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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ntasize | 글/iNside sports

하나외환, 꼭 그래야만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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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농구 프로 원년부터 활약했던 선수들이 하나 둘 코트를 떠나고 있는 가운데, 부천 하나외환의 맏언니인 허윤자가 팀을 떠나게 됐다.

허윤자는 2013-14 시즌을 마치고 FA자격을 획득했지만 마지막 계약일이었던 지난달 30일까지 소속팀을 찾지 못했다. 현행 규정대로라면 허윤자는 오는 2014-15시즌을 뛸 수 없게 된다. 1979년생으로 올해 36살인 허윤자에게 지금 1년을 쉬라는 것은 사실상 은퇴와 다를 바 없다. 

자유계약이 적용되는 FA자격은 선수들이 자신의 능력과 가치를 객관적으로 평가받고, 또한 드래프트로 인해 직장 선택의 자유가 제한된 선수들에게 자율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해주는 제도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선수 가치에 따라 충분히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지 못한 선수는 된서리를 맞을 수밖에 없는 냉정한 구조이기도 하다.
 
따라서 정선화를 새롭게 영입한 하나외환이 허윤자를 잡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해가 가능하다. 하지만 프로스포츠의 가치를 함께 생각하자면 허윤자에 대한 하나외환의 조치는 아쉬움이 남는다.
 
팀에 대한 애정과 헌신, 보상받지 못해
오랫동안 선수생활을 했고, 바라는 건 프로생활을 쭉 보내왔던 이 팀에서 마지막으로 우승을 하고 은퇴하고 싶다는 거 뿐 이에요. 우리 팀 어린 후배들, 정말 잘하잖아요? 우리은행이 어려운 시기를 딛고 우승을 한 것처럼, 저희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다들 이 아이들이 제대로 성장하려면 앞으로 3년 정도는 필요할거라고 하더라고요. 어쩌죠? 저는 정말 노력해도 2년 이상은 힘들 것 같은데... 동생들 기량이 조금만 빨리 올라와서 이 팀에서 다시 한 번 꼭 우승을 해보고, 그리고 은퇴하고 싶어요.”
 
지난 38, 어렵게 10연패를 끊은 후 허윤자는 담담하게 소회를 밝혔다. 부상까지 안고 시즌을 소화하고 있던 허윤자는 이날 28분여를 뛰며 13득점 4리바운드 4어시스트 2스틸로 팀 승리에 가장 큰 역할을 했다.
 

특히 허윤자는 나키아 샌포드가 전년 시즌에 비해 확연하게 위력이 떨어지고 FA시장에서 영입했던 이유진이 좀처럼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가운데서 묵묵히 팀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며 한 시즌을 치렀다. 31경기에서 평균 7.8득점 5.2리바운드 2.7어시스트를 기록한 허윤자는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의 역할을 해 주며 지난 시즌 한없이 흔들렸던 하나외환을 지탱했던 뿌리 깊은 나무였다.


FA협상 결렬, 애초부터 허윤자는 없었다
하지만 시즌 후 FA협상 과정에서 하나외환은 허윤자를 잡지 않았다. 표면상으로는 2천만 원의 간극이었지만 애초부터 신임 코칭스태프의 시즌 운영 방안에 허윤자는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허윤자는 1FA협상 당시부터 새 구단을 알아봐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었고, 결국 새로운 구단을 찾지 못했다. 여기에서 하나외환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다.
 
사실 허윤자에게 관심을 보인 구단들은 존재했다. 하지만 36세의 나이에 부상도 안고 있는 허윤자에게 보상선수 규정은 너무나 부담스러웠다.
 
2013-14시즌, 외국인 선수를 제외했을 때 허윤자의 공헌도 순위는 전체 13위다. 허윤자를 FA로 영입하는 구단은 보상선수 1, 혹은 허윤자가 받은 연봉의 200%38천만 원을 보상금으로 지급해야 한다. 보상선수 규정에서 팀이 지정할 수 있는 보호선수도 허윤자의 경우는 올 시즌 팀을 옮긴 박하나(삼성생명)나 정선화(하나외환)보다도 적은 4명이다.
 
