 아니다.

 

박지수는 WKBL에서도 압도적인 입지를 구축했다. 박지수는 지난 WKBL 정규리그 시상식에서 개인 7관왕이라는 전인미답의 고지를 2년 연속으로 정복했다. WKBL 2회 통합 우승을 비롯해 화려한 개인 기록을 만들어가고 있는 그는 1998년 생으로 여전히 만 23세 8개월의 젊은 선수다.

 

WKBL의 한 지도자는 “앞으로도 사실상 10년간은 박지수를 넘을 수 있는 선수가 없다”고 단언한다. 누가 봐도 ‘부족함 없는 선수’, ‘남 부러울 것 없는 선수’가 박지수다. 하지만 그는 과거에도 번아웃이나 우울증과 같은 부분의 어려움을 토로한 적이 있다.

 

이런 정신적 부담과 가중된 고통이 박지수에게만 존재하는 문제일까? 대한민국 농구계, 혹은 스포츠에 이런 문제로 고민을 하고 있는 선수가 과연 박지수 뿐일까?

 

많은 면에서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대한민국 스포츠는 선수 관리 측면에서 예전보다 훨씬 나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농구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선수들의 멘탈 관리 부분은 다시 한 번 점검하고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운동선수와 공황장애, 그리고 정신적 고통
우선 공황장애가 무엇인지 확인해보자.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제공하는 포털사이트의 건강백과에 의하면 공황장애는 ‘특별한 이유 없이 예상치 못하게 나타나는 극단적인 불안 증상, 즉 공황발작(panic attack)이 주요한 특징인 질환’이라고 한다. 공황발작은 ‘극도의 공포심이 느껴지면서 심장이 터지도록 빨리 뛰거나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차며 땀이 나는 등 신체증상이 동반된 죽음에 이를 것 같은 극도의 불안 증상’이라는 설명이 뒤따른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에 따르면 2020년 기준 국내의 공황장애 환자는 20만 명에 이르며, 매년 환자수가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크게 와 닿지 않는 부분도 존재한다. 공황장애를 비롯해, 우울증이나 번아웃 증후군같은 정신적인 문제로 인해, 선수가 운동을 하지 못할만큼 큰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이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그동안 우리나라에 흔히 발생하지 않았던 일이기도 하고, 또 운동선수의 필수 덕목이라 강조되는 정신력의 측면에서 볼 때, 정신적인 부분에서 발생한 문제는 스스로 극복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했다. 대한민국 스포츠에서 가장 자주 언급되는 ‘정신력’의 영역이다.

 

때문에 우리에게 운동선수가 물리적인 부상으로 치료를 받는 것은 당연하지만, 정신적인 문제로 치료를 받는 것은 익숙하지가 않았다. 그래서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의 영역에만 존재할 뿐, 이런 문제로 인해 선수가 정상적인 운동을 할 수 없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을 갖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이효근 원장은 이에 대해 “분명 어려움이 존재한다”고 조언했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일시적으로 우울할 수도 있고 불안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울한 기분을 느끼는 것과 우울증은 다릅니다. 전문의가 객관적 기준에 의해 진단을 내릴 정도면 의지나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는 부분을 넘어섭니다. 그렇기에 상담 치료나 약물 치료가 필요합니다. 일시적으로 극복할 수 없는 부분이기에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죠. 이런 상황에 놓인 이들에게 ‘정신력’과 ‘개인의 의지나 노력’을 말하는 것은 매우 잔인한 이야기입니다. 운동선수들 또한 이런 상황에 놓이면 자기 관리로 경기력을 유지하고 운동을 하는 것은 매우 힘들고, 장애가 많을 것입니다.”

 

이효근 원장은 “직접 상담을 하거나 진료를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내가 ‘박지수 선수는 이렇다’라고 말할수는 없다”고 전제했다. 하지만 보편적으로 운동선수라는 직업이 정신적으로 상당한 부담을 받을 수 있음을 지적했다.

 

“운동선수라는 직업은 치열한 경쟁으로 인해 입시 스트레스와 마찬가지로 상당한 스트레스가 발생할 수있고, 또 그러한 경쟁이 일반에 모두 공개되고 노출되기 때문에, 직업적으로도 관리가 더 필요할 수 있습니다.”

