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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ntasize | 글/gIbberish

시대적 합리라는 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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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를 영애님이라 부르고, 그가 탄핵됐을 때 거리로 뛰쳐나와 눈물을 흘렸던 이들이 그 수사와 탄핵을 주도했던 이를 대통령으로 추대하고 지지했으며, 그가 저지른 과오에 대한 정죄에 관해서도 부정한다. 일반의 시선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련의 흐름을 당연히 상식으로는 용납할 수 없지만, 전례에 의한 정체성으로 보면 크게 어긋나지도 않는다. 


그들은 초대 대통령 이승만과 이후의 박정희를 숭상한다. 양비론에서 부정적 평가가 높은 부분에는 적극적으로 저항하며, 이들에게 국부(國父)라는 호칭을 부여한다. 그들이 갖고 있는 사상적 의식의 흐름을 보면 박정희는 이승만의 정치적 자산을 그대로 승계한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박정희가 이승만을 혐오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이야기다. 박정희는 물론, 같은 군인 출신인 전두환도 이승만을 높게 평가하지 않았다. 이승만과 미국은 군인 박정희를 공산주의자라고 분류했고, 이승만은 그를 퇴역시키려 했으며, 박정희는 4·19로 이승만이 하야 후 망명한 세상에서 5·16 쿠데타를 일으켰지만, 4·19 이전에 이미 쿠데타를 준비하고 있던 인물이었다. 어떤 이유와 설명 없이, 후손들이 자신과 이승만을 같은 시선과 위치에 두고 있다는 걸 안다면 박정희는 무척 불쾌하지 않을까? 이 지지층은 자신들의 이러한 행위에 대해 미국이 조지 워싱턴과 토머스 재퍼슨을 같은 범주에 두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굳게 믿겠지만, 사후 강제로 같은 자리에 앉혀진 이승만과 박정희가 저세상에서 지금의 대한민국을 관조한다면 상당한 넌센스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가장 단순하게만 보더라도 이승만은 역대 대한민국 대통령 중, 누구보다 일본을 싫어했다. 현재 ‘보수 우파’라 칭하는 그들의 추종자들이 내세우는 대일관계 기조는 이승만의 기준에서는 용납할 수 없는 궤변에 지나지 않는다. 이승만과 박정희는 사상과 행보에서 전혀 다른 인물이었고, 굳이 공통점을 찾자면 독재를 추구했다는 것 정도가 남는다. ‘민주주의의 정의와 개념’에 대해 제대로 수학할 기회가 없었던 세대들에게 ‘독재는 북한이나 자행하는 것’이고, 이승만과 박정희의 통치는 ‘한국식 민주주의’로 인식되어 있다. 대통령의 권위와 왕의 권위를 구별하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들이 독재를 두둔한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실상이 전혀 달라도 그 당시에 정서적으로 우리편이었으면 그들에게는 그저 다 용인이 되는 것이다. 완전히 다른 방향이지만 '시대와 상황이 다르므로 현상에서 차이를 보였을 뿐, 결국은 같은 것'이라고 자신들의 모순을 정당화한다. 상식적이지는 않지만 어쩌면 정치적으로 극히 고도화된 인간 집단일 수 있다. 이승만과 박정희를 같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정의(定義)라면, 박근혜와 윤석열도 그렇게 인식할 수 있다고 본다. 아마 이대로 시간이 조금 더 흐르면 이들은 전두환과 김영삼도 같은 자리에 두려 할 것이다.

 

스스로를 '보수'라 칭하지만 보수 참칭이다. 보수를 기치로 하는 이들이 국제적 질서에서 범하는 가장 큰 문제는 지나친 자민족 중심주의다. 그런데 이러한 민족주의적 정서는 대한민국 보수에게 전혀 발견되지 않는 부분이다. 한일 역사 문제에서 일본 극우파의 주장이 대한민국 보수의 의견과 닮아있다. 일본의 민족주의 역사관이 일본과 대립했던 대한민국의 민족주의 역사관에 그대로 투영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미국이 주도하는 질서에서 실리를 고민하면 대한민국 보수는 성조기를 들고 뛰쳐나온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국과 민족이 우선이 되어야 하는 우파와 보수의 논리와 정반대다. 하지만 그들은 대한민국 보수라 칭한다. 사대주의가 국익의 기반이다.

