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fAntasize/iNside sports

WKBL 최악의 흑역사, 첼시 리 사태

728x90
반응형

‘첼시 리(Chelsey Odessa Lee) 사건’ WKBL 역사, 아니 한국 여자농구, 혹은 대한민국 농구나 스포츠 전체를 통틀어도 가장 어처구니없고 치욕스러운 사기 사건이었다. 

 

말 그대로 외국인 선수가 서류 위조를 통해 혈통 사기를 치고 한국 동포 선수 자격을 획득해 국내 선수와 똑같은 지위를 누리며 한 시즌을 뛰었고, 이후 국가대표가 되기 위해 특별 귀화를 신청했다가 위법 사실이 발각됐다. 첼시 리는 국내 검찰 소환에 불응하고 미국으로 가서 꾸준히 선수생활을 했고, 제대로 된 법적 처벌을 받지 않았다.

 

2016, 해당 사건이 터진 후, 하나은행은 장승철 구단주와 박종천 감독이 해당 사태에 책임을 지고 동반 사퇴했고, 사무국장은 감봉처분 받았다. 하나원큐는 정규리그 2위와 챔프전 준우승 성적이 말소됐고, 하나원큐의 2015-16시즌 팀 기록은 모두 지워졌다.(선수 개인 기록은 첼시 리만 지워지고 다른 선수들은 인정) 또한 하나원큐가 받은 상금은 환수됐고, 첼시 리의 에이전트 2명은 WKBL에서 무기한 활동 정지 처분을 내렸다. 하나원큐는 2016~17 신입선수 선발회와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에서 모두 최하순위를 받았다. 그리고 WKBL의 동포 선수 제도도 폐지됐다.

 

사태에 대한 결론은 에이전트와 선수의 사기에 의해 WKBL과 해당 구단이 모두 피해자가 됐다는 쪽으로 나왔다. 하지만 워낙 큰 사안이었기에 하나원큐 측은 징계를 통해 책임을 진다는 입장이었고, WKBL의 집행부에 대한 징계는 없었다.

 

정말 WKBL과 하나원큐가 순수한 피해자였냐는 부분은 여전히 알 수 없다. 다만 사태에 대한 결론은 그렇게 내려졌다. 기자에게는 당연히 사안에 대한 수사권이 없고, 첼시 리는 미국으로 건너 간 후 국내 검찰 소환에 불응한 관계로 더 이상의 진위여부는 알 수가 없다. 다만, 당시의 과정과 진행 상황에서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 그리고 의심스러운 부분, 또 사건 수습 과정에서 아쉬운 부분들은 상당했다.

 

따지고 들면, 다소 차이가 있는 부분도 있겠지만, 당시 사태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 첼시 리 사건을 정리해보겠다.

 

1. 그의 이름이 수면 위로 등장하다.

2015년 초여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한국계 혼혈인 흑인 센터를 발굴했다는 말이 갑자기 등장했다. 거의 190cm 100kg에 육박하는 선수라는 말이 나왔다. 하나원큐(당시 KEB하나은행)가 영입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고 했다.

 

비시즌에 구단 취재를 가면, 훈련이 끝난 후 코칭스태프와 프런트, 기자들이 함께 식사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당시 하나원큐의 감독이었던 박종천 감독도 이런 자리를 즐겼다. 하지만 이 무렵에는 박종천 감독과의 식사가 쉽지 않았다. 훈련이 끝나면, 혹은 오후 훈련에도 자리를 비우는 경우가 있었다. 혼혈 동포 선수 영입을 위해 용산 미군부대(미군부대인지, 미군부대 인근인지는 정확하지 않다.)에 갔다는 말이 심심치않게 들렸다. 동포선수 영입과 미군부대가 무슨 연관성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190cm의 혼혈 센터 영입 가능성 여부에 관심이 쏠린 것은 당연했다.

 

그게... 되겠어요?”

 

“오죽 선수가 없으면 이런 거까지 알아보겠어요? 그냥 노력이라도 해보는 거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런데 하나원큐 내부에서도 그렇게 우호적이지 않았다. 영입자체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내부에도 있었고, 코칭스태프도 초기에는 상당히 회의적이었다.