 

박지수에게만 일어난 특별한 일?
이효근 원장의 지적처럼, 전 세계적으로 정신적인 부분에서 고통과 어려움을 호소하는 선수들은 다양한 종목에서 꾸준히 나타나고 있다. 선수들이 겪고 있는 정신적인 고통과 문제는 어떤 것들이 있고, 어떤 선수들이 이러한 어려움과 싸웠을까?

 

① 스티브 블레스 증후군
야구와 미식축구(NFL), 골프 등에는 ‘입스(YIPS)’가 존재한다. 부담과 불안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근육이 경직되면서 선수들이 평소에는 일상적으로 하던 동작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을 일컫는다. ‘던지고 치는 것’이 기본인 야구에서는 원하는 곳에 공을 제대로 던지지 못하는 ‘스티브 블래스 증후군’이 대표적이다.

 

미국 메이저리그 피츠버그 파이리츠의 에이스로 1971년 팀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던 스티브 블래스는 1968년부터 5년 연속 10승 이상을 거뒀고, 1972년에는 19승을 기록했다. 하지만 1973년, 갑자기 심각한 제구 난조에 시달리면서 스트라이크를 던질 수 없게 됐다. 원인과 치료에 실패한 스티브 블래스는 결국 1974년 은퇴했다. 이후, 그와 같은 증상을 호소한 선수들에게 ‘스티브 블래스 증후군’이라는 진단이 내려졌다.

 

투수 외의 다른 야수들도 스티브 블래스 증후군을 겪는 경우가 많다. 메이저리그에서는 척 노블락, 마크 월러스, 돈트렐 윌리스, 릭 엔키엘, 리키 로메로, 다니엘 바드 등이 대표적이다.

 

최근 방영 중인 JTBC의 야구 예능프로그램 ‘최강 야구’에 출연중인 이홍구(전 KT)는 방송에서도 스티브 블래스 증후군 증상을 보였다. 국내 프로야구에 서는 원종현, 손아섭(이상 NC), 지시완(롯데), 염종석(동의과학대 감독), 김주찬(두산 코치), 최대성(동아대코치), 홍성흔(전 두산), 홍상삼(전 기아) 등 많은 선수들이 어려움을 겪었다.

 

뉴욕 양키스 시절의 척 노블락

 

② 공황 장애
박지수와 같은 공황장애를 겪은 선수들도 있다. 스티브 블레스 증후군을 겪은 홍상삼은 2019년, 인터뷰를 통해 자신이 공황장애를 앓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KBO리그 최다 안타 기록을 갖고 있는 박용택(전 LG)도 양준혁(전 삼성)의 최다 안타 기록을 깨고 나서 공황장애를 겪었다고 방송에서 전한 바 있다.

 

그는 “양준혁의 대기록을 깬 뒤, 할 일을 마쳤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공황장애가 왔다”며, “심장이 두근거리고 손발이 떨려 주차 후 한참동안 마음을 진정시킨 뒤에야 야구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고 했다. 박용택은 부모님에게도 이 사실을 비밀로 했고, 현역에서 은퇴한 후, 부담감과 야구에서 멀어지자 공황장애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축구 선수 중 한 명이었던 안정환 해설위원 역시 현역시절 공황장애를 앓았다. 그는 “중압감이 컸고, 사람들이 말을 하는 것도 전부 나에 대해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며, 피하고 싶은 마음에 “인터뷰도 단답형으로 하거나 적극적으로 임하지 않았다”고 했다.

 

스페인 세비야의 수비수인 또 다른 축구 선수 헤수스 나바스도 공황장애를 고백한 스포츠인이다.

 

그는 어린 시절, 원정 경기를 준비하던 중 아버지가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소식을 듣고 대회를 불참한 적이 있는데, 이후로 세비야를 떠날 때마다 발작을 일으키는 등 극심한 공황장애를 겪었다. 이후 공황장애를 극복하고 국가 대표에도 선발됐는데, 그는 “꾸준한 치료와 상담이 큰 도움이 됐고, 축구에 대한 사랑과 동료들의 도움으로 공황장애를 이겨냈다”고 설명했다.

