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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미어리그 시즌엔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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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풀은 잉글랜드 프로축구 역사에 최고 명문팀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888년 출범한 세계 최초의 프로축구리그인 잉글랜드에서 리버풀은 비록 출범 당시 최초의 12팀 중 한 팀은 아니지만, 1892년 창단해 1부 리그 우승만 19번을 차지했다.

 

하지만 나한테 리버풀은 늘 뭔가 엄청 열심히 하고 마지막에는 깡통을 차는 팀의 이미지가 강했다. 개인적으로 조지 베스트 이후 데이비드 베컴과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등장 이전까지 맨유의 7번으로 가장 강한 임팩트를 보여줬다고 생각하는 에릭 칸토나에 열광해 맨유를 응원했던 나에게, 리버풀은 존중의 대상이 아니었다.

 

유학생 시절, 리버풀 팬이었던 사촌형이 내 방에 걸린 맨유 깃발을 보고 빨간색 토일렛 페이퍼라고 하며 그 적대적인 감정은 절정에 이르렀다.

 

될 듯 될 듯 안 되는 리버풀을 약올리는 게 축구보는 낙이었다. 리버풀이 경기를 접은 날이면 늘 사촌형에게 “You'll ever walk alone. As usual”이라고 말하는 게 그렇게 짜릿했고 일상이었다. 실제로 리버풀은 잉글랜드 프로축구 1부 리그가 프리미어리그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시작된 1992년 이후로는 한 번도 우승을 차지하지 못하다가 2019-20시즌에 이르러 19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1989-90시즌 이후 30년만의 우승이었다.

 

한창 유럽축구를 미친 듯이 보던 시절의 리버풀은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실패자였다. 그러다보니 다 잡은 것 같은 승리를 놓치는 리버풀을 보는 것과 그 패배에 허탈해하는 리버풀 팬인 지인들을 약 올리는 것이 당시에는 참 즐거운 낙이었다. (2004-05시즌, 리버풀이 이스탄불의 기적을 만들었을 때는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다.)

 

내가 응원하는 팀이 나락으로 떨어져 썩소만이 가득한 지금도, 유일한 낙은 좋아하지 않는 팀이 물먹는 장면을 볼 때, 그리고 맨유를 맹구라 부르며 날 괴롭히는 리버풀빠들에게 영국 훌리건의 원조에 어울리는 참교육이 이어졌을 때 약올리는 것 뿐이었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그런 걸 기대할 상황도 없었다. 솔직히 리버풀과 맨유의 차이는 비교자체가 부끄러운 수준이 됐다. 2000년대 초반, 안필드 경기를 본 후 술을 퍼마시면서 평생 혼자 걸을 거라는 소리를 들었던 사촌형의 암흑기가 지금 나한테 와 있는 것 같다.

 

그래도 오늘 같은 결말...

 

아주 좋다!!!!!

 

맨시티가 질까봐... 모하메드 살라가 한 골을 더 넣을까봐 정말 조마조마했다. 개인적으로는 살라의 득점도 없었어야 정말 완벽한 하루였을텐데... 뭐 이 정도만 되도 내가 아는 리버풀이 된 것 같아 만족스럽다. 이미 더블을 기록한 리버풀이니... 충분히 우승 많이 한 거 즐기고, 큰 트로피 두 개는 못 받았으면 좋겠다!

 

아울러 아스널은 오늘 5-1로 이겼다. 그리고 챔피언스리그에 떨어졌다.

 

... 정말 아스널은 판타지 스타 데니스 베르캄프, 그리고 아르센 뱅거의 프랜치 커넥션으로 대표되는 그 화려한 라인업의 뷰티풀 사커시절, 질투가 나서 싫었던 팀이다. 그래... 난 맨유 팬이니까...

 

그래서 아스널이 UCL 바르셀로나 전에서 유효슈팅 0개로 모욕적인 패배를 당했을 때, 벤치에서 머리를 감싸 쥔 뱅거를 보며 그렇게 짜릿할 수가 없었다. 아스널도 리버풀과 마찬가지로 될 듯 될 듯 안 되는게 참 잘어울린다는... -_- (내 안에 악마가 있다.)

 

그런 걸 다 떠나 어쨌든 오늘의 주인공은 손흥민이었다. 솔직히 전반 내내 이전보다 몸이 무거운 것 같았고, 완벽한 찬스를 놓치면서 득점왕은 무산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기어이 두 골을 올렸다. 마지막 골은 전율이었다.

 

맨유 팬이지만 토트넘은 그래도 좋은 감정으로 보는 팀이었다. 가장 좋아했던 선수 중 한 명인 위르겐 클린스만이 짧은 기간이었지만 토트넘에서 멋진 활약을 펼쳤다. 이후 이영표가 토트넘에 가면서 애정이 한 순간에 사라졌지만, 그래도 디미타르 베르바토프의 우아한 축구는 정말 인상적이었다. 베르바토프는 토트넘보다 맨유에서 더 오래 뛰었지만, 토트넘에서의 플레이가 더 인상적이었다는 느낌이다.

 

아무튼 그런 토트넘에 스리슬쩍 박제가 되는 듯한 손흥민이 이제는 득점왕까지 차지했다. 다시 생각해도 대단하다. 그리고 살라는 오늘 골을 넣지 말았어야 했다. 역시... 리버풀은 싫다.

 

... ... 보통 열심히 하고도 망하면 죽 쒀서 개줬다.. 라고 하는데... 맨유는 이번 시즌, 개한테 줄 죽도 없다. 유로파리그가 부담스러워서 유로파컨퍼런스로 가려고 발악했는데, 유로파리그에서 개망신 당하라고 웨스트햄이 맨유를 밀어줬다. 한 골 먼저 넣고 , 우리가 갈수도 있는데 봐준거야라고 말하듯 브라이튼한테 역전패를 당해줬다.

 

이제 순위표를 보면, 웃기지도 않는다. 경기는 안 보는게 낫다. 90분 동안 맨유의 슈팅보다 내가 한숨 쉬는 숫자가 더 많을 거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하를 보여주겠다는 노력과 의지로 똘똘 뭉친 것 같다. 대단하다. 빅 클럽에서 저 따위로 축구할 수 있다니..

 

포항이 2위라는 소식을 듣고 깜짝 놀라서 19년 만에 내 돈으로 티켓을 사고 축구장을 찾았다가 상암에서 잘 뻔했던 지난 주말... 거지같은 셀링클럽 주제에 화수분 타령을 하면서도 이상하게 성적을 내며 2위까지 올라있다고 해서 각 잡고 중계를 봤더니 연장에서 웃기지도 않은 개그를 하면서 져버린 두산...

 

... 스포츠팀 응원과 관련해서 뭔가 커다란 시험에 빠지는 느낌이다.

 

젠장. 몽땅 망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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