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선산의 벌초 이야기가 나왔다. 문득 작년의 일이 떠올랐다. 박신자컵 취재를 위해 통영을 찾았다가, 하루 쉬는 날, 선산 가서 성묘라도 하고 오라는 아버지의 지시.. 에 길을 떠났다가.. 정글이 되어 버린 선산에서 길을 잃을 뻔 했다. 선산에 내 묫자리 파놓을 뻔 했다. 그러다 보니 또 떠오르는 게 있다.
아버지의 고향은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이다. 동네 뒤로 선산(와우산)이 있고, 앞으로는 평사리 논이, 옆으로는 섬진강이 흐른다.
그래... 딱 봐도 전형적인 시골이다. 예전에 여행을 같이 했던 후배는 자기 아버지 고향은 그냥 도시랑 다를 게 없다며, "고향은 이런 게 고향이지"라고 칭송했었다...... 아... 이게 칭송 맞나? -_-
여기에는 특이한 곳이 있다. 바로 토지문학관과 드라마 토지 세트장 등이 그 곳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여류작가인 고 박경리선생이 집필한 대하소설 토지가 바로 하동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만들어진 곳이고, 나름 관광지이다.
하지만 박경리 선생은 26년간 토지라는 소설을 집필하면서도, 막상 그 배경이 되었던 하동에는 방문하신 적이 없다고 한다. 경남 통영 출신인 박경리 선생은 고향을 오가는 길에 봤던 하동을 소설의 배경으로 삼았던 것이지, 막상 이곳과 특별한 연이 닿은 적도 없었고, 집필 활동을 한 곳도 강원도 쪽이라고 한다. 지금의 대전-통영 고속도로가 뚫리기 전에는 통영을 갈 때 국도로 빠지면, 섬진강변으로 길을 타고 하동을 빠져서 지나야 했다.
하지만 어찌되었건 박경리 선생의 토지라는 작품으로 말미암아, 하동이라는 이름이 유명세를 탄 것은 사실이다. 그 외에 하동이 유명한 건... 뭐.. 대봉감, 작설차, 섬진강 제첩국... 화개장터? 뭐 그 정도다.
그래서 소설의 배경이 되는 악양면 평사리가 내려다보이는 곳에는 소설에 등장했던 최참판 댁이 복원(사실은 창조)되었으며, SBS에서 이 드라마를 다시 방영하자, 그 주변으로 드라마 세트장을 지었다. 드라마 토지는 1987년에 KBS에서 처음 방영됐고, 2004년에 SBS에서도 방영했다.
일부 사람들은 토지에 등장하는 최참판이 실존인물인 줄 알고 있기도 하지만, 하동에 그런 사람은 없었고, 실제로 작품에서 등장하는 만석꾼이 나올 수 있는 조건도 아니라고 한다.
토지 세트장에서 내려다 본 평사리 벌판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논 한 가운데에 위치한 소나무 두 그루이다.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상당히 이름 난 곳이기도 하고, 일부 사진이나 여행 관련 책에서는 저 나무 두 그루를 '부부송'이라 부르기도 한다. 심지어 저 소나무에 대한 그럴듯한 설화(?) 비슷한 것도 존재하는데,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다 헛소리다. -_-;;
저거... 우리 고조할머니의 유택(무덤)이다. 고조부님은 논 뒤로 보이는 산의 일부인 선산에 모셔져 계시고, 저기에는 고조모님만 계시다.
논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어서, 봉분도 구분이 안 될 정도로 낮고, 비석이나 상석도 없다. 하지만 하동군청에서도 저기가 우리 조상묘인 걸 분명히 알고 있다.
지금은 운치있다고 말하는 분들도 있을 지 모르지만, 애초에 저 나무는 하동군의 상당한 애물단지였나보다.
논 한 가운데 위치한 탓에, 헬기로 농약을 뿌릴 때 방해가 된다며 옮기라는 연락이 수도 없이 왔었다. 심지어 사유재산임에도 불구하고 베어버리겠다는 협박성 전화도 많았다. 하지만, KBS에서 토지를 드라마로 방영하면서 오프닝 영상에 저 벌판이 항상 등장하게 됐고, 그 후 소나무가 유명세를 타자 이후에는 그런 말이 없어졌다. 특히 2004년 SBS에서 드라마가 다시 제작되고 저 평사리와 소나무가 또 등장하자 그때부터는 난데없이 관광 상품이 됐다.
언젠가는 하동군청 홈페이지에 사진이 오르기도 했고, 하동 농협에서 판매하는 작설차의 광고에도 당당하게 하동의 상징으로 소나무 두 그루가 떨렁 박혀 나오기도 했다. 저 유택과 바로 주변의 밭과 논 일부까지... 남의 사유재산을 무단으로 사용하고 있는 거다. 심지어 남의 집안 조상묘역을 그렇게 활용 중인거다...
뭐... 이 부분은 그러려니 할 수 있다.
하지만 고조모님만 홀로 선산이 아닌 논 한 가운데로 모셔진 이유가 있을 것이 아닌가? 그다지 아름다운 이유는 아니다. 그런 곳에 뜬금없이 말도 안 되는 애틋한 ‘부부송 전설’을 창조해내서 어처구니없는 소리를 하는 건 이해가 안 된다. 어디선가는 소설 토지 속에서 이루지 못한 서희의 사랑을 암시하는 나무라는 말도 안되는 설명까지 친절히 주석으로 달고 있는 것을 볼 때면 참 씁쓸하다.
응.. 그런 거 없어. 저기가 지금의 논이 되기 전에는 다 솔밭이었고, 일제시대 때 옆에 섬진강이 홍수로 넘쳐 들어 왔을 때, 몰래 소나무 베어서 팔아먹은 도둑들 때문에 떨렁 저거 두 그루 남은 거야... -_-;
게다가 저게 남의 집안 묘인 줄도 모르고, 저기까지 당당히 들어와서 유원지인양 술 마시고 쓰레기를 버리고 가는 사람들도 있다. 당신들이 앉아서 술잔을 기울인 그 곳이 우리 고조할머니 묘 봉분 위였다는 걸 알면 어떤 심정일까?
곰곰이 생각 중이다. 저 주변에 높이 철망을 치고, 거기에 ‘사유지이며 묘지입니다. 사진을 찍거나, 들어오지 마세요’라고 적어서 현수막을 매달아야 할런 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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