 

세비야의 헤수스 나바스

 

NBA에서는 케빈 러브(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가 자신의 공황발작 증세를 에세이를 통해 밝혔다. 팀의 주축 선수였던 그는 2017년 11월 5일, 애틀랜타 호크스와의 경기에서 18분만 뛰었고, 4점을 득점하는데 그쳤다. 2018년 1월 21일 오클라호마시티 썬더와의 경기에서는 출전 시간이 단 3분에 그쳐 많은 의문을 낳았다.

 

케빈 러브는 “애틀랜타와의 경기에서 내가 벤치로 들어갔을 때, 심장이 평소보다 빨리 뛰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호흡을 고르는 데 어려움을 느꼈다.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마치 뇌가 머릿속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것처럼 모든 것들이 빙글빙글 돌았다. 또한 공기가 무겁고 두껍게 느껴졌다”고 자신의 경험을 전했다. 그는 “코치가 수비적인 부분에 대해서 소리쳤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이후 그가 뭐라고 했는지를 듣지 못했다. 그때부터 정신이 몽롱해지기 시작했다. 그 혼란에서 빠져나왔을 때 나는 경기에 다시 투입 되기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다. 라커룸으로 들어가서는 뭔가를 찾는 사람처럼 방과 방 사이를 뛰어다녔다. 마치 내 몸이 나에게 '넌 죽을 거야'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고 덧붙였다.

 

이 밖에 베트남 축구 대표팀을 이끌고 있는 박항서 감독도 2018년 한 방송을 통해, 승부에 대한 스트레스로 공황장애를 겪은 적이 있다고 밝혔다.

 

③ 우울증
2014년 농구 월드컵과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하고 올스타에 5번 선정된 슈퍼스타 더마 드로잔(시카고 불스)은 우울증을 앓았다.

 

드로잔은 자신의 우울증을 인터뷰를 통해 공개하며, “매일 밤마다 다르다. 어렸을 때부터 겪어온 현상이다. 나는 매우 조용한 성격이고, 무언가와 싸워서 이기기 위해 내 개인적인 공간에 머문다”며, “우울증은 내가 부정하거나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다. 이미 내 나이에서는 상당히 많은 사람이 그런 일을 겪는다는 것을 이해한다”고 밝혔다.

 

맥스 할로웨이

 

UFC 챔피언 출신인 세계적인 격투기 선수 맥스 할로웨이는 이러한 드로잔의 우울증 고백에 공감을 남겼다. 할로웨이는 “더마 드로잔이 우울증에 대해 얘기했고, 그건 정말 내 마음을 크게 흔들었다”며, “드로잔이 ‘돈이 나를 행복하게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도록, 세상 사람들 모두 부자가 됐으면 좋겠다’는 말에도 공감했다”고 말했다.

 

이는 할로웨이 역시 우울증을 앓았기 때문인데, 그는 누구와도 대화를 하지 않는 상황에 이르렀고, 대중들이 자신을 슈퍼 히어로로 보는 시선에 부담을 느꼈다고 전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자신에게 손을 내밀었지만, 스스로 이를 회피하려 했다며, 그 방법이 매우 잘못된 것임을 인정했다.

 

“때로는 천천히 속도를 늦추면서 가야 할 필요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우울증 극복 비결을 전한 할로웨이는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며 “가족, 친구와 적극적으로 대화하라. 삶은 순식간에 변하니 마음 편히 먹고 살아가라”는 말을 남겼다.

 

스페인과 FC바르셀로나의 상징적인 선수이기도 했던 안드레스 이니에스타(비셀 고베)도 우울증을 고백했다. 그는 2008-09시즌 바르셀로나의 6관왕이라는 화려한 역사의 중심에 있었는데, 시즌을 마친 후 무기력함을 느끼며 우울증에 시달렸다. 여기에 절친한 동료였던 수비수 다니엘 하르케(전 에스파뇰)가 급성 심근경색으로 세상을 떠나자 큰 충격을 받는 등, 복합적인 요소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고, “약을 먹을 수 있는 밤이 되기만을 기다렸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④ 그 외
저니맨이었지만 NBA에서 14년간 활약했던 키온 둘링(전 멤피스 그리즐리스)은 어린 시절에 성폭행을 당한 후 얻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증상을 겪었고, 이로 인해 병적으로 집착하는 망상과 환각으로 고통 받았으며, 이후 정신 건강 치료를 꾸준히 받았다.