 

그리고 그 사대주의 조차도 자신들의 이익에 맞게 마음껏 재해석한다. 미국 정부가 한국 대통령의 계엄 선포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수차례 발표했음에도 윤석열을 지지하는 시위에는 어김없이 미국 국기가 등장한다. 주한미군이 직접 부인해도 들리지 않는다. 뭔가에 홀린 이들 같다. 종교적이다. 이스라엘 국기를 들고 뛰쳐나오는 개신교들과 다를 바 없다. 

 

그들에게 모순은 중요하지 않다. 모순을 시대적 합리로 인정하는 것이다. 보수 혹은 우파 참칭 세력 입장에서는 불쾌하겠지만, 이러한 정신세계와 가장 유사한 사례로는 중국 공산당이 떠오른다. 

 

중국은 일찌기 공산당 선언을 통해, '공산주의 이상을 위해 경제 방면에서 생산수단 전체를 사회공유화 하고, 이상 관철을 위해 자본주의를 타도한다'고 천명했다. 그런데 2002년, 중국 공산당은 장쩌민의 3개 대표론을 공산당의 당규약이라 할 수 있는 당장(黨章)에 삽입했다. 3개 대표론은 중국 공산당이 이익을 대표해야 하는 3개 대상을 가리키는데, ①선진 문화 발전을 위한 지식인 ②노동자, 농민을 포함한 광대한 인민 ③선진 생산력이라 언급한 자본가를 포함하고 있다.

 

중국 공산당 선언 이후 80년만에 나온 엄청난 변화다. '자본주의 타도와 토지와 공장, 기계 등 모든 생산수단의 사회 공유화'를 주장한 중국 공산당 선언과 함께 하는 당장(黨章)에 '자본가의 이익을 대표하겠다'는 내용을 삽입했다. 기존의 공산당 선언에 오류와 실책이 있다고 인정하지도 않는다, 자본주의를 타도하고 생산수단을 사회 공유화하지만, 자본가의 이익은 대표하겠다는 말이다. 모순이고 앞뒤가 맞지 않는 소리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팽창과 계급 혁명’이라는 단계를 거치지 않아 애초의 공산주의 개념에서 오류가 발생했고, 어쩌면 그랬기에 사회주의 초급단계에 있는 중국의 특수성이라면 그냥 다 맞는 게 된다. 그들에게도 모순은 중요하지 않다.


‘자유’를 숱하게 언급했던 지도자가, 자신이 숙명으로 저주하는 것처럼 지적하던 북한과 가장 유사한 방식을 택한 것처럼, 중국이라면 상종하지 못할 주적인 것처럼 반응하는 이들이 오히려 중국 공산당과 유사한 스탠스를 취하는 게 참 아이러니지만, 이 역시 큰 틀에서 보면 시대적 합리로 인정한 모순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게 ‘대한민국 보수 우파’라고 자칭하는 이들의 정체성일 수 있다. 

 

오히려 고민해야 할 것은 꾸준히 보수라고 주장했던 나의 정치적 입장에 대한 이름표다. 고작 나 따위의 입장이 그다지 중요한 건 아니지만, 만약 누군가 이에 대해 물어본다면 뭐라 답해야 할까. 분명 나의 생각과 개념은 보수인데, ‘애국 보수’ 혹은 ‘우파 보수’라 자칭하는 이들과는 너무 다르다. 어딘가에서 누군가 아주 창의적인 작명의 간판을 들고 나올 때까지, 그저 모르는 사람이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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