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하동군 악양면 신성리는 아버지의 고향이다. 신성리와 마주하고 있는 평사리 벌판은 고 박경리 선생님이 쓰신 대하소설 '토지' 탓에 갑자기 유명세를 탔다. 실제로 소설에 등장하는 최참판이 실존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것이라 잘 못 알고 있는 사람들도 많을 정도다. 어쨌든 하동군에서는 평사리 벌판이 내려다 보이는 곳에 최참판 고택을 지었고, 토지 마을을 작게 만들어 드라마 세트장으로도 활용되었으며, 상당히 보존이 잘 된 편이다. 그리고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널다란 논밭 사이에 솟아있는 나무 두 그루는 상당히 알려진 곳이고 "부부송" 이라 불리고 있다.
하지만 사실을 말하자면 저 곳은 우리 5대조 할머니의 유택이다. 항상 잡초가 무성히 자라고 특별히 봉분과 비석을 하지 않아 눈에 띄지 않지만 두 그루의 소나무 바로 앞에는 할머니의 묘가 있고, 매년 시제를 모실 때 마다 선산에 유택이 없는 관계로 따로 한 번 더 저 앞에서 제를 올리곤 한다.저 곳은 원래 논이 아니라 전체가 솔밭이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일제시대 때 나무를 베어가면서 (아마도 산림수탈이라고 하던가) 마을 어르신들과 선대분들께서 기어코 지켜낸게 저 두 그루 뿐이었다고 한다. 어쩌면 지금은 저렇게 운치있다고 말하는 분들도 있을 지 모르지만 애초에 저 나무는 하동군의 상당한 애물단지였나보다. 논 한 가운데 위치한 탓에, 헬기로 농약을 뿌릴 때 방해가 된다며 베어버리라는 연락이 수도 없이 왔다고 한다. 그러나 KBS에서 토지를 드라마로 방영하면서 오프닝 영상에 저 벌판이 항상 등장하게 됐고, 그 후 소나무가 유명세를 타자 이후에는 그런 말이 없어졌다고 한다.
그리고 언젠가는 하동군청 홈페이지에 사진이 오르기도 했고, 하동 농협에서 판매하는 작설차의 광고에도 당당하게 하동의 상징으로 소나무 두 그루가 떨렁 박혀나오기도 했다. 그렇게 사용하고 있는지는 집안 어르신들 중 누구도 몰랐다. 아버지께 여쭤보니 당연히 저 유택과 주변, 소나무는 우리 사유 재산이라 하신다.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써 우리 집과 관계된 무언가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것은 상당히 뿌듯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상업적인 용도로 사용된다는 것.. 그리고 어디선가는 소설 토지속에서 이루지 못한 서희의 사랑을 암시한다는 말도 안되는 설명까지 친절히 주석으로 달고 있는 것을 볼 때면 씁쓸하기도 하다. 부부송이라 불리우나 본데, 과연 누가 언제부터 그렇게 명명해준걸까? 고맙기도 하면서 와전 혹은 왜곡의 시작이었던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2010년 6월 9일 전국여행 중 경상남도 하동 평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