 

일본을 대표하는 농구 선수로 성장한 하치무라 루이(워싱턴 위저즈)도 정신적으로 큰 고통을 겪었다. 베냉 출신의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를 둔 그는 오랫동안 혼혈이라는 이유로 차별과 악성 댓글과 싸워야 했고, 지난 해 도쿄 올림픽에서는 일본 남자농구 대표팀이 부진하자 비난을 한 몸에 받았다. 마음에 큰 상처를 입은 그는 올림픽 이후 트레이닝 캠프에 불참했고, 시즌 개막 때도 출전하지 못했다. 그가 정신적인 문제를 극복한 것은 시즌이 절반 가까이 지난 2022년 1월이었다.

 

대구 한국가스공사에서 새로운 시즌을 준비 중인 이대성은 울산 모비스 시절 번아웃 증후군을 겪었다. 이대성은 “우승을 하고, MVP를 받았다. 의욕도 높았고, 대표팀에서 더 좋은 모습을 보이고자 노력했는데, 그때 문제가 생겼다. 열심히 최선을 다하는데 플레이가 그렇게 나오지 않았다. ‘우승하고 MVP 받더니 달라졌다’는 말도 들었다. 내 몸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더라. 무슨 문제가 있는 건지 몰라서 대표팀 주치의께 상담을 했는데, 번아웃 증후군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여자농구에서는 ‘레알 신한은행’의 ‘끝판왕’이었던 하은주가 번아웃 증후군 진단을 받았다. 현재는 스포츠 심리학을 전공하고, 웨이크업바디 운동센터의 대표로 있는 하은주는 압도적인 높이와 포스트 장악력으로 신한은행의 통합 6연패에 정점을 찍었던 선수다.

 

그는 “선수시절에 어려움도 있었고, 위기도 있었는데, 정신적으로 가장 힘들었을 때는 통합 6연패를 달성한 후였다. 우승을 한 후의 기쁨은 다음날 아침이면 사라진다. 할 수 있는 걸 다 한 것 같았고, 무엇을 더 해야 하는지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번아웃 증후군 진단을 받았고 이로 인해 불안 증상도 있었다. 주변에 알리지 않고, 병원을 다녔다”고 밝혔다.

 

멘탈 케어에 대한 적극적인 대처 필요
전문의의 진단을 받고 의료적인 도움을 받는 것 또한 비일비재하다.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는 원인과 상황도 각기 다르다. 어려운 상황과 주변 여건에 의해 정신 건강을 지키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만, 정점의 자리에서 뜻하지 않게 고통이 시작되는 경우도 있다.

 

이효근 원장은 “원인이 있어 생기기도 하지만, 특별한 이유 없이 발생하기도 한다. 자연인으로서 누구에게나 아무 이유 없이 생길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따라서 프로 스포츠에서도 선수들의 멘탈 케어와 관련된 부분에 더 많은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농구 역시 마찬가지다.

 

케빈 러브

 

케빈 러브는 공황장애를 극복한 후 2018년 9월, 정신 건강 문제를 다루는 ‘러브 펀드’를 설립해 정신 건강 문제 해결에 앞장서고 있다.

 

그는 “단순히 운동선수 뿐 아니라 모든 사람의 일이다. 우리는 모두 아픈 상처를 가지고 있고, 그걸 속에 묻어두면 스스로를 다치게 할 수 있다. 나도 살면서 이를 계속 피했지만, 이제는 아니다. 나를 알아가는 힘든 일을 이제 막 시작했다”고 말했다.

 

더마 드로잔의 솔직한 우울증 고백은 NBA와 NBPA(NBA 선수협회)의 적극적인 문제 인식을 촉발했다.