 

그런데 그게 현실이 됐다. 첼시 리는 하나원큐에 입단하게 됐다.

 

2. 하나원큐만 첼시 리에 집중했을까?

190cm의 흑인 혼혈 선수가 국내 선수 자격으로 경기에 나선다는 것은 엄청난 어드벤티지다. 스피드에 약점이 있을지 모르지만 높이와 힘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게다가 외국인 선수가 2명 보유 1명 출장이었던 당시 상황에서 사실상 외국인 선수 1명을 더 쓸 수 있다는 것, 그리고 확실한 빅맨으로 인해 외국인 선수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는 엄청난 장점이 있다. 그런데 왜 하나원큐만 첼시 리에 주목했을까?

 

사실, 모든 팀들이 첼시 리의 WKBL 입성은 불가능하다고 봤다.

 

그 이슈가 언급되면 어느 팀이나 , 우리도 알아요”, “, 한국 못 들어와요”, “한국 혼혈인 게 확실하대요?” 등의 이야기가 나왔다. 그런데 속초에서 열렸던 박신자컵 서머리그를 즈음하며 갑자기 첼시 리가 뛸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이 등장했다.

 

사실 첼시 리에 대한 사안을 먼저 확인한 것은 신한은행이었다. 당시 신한은행의 코치였던 이민우 코치는 미국 시민권자였다. 솔직히 시민권자인지 영주권자인지는 잘 모르겠다. 현역 시절 병역 파동도 있긴 했지만, 이민우 코치는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나왔고, 확실히 미국에 라인이 많다. 지금도 이민우 코치는 에이전트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아무튼 사건이 터지기 1년 전인 2014, 이민우 코치를 통해 신한은행이 먼저 첼시 리에 대한 제안을 받았다. 이 코치와 신한은행은 첼시 리가 WKBL에서 뛸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자격도 물론이고, 기량도 WKBL에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한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2015년에 하나원큐와 첼시 리의 연계 건이 등장한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발견됐다.

 

첼시 리는 할머니가 한국인이라고 했다. 이 부분에서 신한은행이 당황했다. 1년 전, 신한은행에 처음 접촉했을 때는 “부모 중 한 명이 한국인이라고 했었다”며, 그게 왜 갑자기 조부모로 바뀌었냐”고 반문했다.

 

사실 2015년에 처음 언급됐을 때도, 첼시 리는 할아버지가 한국인이라는 말이 돌았다. (Lee) 라는 성이 한국의 이()씨라는 말이 나왔다. 그런데 얼마 후, 할머니가 한국인이라고 말이 바뀌었다.

 

2015년에 첼시 리와 먼저 접촉한 구단은 하나원큐가 아니었다. KB가 먼저였다.

 

당시 통합 3연패를 달성한 우리은행의 새로운 대항마로 부상하고 있던 KB는 양궁 농구를 앞세워 우리은행에 대항했지만, 높이의 약점을 극복하지 못했다. 그런 KB에게 혼혈 센터는 매력적일 수밖에 없는 카드였다.

 

당시 KB의 서동철 감독과 박재헌 코치 등 관계자들이 미국 LA로 급파됐다. 첼시 리의 기량을 확인하기 위해 LA에 체육관을 빌렸고, 마이애미에 사는 첼시 리에게 왕복 항공권 등을 지급하며 LA로 불렀다. 그리고 기량에 합격점을 내렸고, 사인을 앞두고 있었다. 그런데 첼시 리가 한국계라고 주장한 서류가 충분치 않다는 해석을 WKBL 관계자에게 받았고, 이 내용을 첼시 리에게 설명한 후, 필요한 서류를 보충해서 다시 만나기로 했다.

 

하지만 이후 첼시 리와 연락이 두절됐다. KB 관계자들은 LA에서 며칠 간 더 첼시 리의 연락을 기다렸지만 답은 없었고, 결국 성과 없이 돌아오게 됐다.

