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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료적 보신주의, ‘지소연의 눈물’을 배워라

박근혜 대통령 취임 이후 지적되고 있는 문제 중 가장 불편한 꼬리표가 인사참사. 인사문제에 대해 정국 운영의 공과론으로 나누어 전체의 일부분으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인사가 만사라는 옛말도 있듯이 출발점에서부터 삐걱거렸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현 정부의 인사참사는 초대 내각 구성 과정에서 관료 출신이 대거 등용된 것이 발단이었다. 박 대통령은 관료들의 전문성을 높게 평가하여 정치인 출신보다 이들에 대한 중용을 선택했고, 결국 국무총리를 포함한 18명의 국무위원 중 12명의 자리가 직접적인 관료 출신이거나 국책 연구기관 출신으로 채워졌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들의 장점인 전문성을 발휘하기도 전에 각종 사고나 문제에서 책임회피가 먼저라는 보신주의의 관료적 병폐를 먼저 드러내고 말았다. 관료 시스템이 전면적으로 자리잡고 있는 일본에서도 이러한 문제는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다. 관료주의가 갖는 기본적인 문제점인 것이다.
 
그런데 지난 4일 폐막한 2014 인천 아시안게임에서도 이러한 보신주의’의 문제가 여실히 드러났다.
 
성화 점화자 논란으로 개막식 시작 전부터 논란이 발생하더니, 성화가 이튿날 꺼지는 촌극이 발생했고, 선수단과 자원봉사자들에게 제공된 도시락에서 식중독 균이 발견되거나 유통기한이 지난 것들이 제공되는 일이 벌어졌다. 담당자가 없다며 경기 하루 전, 훈련 중인 선수들에게 야간 조명등을 켜주지 않는 해프닝이 있었고, 정전으로 경기가 지연되는 사고도 발생했다.
 
결국 대회가 끝나자마자 스포츠문화연구소, 체육시민연대, 문화연대 체육문화위원회로 구성된 체육단체연대는 이번 아시안게임에 대해 국회의 국정감사를 요구하고 나섰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제기에 대해 대회 기간 중 조직위원회는 자화자찬과 책임회피로 일관했다. 국내외 언론이 운동회 수준이라고 준비와 행사 진행을 비판하자 “OCA 회장도 칭찬한 대회라며 국내 언론이 나쁜 점만 앞 다투어 부각시키고 있다며 볼멘소리를 했다.
 
또한 제한된 예산에서 최선의 대회를 진행했다고 일관되고 주장했다. “없는 살림에 이 이상 하는 것은 무리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OCA공식 인터뷰 당시 한 외신 기자는 셰이크 아흐마드 알파하드 알사바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회장에게 이번 아시안게임에서는 이전 대회와 같은 열정을 찾아볼 수 없다. 아시안게임이 개최지에 어떤 동기부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라고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OCA도 앞뒤가 맞지 않는 대응으로 일관했다. 알 사바 회장은 큰 돈을 들이지 않고도 아시안게임을 치를 수 있다는 것을 인천이 증명했다며 입에 발린 말을 했지만, 외신 기자의 지적에 인천은 도하나 광저우처럼 예산이 많이 투입되지 않았다똑같이 비교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기본적으로 이번 대회가 이전 대회들과 같은 격이 아니라는 것을 자인한 꼴이다.
 
심지어 예산 감축을 위해 종목수를 더 줄일 의향이 있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품격을 강조하며, OCA가 개최하는 여러 대회 중 가장 규모가 있는 아시안게임에서는 이러한 부분이 지켜져야 한다고 말했고, 자본과 비용의 투자에 대해서도 지원이 된다면 좋겠지만이라는 단서를 통해 마지못해 저예산 대회를 수용했다는 인상을 남겼다.
 
인천은 차라리 다음 개최지였던 베트남의 개최 포기로 인해 예산으로 인한 면죄부를 받았는지도 모른다.
 
기자회견에서 이 같은 문제가 제기될 때 권경상 인천 아시안게임 조직위원회 사무총장은 알 사바 회장의 바로 옆에 앉아 인자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조직위는 또한 공식 인터뷰에 통역요원이 자리하지 않았던 사안에 대해 해당 국가에 미리 통보했으며 조직위의 잘못은 아니라고 변명을 했다. 확인 및 관리, 감독에 대한 책임을 간과하는 태도다. 통보한 것으로 업무가 종료된다고 생각했다면 그것이야 말로 마을 운동회 수준의 조직위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이번 아시안게임은 개막과 동시에 국내외 언론의 뭇매를 맞았다. 조직위가 언급한 바와 같이 국내에서 벌어지는 대형 국제 이벤트를 국내 언론이 진행 도중에 이토록 동시다발적으로 비판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그렇다면 조직위는 그에 대해 불만을 제기할 것이 아니라 언론의 숱한 비판과 여론의 비난이 무엇 때문인지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먼저다.
 
아시안게임 여자축구에서 단 2경기를 뛰기 위해 소속팀의 양해를 구하고 유럽에서 귀국했던 지소연 선수는 북한과의 4강에서 패한 뒤 내 잘못이라며 눈물을 쏟았다. 국민 모두가 박수를 보낸 경기에 대해 선수들은 모두 잘했다. 하지만 나는 박수를 받으며 안 된다며 기대에 미치지 못한 자신을 자책했다.
 
비인기종목인 여자축구의 미래를 걱정하며 좋은 성적을 통해 WK리그도 알리고, 선수들이 더 나은 환경에서 운동할 수 있도록 했어야 했다”고 말한 지소연 선수는 자신이 모든 것을 망쳤다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권경상 사무총장과 산하의 주요 인사들은 이 선수의 눈물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국민은 자리에서 떠나라고 촉구하는 것이 아니다. 문제에 대해 진상을 파악하고 윗선에서 먼저 솔선수범하는 책임 있는 자세를 바라는 것이다. 대한민국 관료의 고질적 문제를 국내는 물론 아시아 만방에 과시한 이번 대회에 대한 반면교사로 4년 뒤 평창에서는 책임 있는 모습들이 나타날 수 있을까?
 
적어도 이번 조직위가 보여준 태도로 볼 때, “차라리 올림픽을 포기하고 개최지를 반환하자라는 누리꾼들의 푸념이 성공개최를 확신하는 높으신 분들의 호언장담보다 훨씬 현실적이고 가치 있어 보인다. 박 대통령과 중앙정부도 체육 행사까지 책임 회피에 의한 관료병폐가 전염됐다는 지적이 제기된다면 마음이 편할 리 없다.
 

책임있는 자리를 임명받는 고위 인사들은 보신의 기본이 스스로에 대한 부끄러움을 아는 것에서 출발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2014년 10월 8일 <토요경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