 

NBPA는 2018년, 선수들이 정신 건강 상담사에게 더 많이 접근할 수 있도록 정신 건강에 대한 프로그램을 시작했고, NBA 사무국은 정신 건강 교육에 더 큰 중점을 두기 위해 신인 프로그램을 변경했다. 또한 NBA는 건강에 관한 팁과 운동, 자가 진단, 그리고 정신 건강자료들로 구성된 51페이지 분량의 플레이북을 제작해 NBA, WNBA, G리그 선수들에게 배포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은 키온 둘링은 현재 NBA 정신 건강 및 웰니스 프로그램에서 선수들에게 조언하는 일을 맡고 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둘링은 현역은 물론 은퇴한 선수들의 멘토 및 가이드로 활동하며, 그들이 필요로 하는 정신 건강 관련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노력 중이다. 앞서 언급했던 일본인 NBA리거 하치무라 루이 역시, NBA의 마인드 헬스 프로그램의 도움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떨까?

 

여러 부분에서 이전보다 나아지고 발전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현재 남녀 프로농구 16개 구단 중 3개 구단(SK, KT, KB)은 멘탈 코치, 혹은 멘탈 트레이너를 보유하고 있다. 다른 팀들도 선수들이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 외부 상담을 실시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를 더 체계화하고, 선수들의 멘탈 관리 자체가 특별한 부분이 아니라 당연한 것이라는 인식과 문화의 정착이 필요하다.

 

한국 스포츠 정책 과학원 선임연구위원인 김영숙 박사는 “이전에는 ‘선수는 강인해야 한다’는 인식 속에 이런 문제를 작은 일로 봤다. 하지만 이제는 문화적인 변화와 선수들의 세대적인 변화, 자신의 결정권에 대한 부분도 중요하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정신적인 문제에 대해 바라보는 지도자나 팬들의 의식 변화도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박지수의 소속팀인 KB스타즈는 여자농구에서 유일하게 멘탈 트레이너가 있는 팀이다. ‘멘탈 트레이너가 있어도 결국 박지수의 공황장애는 막지 못한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반응은 다르다. 이효근 박사는 “멘탈 트레이너가 있었기에 문제를 인식할 수 있었던 사안으로, 오히려 모범적인 사례라고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자신이 앓고 있는 정신적인 문제에 대해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가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한다. 이대성 역시 자신의 번아웃 증후군을 인지하지 못했다.

 

“벼랑 끝에 몰린 기분이었어요. 고통에 비해 알 수 있는 정보나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너무 부족했거든요. 어쨌든 알게 돼서 방법을 바꾸고 나아질 수 있었지만, 많이 아쉬워요. 사실 그 이전에도 비슷한 어려움을 겪었던 적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번아웃이라는 걸 모르니, 그때는 그냥 제 방법대로 더 부딪치고 뛰면서 넘어 갔어요. 일찍부터 그런 걸 알고 잘 대응했다면, 더 빨리 회복하고, 그리고 ‘조금이라도 더 나은 선수가 될 수 있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KB 관계자도 같은 의견이다.

 

그는 “만약 멘탈 트레이너가 없었다면, 지금도 우리는 박지수가 정신건강 전문의의 진료가 필요하다는 걸 몰랐을 것이다. 여전히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선수에게 ‘이겨내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고 했다.

 

결국 박지수의 공황장애는 소속팀에 ‘멘탈 트레이너가 있었는데도 막지 못한 것’이 아니라, ‘있었음에도 발생한 문제’인 것이다. 그리고 멘탈 트레이너가 있어서 문제가 있음을 발견해 낸 것이다.

 

이제는 특정 선수가 아닌 모두에게 각기 다른 형태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에도 집중해야 한다.

 

시스템과 문화 구축
멘탈 코치(혹은 트레이너)를 보유하고 있는 팀들은 이들을 통한 심리 상담의 효과와 만족도가 매우 높다고 말한다. 멘탈 트레이너를 도입한 구단들이 이 제도를 계속 유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난 시즌, KBL 챔프전 MVP를 차지한 김선형(SK)은 과거, 부상에서 복귀하는 과정에서 심리 상담을 받았고, 현재도 소속팀에서 심리 상담과 멘탈 트레이닝을 받고 있다. 김선형 역시 심리 상담에 대해 매우 긍정적인 입장을 내놓았다.