 

그런데 이 때, LA 공항에서 KB는 하나원큐 박종천 감독과 조우한다. “LA에 어쩐 일이시냐고 묻는 서동철 감독에게 박종천 감독은 개인적인 볼 일이 있다고 답했다고 한다. 그리고 KB가 귀국한 후, 하나원큐의 첼시 리 영입은 급물살을 탔다.

 

첼시 리의 현지 에이전트사는 한 곳이지만, 해외 업무를 담당하는 에이전트의 대리인은 1명이 아니다. 하나원큐는 후에, 대리인들 중에 KB를 연결한 이와 하나원큐를 연결한 이가 있었던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KB는 첼시 리가 서류 문제로 KB와 합의가 힘들어지자 다른 대리인을 통해 하나원큐와 다시 새 판을 짠 것이라고 불쾌해했다. 도의적으로 계약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결렬 확정 이전에 하나원큐가 끼어들어 하이제킹을 했다는 것. 실제로 플로리다에서 LA로 이동하는 비용 조차도 KB가 모두 부담한 상황이기에 KB 입장에서는 기분이 좋을 수 없었다.

 

훗날, 첼시 리가 특별귀화를 신청했을 때, 그의 서류에 문제가 있다고 법무부에 탄원했던 인물이 그를 KB에 소개했던 에이전트 대리인인 것으로 안다. 

 

아무튼, WKBL 감독들의 회식 자리에서 서동철 감독이 박종천 감독에게 남자답게 사과하시라고 했고, 박종천 감독은 여기에 역정을 내며 언성을 높이고 언쟁을 벌였다고 한다.

 

어쨌든 KB 역시 서류 자체에 떳떳함이 없었던 만큼, 첼시 리의 WKBL행은 문제가 있는 것으로 판단했다. 하나원큐의 영입이 인정될 것이라는 말이 나온 이후, 다시 첼시 리와 접촉을 했지만, 이미 첼시 리는 하나원큐 쪽으로 방향을 잡은 후였다.

 

3. 여전한 의심

그렇게 첼시 리는 한국행에 성공했다. 한국에 들어온 첼시 리를 하나원큐를 제외한 다른 이들 중 가장 먼저 접한 게 우리였을 것이다. 당시, 가이드북 사진 촬영을 위해 하나원큐의 청운동 숙소를 방문했고, 첼시 리를 실제로 본 순간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다 만나본 건 아니지만, 나름 유학 생활도 하면서 개인적으로는 외국인을 많이 만나본 쪽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첼시 리는 한국계 혼혈이라는 생각을 할 수 없을 만큼 정통 흑인에 가깝다는 느낌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첼시 리를 보자마자 한국계일 수 없다고 확신했다. 이는 나만의 편견이 아니었다.

 

하나원큐 촬영 후, 두 번째로 구단 촬영을 한 팀은 우리은행이었다. 사복 촬영에서 어떤 포즈를 취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난감해하던 우리은행 선수들에게 먼저 촬영한 하나원큐의 사진을 보여줬다. 그때 우리은행의 외국인 선수였던 쉐키나 스트릭렌이 첼시 리의 사진을 보자 반갑게 웃었다. 첼시 리를 원래부터 알고 있었다고 했다.

 

우리은행의 유미예 통역이 스트릭렌에게 첼시가 쿼터 코리언(Quarter Korean)인 걸 아냐고 묻자, 스트릭렌은 깜짝 놀라며 처음 듣는 말이라고 했다. 메디컬 체크 때 첼시 리를 처음 본 KB의 모니크 커리는 첼시 리의 면전에서 네가 하프 코리언이면 나는 100% 코리언이라고 하기도 했다. 당시 고양 오리온에서 뛰던 문태종은 첼시 리의 사진을 본 후, 자기 아들을 가리키며 쿼터 코리언은 내 아들 정도 비주얼이 나온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미국의 흑인 문화권, 혹은 그 정서에 익숙한 이들에게도 첼시 리의 조부모 혈통에 한국계가 있다는 것이 납득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생긴 걸 보니 조부모 중에 한국계가 있을 수는 없다고 명문화 할 수는 없었다. 하나원큐는 물론 WKBL 관계자들도 “첼시 리에 대한 여론이 어떠한가”에 대해 자주 물어보곤 했다. “증거만 없을 뿐, 한국계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답했다.