때문에 일부 구단들은 하나외환 측에 허윤자를 다음 시즌, 선수단에 포함시키지 않을 예정이면 자유계약으로 풀어달라는 요청을 하기도 했다. 보상선수 조건이 없을 경우 허윤자를 영입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이다. 실제로 KB스타즈는 지난해와 올해, 박세미에 대해 영입을 원하는 구단이 있을 경우 자유계약으로 풀어주겠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하나외환은 끝내 허윤자에 대해 이 같은 조치를 행하지 않았다. 하나외환으로서도 많은 고민을 통해 내린 결정이었겠지만, 현행 규정대로 1년을 쉬게 될 경우 허윤자는 결과적으로 강제 은퇴라는 초라한 말로를 걷게 된다. 구단의 이익이 허윤자의 선수생명보다 우선이었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결국 16년 몸담았던 팀이 프렌차이즈 스타에 대한 예우는커녕 선수생활의 마지막 앞길마저 막았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과유불급된 하나금융그룹의 관심

구단이나 응원이 너무 많이 관심을 가져주시고 응원해주세요. 이렇게 지원을 받으면서 뛰어도 되나 싶을 정도로요. 한 번도 이런 관심 속에 운동을 해본 적이 없어서 오히려 당황스럽기도 한데, 그런데도 너무 못 이겨서 정말 죄송했어요. 이제 이기기만 하면 될 것 같아요.”
 
지난 20121111, 부천 실내체육관에서 벌어진 KDB생명과의 경기에서 승리를 거두며 팀 창단 후 홈 첫 승을 신고한 뒤, 하나외환의 김정은은 팀에 대한 고마움을 나타냈다. 특히 이날은 하나금융그룹이 그룹의 기념일로 강조하고 있는 하나데이여서 더욱 의미가 컸다. 이 무렵 하나외환은 조동기 감독을 비롯해 선수들 모두가 인터뷰 때마다 항상 팀에 감사하다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그 만큼 하나금융그룹은 팀과 선수들에 대해 열성적이었고 관심이 높았다.
 

하지만 지나친 관심이 독이 됐을까? 하나외환은 시즌 초반, 외국인 선수의 야반도주라는 전무후무한 황망한 사태를 맞이했고, 몇 경기에서 고비를 넘지 못하며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시즌 중에는 현장에 개입하는 윗선의 목소리가 지나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심지어는 선수 기용문제까지 거론됐다는 말이 흘러나왔다. 일부에서는 성적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며 모기업에서 절대로 보이지 말아야 할 모습을 너무 빨리 보여줬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존중이 사라진 문화, 스포츠의 가치도 상실
얼마 전, 하나금융그룹의 핵심인 하나은행 김종준 은행장이 과거 하나캐피탈 사장 재직 당시 60억 원 규모의 손실을 낸 사실과 관련해 금융당국으로 부터 중징계를 받았지만 임기완주를 선언하며 논란이 된 바 있다.
 
역대 금융권 수장이 금융당국의 징계를 받은 후 자리보전을 천명한 것은 김 행장이 최초다. 그런데 하나은행은 올해 들어 내부통제와 성과규정 등을 대폭 강화하며 행원들에 대한 압박은 더욱 강화했다. 신뢰외 존중을 바탕으로 하는 경영 문화와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다. 김종준 행장의 임기보전 방침에는 정부도 당혹스러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나외환 농구단이 허윤자에 대한 처분을 결정한 사항도 이러한 하나금융그룹의 경영 행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선일여고를 졸업하고 1998년 하나외환의 전신인 신세계에 입단한 허윤자는 크고 작은 부상 속에서도 팀을 지켜온 프랜차이즈 스타로 팀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다. 신뢰와 존중이 기저에 존재했다면 과연 이러한 조치가 행해졌을 수 있을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창단 2년을 맞이한 하나외환 입장에서는 전신인 신세계의 색깔을 지우기 위해 이전의 역사에 대해 그다지 관심을 두고 싶지 않을지 몰라도, 동원관중이 아니라면 부천 홈구장에서 하나외환을 외치고 있는 팬들의 마음은 분명 그것과는 다르다.
 
신세계 인수 후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고, 창단 첫해 기대 이상의 성적을 올렸지만 여러 악재 속에 성적이 나지 않자 여러 가지 말이 많았던 하나외환은 농구단은 결국 시즌 막판부터 계약이 끝나는 코칭스태프의 교체설이 나돌았다. 팀이 10연패의 나락에 빠져있을 당시에 이미 농구판에서는 후임 감독 얘기가 오갈만큼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선수단이 경기에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데뷔 후 꿋꿋하게 팀을 지켜주던 프랜차이즈 선수를 내치며 앞길까지 막아버렸다.
 
신뢰를 핵심으로 하는 금융그룹이 운영하는 스포츠단이 팀의 프랜차이즈 선수에게도 주지 못하는 믿음을 바탕으로, 과연 팬들에게 어떠한 희망을 줄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사진 : WKBL

토요경제 / 2014년 5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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