 

“제가 모든 선수들을 대표하는 것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는 정말 큰 도움이 됐어요. 감독님, 코치님이 지도자로서, 또 선배로서 상담해주시는 것도 도움이 되는데, 심리 상담과 멘탈 트레이닝을 받으니까 상황을 다른 시각과 각도에서 바라볼 수도 있었거든요. 정신적으로 많이 안정됐고, 도움을 받았어요. 선수 생활을 하면서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힘들어하는 선수들을 많이 봤습니다. 자기 문제 때문에 그런 것도 있지만 외부적인 부분들, 과거에는 포털 댓글 때문에 고통 받는 선수들도 있었거든요. 선수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저는 멘탈 트레이닝이 정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제도적으로 시스템화 된다면, 아마 모든 운동선수들에게 도움이 될 거 같아요.”

 

 

이대성 또한 같은 생각이다.

 

“농구가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이런 시스템의 구축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봐요. 제 경험에서도 그랬고, 선수들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겁니다. 멘탈 코치나 트레이너를 기용하는 구단들이 생기고 있는데, 더 늘어났으면 좋겠습니다. 크게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선수들도 있겠지만, 시스템이 없어서 도움이 필요한 선수가 나올 때 마다 진행하는 것과,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상황에서 선수가 선택할 수 있는 것과는 분명 다르지 않을까요? 제가 번아웃 진단을 받았다는 사실을 밝혔을 때도 ‘그런게 어딨냐’며 소위 ‘라떼는...’이라는 말씀을 하셨던 분들이 계셨어요. 인식도 바뀌어야 합니다.”

 

모든 구단은 매년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과 몸 관리를 위해 종합 검진을 비롯한 메디컬 체크를 실시한다. 멘탈과 관련된 부분도 이제는 여기에 포함할 필요가 있다.

 

선수 뿐 아니라 스트레와 정신적 압박이 큰 감독과 코칭스태프에게도 이는 필수다. 한 감독은 “아마, 지금 전체 선수단을 모두 상담해보면 ‘문제가 없다’고 나오는 이는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더 큰 효과를 위해서는 꾸준하고 지속적으로 이를 진행해야 한다. 여자농구에서 오랫동안 멘탈 트레이너를 두고 있는 KB의 관계자는 말한다.

 

“아무리 좋은 상담사, 혹은 전문의가 오신다고 해도 일시적으로, 혹은 드문드문 진행해서는 효과가 없을 겁니다. 어쩌다가 한 번 보는 사람한테 내 속에 있는 이야기를 다 할 수가 있을까요? 꾸준히 만나보고 상담하면서 서로 간의 신뢰가 생겨야 선수들도 마음의 문을 열수 있죠. 트레이너도 여러 번 대화하며 자료가 쌓여야 선수에게 효과적인 상담을 해 줄 수 있을 겁니다.”

 

정신 건강을 바라보는 저변의 인식과 문화도 더 개선되어야 한다.

 

과거에는 물리적 부상은 구단이 관리하지만 정신적 문제는 개인적인 부분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짙었다. 또한 정신적인 상담과 진료를 받는 것 자체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시대도, 사회도 달라졌다.

 

김영숙 박사는 “최근 20년간 많은 변화가 있었고 이제는 과거와 인식이 많이 달라졌다. 선수들도 성과 지상주의와 정신력을 강조하던 시대에서, 페어플레이와 선수의 인권과 가치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시대로 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적극적으로 도움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과 인식이 필요하다고 했다.

 

“멘탈 트레이닝과 스포츠 상담의 영역이 있고, 일반 상담이나 치료는 또 다른 영역입니다. 전문의가 계시죠. 문제가 발생했을 때는 혼자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상담이나 주변의 도움을 받아서 적절한 방법을 찾는 게 맞습니다. 이건 나약한 게 아니에요. 체력 측정처럼 꾸준히 진행해야 하고, 어려서부터 진행하는 게 더 좋습니다. 인식 제고가 필요해요.”

 

이효근 원장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역 사회나 구단이 함께 나서는 것이 맞다”고 조언하며, “그런 문화를 구축해야 하고, 정신적인 어려움에 처한 이들이 주변의 도움을 받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해야 한다. 개인의 노력으로 극복할 수 없는 영역이 존재한다. 정신력만 말하는 것 자체는 편견”이라고 강조했다.