 

그렇게 시즌 개막이 다가왔고, WKBL은 기자단을 모아 놓고, 첼시 리의 동포 선수 자격에 대해 설명했다. 이 자리에서 WKBL은 첼시 리가 자신의 출생 관련 서류에 대해 국가 간 공문서 인증(아포스티유/Apostille)을 받았다며, 동포 선수 자격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했다. 그리고 연맹에 방문하면 언제든지 해당 아포스티유를 열람하게 해준다고 했다.

 

그래서 열람하러 갔다. 그런데 해당 서류를 촬영하려 하자, 연맹 집행부 인사가 이를 저지 했다. 사생활 침해라는 것이다. 서류 연번을 확인하겠다고 하자 그것 역시 사생활 침해라고 안 된다고 했다. 열람만 가능하고 확인은 못하는 것이다.

 

이럴 거면 왜 열람하라고 했냐고 묻자, “멀쩡한 서류가 존재한다는 건데 왜 믿지 못하냐며 역정을 냈다. 촬영과 연번 확인은 사생활 침해고 법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당시 이 인사에 대해 손대범은 아포스티유 홍보대사라고 비꼬기도 했다.

 

그 인사에게 이 서류에 문제가 있다면 어떻게 할거냐고 묻자, “그게 얼마나 심각한 발언이고 모욕인 줄 아냐면서, “연맹 법무법인으로부터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유권해석을 받았다. 소모적으로 문제를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심증만 있고, 물증은 없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법적인 유권해석까지 마쳤다는데 더 문제를 몰고 갈 순 없었다. 하지만 그 인사에게 진짜 이러다가 큰 일 난다. 나중에 후회할 거라고 분명히 말했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너무 많았다.

 

내가 연맹으로부터 미운 털이 단단히 박혔던 시기가 이때였던 것 같다. 당시 모 구단의 사무국장은 어떤 사안과 관련해 연맹에 나를 추천했는데,  “연맹 고위 인사가 말을 돌리더라”며, “박편은 야당이야? 같은 농구 전문지인데, 그래도 보조는 좀 맞춰 주지 그랬냐”고 했다. 

 

알려지지 않았을 뿐, 연맹에 첼시 리의 자격 인정 과정 등을 놓고 부정적인 의견을 제시한 기자들은 나 말고도 상당히 많았다. 물론 그냥 넘어가면 된다는 식의 의견을 낸 이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이에 대한 문제성을 지적했었다. 하지만 확실한 증거가 없다는 것, 그리고 법적인 유권해석을 받은 아포스티유가 있다는 논리는 철옹성과도 같았다.

 

이후, 시즌이 진행되며 첼시 리는 위력을 더해갔다. 당시 회사 대표였던 농구인 출신 박건연 회장님께서 첼시 리가 아주 기가 막히다는데, 특집 기사로 한번 다뤄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을 하셨다. 평소 이런 부분에 개입하지 않는 분인데, 연맹의 그 인사, 아니면 하나원큐 감독으로부터 부탁이 온 것 같았다. 세 분이 모두 동문이다.

 

박건연 회장님께 머지않아 큰 사고 터질 것이라며, “리뷰랑 인터뷰는 어쩔 수 없지만, 와이드로 다루는 건 절대 안 된다”고 말씀드렸고, 회장님도 그 부분은 편집장 재량으로 알아서 하라고 했다.

 

 