 

▲ 선수들의 정신 건강을 지키기 위한 조언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 스포츠과학연구실 선임 연구위원 김영숙 박사

긍정심리학과 관련된 부분을 말해주고 싶다. 프로나 대표 선수들은 더 성장하기 위해 단점을 고치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데, 이 때문에 압박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반대로 자기 강점을 더 생각하는 것을 추천한다.

 

일지를 쓰더라도 단점의 수정보다는 잘했던 점을 더 키워가는 위주로 생각하는 게 필요하다. 또 신체 컨디션 조절도 잘 해야 하기 때문에 휴식이 정말 중요하다. 운동 외의 취미를 갖는 것도 필요하고, 긍정적인 생활 습관을 통해 작은 부분에서도 행복을 찾는 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웨이크업 바디 트레이닝 / 스포츠 심리 센터 대표 하은주 박사

구체적이고 명확한 목표를 세울 필요가 있다. 올림픽 메달리스트들이 올림픽 이후 목표를 잃어 우울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은 것처럼, 우승이나 자신의 목표를 달성한 후, 급격하게 무력감을 느끼는 경우도 있다. 너무 멀리 있는 추상적인 목표보다는 가까운 시일 안에 내가 할 수 있는 목표를 정해서, 한 단계씩 전진해나가는 게 필요하다.

 

일본은 어려서부터 이런 습관이 잘 되어 있는데, 우리나라는 익숙하지 않다. 그러다보니 프로에 온 선수들도 “팀에 도움이 되겠다”는 말은 해도 “어떻게 도움이 되겠냐”고 물으면 말을 못하는 경우가 있다. 스스로 동기부여 할 수 있는 목표를 만드는 게 필요하고, 어려서부터 이런 습관을 길러가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본다.

 

사진 = 박진호, 이현수 기자, 뉴스원/로이터, KBL

 

루키 더 바스켓 2022년 9월호


이런 기사를 정말 오랜만에 쓴 것 같다. 타 사례에 대한 자료 조사는 김혁 기자가 해줬다. 

 

정신적인 고통과 치료에 대해 여전히 우리의 인식은 외과적인 부상과 다른 범주로 인식한다. 부러져서 못 뛰는 건 이해하지만, 정신적인 문제로 못하는 건 '의지 박약', '정신력 결여'라고 보는 것이다. 여전히 '박지수는 멘탈이 약하다'고 지적하는 일반인들도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봐도, 또 그동안 내가 취재한 바를 봐도 박지수의 정신적인 단단함은 현역 선수 중에서도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다. 다만 그는 이전의 선배들과 달리, 자신이 힘들고 고통을 받는 것에 대해 당당하게 표현할 수 있었던 점에서 차이가 있을 뿐이다.

 

공황장애, 수면장애, 번 아웃,  가면성 우울증. 나도 이 생소한 단어가 나한테 적용되기 전까지는 신체적 활동의 제약을 정신적인 문제에서 기인하는 부분에 대해 쉽게 이해하지 못했다. 어쩌면 이 기사는 나 스스로 공부하기 위해 썼는지도 모른다.  사지 멀쩡하면서 작은 것 하나, 너무 당연하던 일상의 업무를 견디지 못하던 상황에, 나 스스로 나에게 너무나도 절망했던 시간이었다. 꾸준히 약을 복용하며, 치료를 받고, 상담을 받고 있지만, 여전히 시간이 더 필요하다. 소소한 낙의 중심이었던 시가와 커피도 할 수 없는 시간도 고통이면 고통이리라. 하지만 고작 나 정도의 무게로도 발생하는 이 고난을 고려하면, 10대 후반부터 상상할 수도 없는 부담과 책임감을 짊어졌던 어린 여제의 고통은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수준이었을 것이다.

 

박지수는 물론, 그와 같은, 혹은 그와 비견되는 상황에서 겪는 고통을 대중들이 그저 '정신력의 문제'가 아닌 진지한 치료의 범주에서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부담의 객관적 크기를 떠나, 상담과 치료의 영역에 놓인 이들이, 이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호소하고 양성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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