4. 시즌의 결과

첼시 리는 압도적이었다. 정규리그에서 15.110.4리바운드를 기록했다. 당연히 신인상을 수상했다. WKBL 역대 신인상 수상자 중에서도 가장 절대적인 기록이다. 첼시 리는 신인상을 비롯해, 최고 공헌도를 기록한 선수에게 주어지는 윤덕주 상, 득점상, 리바운드상, 2점 야투상, 베스트5 6관왕을 차지했다. 우승에 대한 가중치가 절대적인 WKBL 시상식인 탓에 MVP는 양지희(우리은행)가 받았지만, 객관적인 활약만 놓고 보면 첼시 리가 MVP를 받는 게 맞는 시즌이었다. 박지수(KB)가 정규리그 다관왕 기록을 깨지 않았다면, 우리는 여전히 없어진 기록의 ‘6관왕 유령이 부유하는 부끄러운 역사와 마주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나원큐는 정규리그 2위를 차지하며 플레이오프에 직행했다. 하나원큐는 이때 버니스 모스비, 트리샤 리스턴이 외국인 선수였고, 이중 한 명이 첼시 리와 함께 코트에 나서며, 사실상 2명의 외국인 선수가 경기를 뛰었다. 김정은, 강이슬, 백지은, 염윤아, 홍보람, 김이슬, 서수빈 등이 주요 라인업이었다.

 

하지만 플레이오프 이후에는 정규리그 2위팀의 위용을 보여주지 못했다. KB와의 플레이오프에서 1차전을 내준 후, 내리 두 경기를 잡아 챔프전에 올랐다. 하지만 놀라운 투혼을 보여준 변연하를 저지하지 못했다. 시리즈 내내 돋보였던 것은 변연하였다. 3차전에서 1점차의 신승을 거뒀는데, 마지막 과정에서도 하나원큐의 파울성 플레이를 심판이 불지 않는 작은 논란도 있었다. 3차전은 결국 변연하의 은퇴 경기가 됐다.

 

챔프전에서는 더욱 힘을 못 썼다. 1차전 15점차, 2차전 14점차, 3차전 18점차로 승부가 갈렸다. 매 경기 일찌감치 승부의 추가 기울어졌다. 일방적이었다. 현장에서는 우리은행이 하나원큐에게 마치 너희는 여기에 올라올 자격이 없다고 징벌하는 것 같다는 말까지 나왔다. 당연히 첼시 리의 자격에 대한 의구심을 가정하고 나눈 말이었다.

 

5. 한 시즌 만에 터진 진실

시즌 내내, WKBL과 하나원큐로부터 여전히 첼시 리가 한국계라는 걸 믿지 않냐는 말을 들었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믿겠냐길래, “절대로 믿을 수 없으니, 그냥 귀화 시켜서 한국인을 만들어 버리라고 답했다.

 

그런데, 정말 시즌이 끝나자마자 특별 귀화를 신청했다. 물론 내가 한 말 때문은 아니었을 것이다. 국가대표 빅맨이 요원한 상황에서 첼시 리를 귀화 시켜 국제 경쟁력을 강화하고자 하는 노력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거기서 첼시 리의 서류 위조가 적발됐다.

 

체육 인재 외국인의 특별 귀화라고 했으면 그냥 넘어가지 않았을까? 빠른 귀화 처리를 위해, 굳이 한국계라는 것을 강조했다가, 한국계임을 주장한 서류가 위조임이 적발됐다.

 

첼시 리를 처음 봤을 때, 그리고 어떻게든 첼시 리가 한국계여야 한다는 느낌을 줬던 진행 과정을 보며, 분명 언젠가는 큰 사단이 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주변에서 첼시 리에 대해 묻는 이들에게도 항상 한국계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게 1년 만에 터질 거라고는 생각 못했다.

 

연맹 관계자에게 법무법인에 피해보상을 요구하라고 했다. 아포스티유에 문제가 없다고 유권해석을 내린 고문변호사도 잘못이 있는 거니까. 그런데 관계자에 의하면, 법무법인은 서류가 진본인 경우, 문제가 없다고 답을 해줬단다. 결국 연맹 집행부 인사가 나에게 설명하며 그 가정을 빼고 말한 것이다.

 

6. 결말

진행 과정과 내용을 놓고 보면,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다. 무리수를 뒀다는 느낌이 많다.

 

결과적으로 첼시 리와 해당 에이전트에게 WKBL과 하나원큐가 속았다는 결론이었지만, 그 결론의 진위 여부는 논란이 될 수밖에 없다. 하나원큐는 물론 WKBL은 일 처리 과정에서 첼시 리가 반드시 한국계여야만 한다는 느낌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연맹 고위 인사는 첼시 리의 동포 선수 자격을 정말 적극적으로 변호했다.

 

사태가 터진 후, WKBL에서는 누구도 해당 사건에 책임을 지지 않았다.

 

신선우 총재는 언론 인터뷰에서 책임 소재와 관련한 추궁을 당하자 양원준 총장에게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을 우회적으로 밝혔지만, WKBL 단장들로 구성된 이사회에서 양 총장에 대한 징계는 거론되지 않았다. 당시 현장에서는 총장에게 징계를 주는 것은 꼬리 자르기 정도일 뿐, 큰 의미가 없다는 의견이 많았다. ‘WKBL에도 분명 책임을 지는 사람이 나와야 한다는 분위기였고, ‘그 대상은 총재가 아니면 의미가 없다는 여론이었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이듬해, 아산에서 열린 박신자컵 도중에는 하나원큐 사무국 인사와 연맹 고위 인사가 첼시 리 사건과 관련해 취중에 언성을 높이며 대립하는 일도 있었다. 치고 받지만 않았을 뿐, 싸움이나 다름없었다. 하나원큐 사무국 인사는 연맹 집행부 인사에게 첼시 리 문제, 이미 알고 있었던 것 아니냐며 날선 비난을 했고, 연맹 인사는 고성을 지르며 화를 냈었다.

 

7. 하나원큐의 후속 조치

(1) 사임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 사태로 사임한 인물은 장승철 구단주와 박종천 감독이다. 우선 장승철 구단주는 당시 하나금융의 계열사인 하나금융투자의 부회장이었다. 2017년부터 AJ세이프티파트너스 대표이사를 맡고 있으니, 사실상 이 사건으로 타격을 받은 건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결국 직격탄을 맡은 유일한 인물은 박종천 감독이다. 최근 인터뷰를 보면, 에이전트의 사기에 대응할 방법이 없었다는 주장을 했는데, 첼시 리 영입과 관련해 가장 적극적이고 분주했던 인물이 본인이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했다고 본다. 본인의 적극적인 부인에도 불구하고, 일부에서는 첼시 리 건의 설계에 적극 가담하지 않았겠냐는 소문도 있었다. 

 

(2) 구단 불이익

일단 구단은 정규리그 준우승 상금과 챔프전 준우승 상금, 4500만원을 반납했다. 사실 이 정도 상금 규모 자체가 금융그룹인 하나원큐에게 타격일 수 없다. 다만, 2016-17 국내-외국인 드래프트에서 1-2라운드 최하순번(6순위, 12순위)을 행사하게 된 것은 영향이 없었다고 할 수는 없다. 어차피 구슬이 나오지 않았지만, 2016-17 신입선수 선발회가 박지수 드래프트였음을 고려하면, 박지수 선발에 도전조차 해보지 못했다는 데에 아쉬움은 존재할 것이다.

 

반면 외국인 선수 드래프는 끝 순번이었음에도 선방했다. 하나원큐는 당시 카일라 쏜튼과 나탈리 어천와를 뽑았는데, 우리은행(존쿠엘 존스, 모니크 커리)이나 삼성생명(엘리사 토마스, 나타샤 하워드)을 제외하면, 하나원큐만큼 수확이 좋았던 팀도 없었다.

 

선수들의 동요도 있었다. 첼시 리 사건이 터지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김정은에게 전화를 받았다. 김정은에게 내가 먼저 전화한 적은 있어도, 김정은이 먼저 연락을 한 것은 지금 껏 살면서 2-3번 정도가 전부다. 그중 한 번이 이때였다. 당시 김정은은 첼시 리 사건에 대해 선수들은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며 속상해 했고, 이 사건으로 팀이 극단적인 결론을 내릴까봐 불안해했다. “후배들이 아무것도 모른 채 농구를 못하게 되면 어쩌냐고 안타까워했다. 신세계의 해체를 경험한지 얼마 되지 않았던 때라 동요가 상당했다.

 

 

8. WKBL의 후속 조치

WKBL에서는 첼시 리 사태와 관련해 책임을 진 인사는 없다. 철저하게 피해자의 입장을 강조했다. 그래서 당시 언론으로부터 피해자 코스프레 좀 작작하라는 비난을 받았다. 사실 WKBL도 이 당시가 연맹 운영과 관련해 최고의 암흑기를 걷던 시점이다. 안타깝게도 농구인 출신의 회장과 총재가 농구협회-KBL-WKBL 수장을 맡았던 시기가 한국 농구에는 가장 비참하고 무능했던 시기였다.

 

(1) 기록 삭제

이 시즌 하나원큐의 팀 기록이 모두 삭제됐다. 승패는 물론 순위에서도 하나원큐의 자리는 비어 있다. 모르는 이가 보면 2015-16시즌은 5팀으로 리그를 운영한 것 같다. 기자 프로그램을 돌려봐도 아무것도 열람이 되지 않는다. 심지어 하나원큐가 치른 정규리그 35경기, 플레이오프 3경기, 챔프전 3경기의 경기 기록도 확인이 안 된다. 선수 개인 기록은 첼시 리의 기록만 지워졌다.

 

첼시 리의 흔적을 최대한 리그 기록에서 없애기 위한 조치로 보이지만, 결과적으로는 번거롭기만 하다. 찾아야 할 기록을 확인 못하는 경우도 있고, 감독들의 개인 최다승 같은 기록을 따질 때는 이 시즌 하나원큐 전 성적을 넣어야 하는 지 여부로 혼선만 생긴다. 불이익은 다른 사람들이 받고 있는 것 같다.

 

(2) 첼시 리 에이전트 2명 무기한 활동 정지

눈 가리고 아웅이다. 실효성 하나 없는 조치였다. 첼시 리의 에이전트는 회사 소속이고, 개별적으로 활동하지 않는다. 첼시 리의 에이전시는 이후, 자사의 다른 에이전트를 이용해 WKBL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에 매년 참가했다. 이 징계 효과는 전무했다.

 

(3) 동포선수 제도 폐지

가장 어이없는 조치가 제도 폐지였다. 사고는 본인들이 치고, 애꿎은 제도를 없애 버렸다. 국내 선수의 풀이 부족하고, 리그 수준이 떨어진다고 지적하면서, 선수를 영입할 수 있는 보조 창구를 막아버렸다. 그냥 제도 자체가 언급되는 게 싫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안타까운 건, 이 무렵 김애나가 대학을 졸업한 후, WKBL 입성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김애나는 캘리포니아 주립대 롱비치 캠퍼스에서 괜찮은 활약을 펼쳤지만 현실적으로 WNBA 도전은 무리였고, 선수 생활을 계속하기 위해 WKBL을 적극 타진하고 있었다. 이후에도 WKBL에 자신을 알리기 위해, 비시즌 중 각 구단을 방문하며 훈련에 참가하기도 했다.

 

그런데 제도가 없어지면서 동포 선수들의 WKBL 입성이 불가능해졌다. 지금은 신입선수 선발회를 통해 WKBL에 도전할 수 있도록 제도가 바뀌었지만, 이 때는 그 조차도 불가능했다.

 

첼시 리 사태 당시 아포스티유를 앞세워 동포 선수 자격에 문제가 없다고 강조했던 WKBL 집행부 인사에게 김애나의 사례를 제시하며 제도의 변경이 필요하다는 말을 수차례 전한 바 있다.

 

그러나 해당 인사는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에 지원하면 될 것 아니냐는 말도 안되는 답을 했다. 사실상 불가능한 이야기다. 반박을 하니 그럼 미국 국적 포기하고, 한국 국적 취득해서 들어오면 된다고 했다. 솔직히 이런 태도는 무책임의 정점이다. “당신 아이가 그 입장이라도 그렇게 하겠냐고 했더니, “교포 얘기도 꺼내지 말라고 도리어 짜증을 냈다.

 

그나마 다행히도 몇 년이 지나 동포 선수에게 다시 문이 열렸다. 하지만 첼시 리 사태가 아니었다면 김애나는 조금 더 이른 시점에, 더 좋은 몸 상태로 WKBL에 도전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무능과 태만을 늘 경계해야하는 이유가 이 사태 때도 분명 존재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