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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안게임 개막식, 스포츠는 증발하고 한류만 표류했다

45억 아시아인의 축제로 12년 만에 우리나라에서 다시 개최된 제17회 인천 아시안게임이 시작부터 비판에 직면했다. 240억 원이 투입된 개막식과 관련해 곱지 않은 시선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임권택 감독과 장진 감독이 연출한 개막식은 세계 문화의 중심으로 떠오른 한류 스타들이 대거 투입된 축제의 무대로 펼쳐졌다. 아시안게임 공식 주제가인 온리 원(Only One)’을 부른 JYJ를 비롯해 EXO, 그리고 월드스타로 거듭난 싸이가 등장해 공연을 펼쳤고, 한류 드라마의 인기 스타인 장동건, 김수현, 현빈 등도 모습을 나타냈다.
 
드라마 대장금으로 중국은 물론 중동 지역까지 인기 범위를 넓힌 배우 이영애는 드라마 대장금과 영화 친절한 금자씨이후 약 10년 가까이 활동이 없었음에도 엄청난 인기를 발판으로 성화 점화자의 영광을 안았다.
 
이에 일각에서는 아시안게임 개막식인지 한류 콘서트인지 알 수 없다는 비판이 고조되고 있다.
 
총 지휘를 맡은 임권택 감독은 제한된 예산으로 차별화를 하려했음을 강조했고, 행사마다 과거 인천의 역사를 조명하는 보여줬던 것도 사실이다.
 
또한 체조 꿈나무 김민의 굴렁쇠 퍼포먼스와 고은 시인의 아시아드의 노래낭독과 여기에 국악 작곡가 김영동이 곡을 붙여 지휘자 금난새가 지휘하고 인천시립오케스트라, 국립국악관현악단, 인천시립합창단, 인천시민합창단 919명과 함께 세계적인 소프라노 조수미가 합창을 하는 모습은 소통과 화합을 강조하는 이번 대회의 취지에 부합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백번 양보해서, 한류 가수들의 공연을 지난 2012년 런던 올림픽 개막식에서 영국이 자국의 대중문화의 특징을 투영한 것과 맥을 같이한다고 이해를 한다 해도, 성화 점화자로 배우 이영애를 선택한 조치는 정상적인 사고에서 기인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대회 조직위원회 측은 다양한 활동을 통해 한국의 전통과 문화를 알린 인물이며, 아시아 전역에서 큰 사랑을 받는 인물이라는 점과 중국에 초등학교를 설립하는 등 나눔과 봉사를 통해 아시아의 화합을 이바지했다는 설명으로 이영애의 성화 점화자로서의 적격성을 설명했다. 그러나 조직위가 간과한 사실이 있다

아시안게임은 스포츠 제전이다. 아시안게임은 아시아의 평화와 화합을 도모한다는 목적을 갖고 있는 대회임이 분명하지만 국제스포츠대회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자국의 정치와 문화적인 이념과 색깔이 투영될 수는 있지만 어디까지나 그 한계와 적정선이 분명히 존재해야 하며, 중심에는 스포츠 정신이 있다. 그리고 당연히 스포츠로 이루어져 있다. 문화행사는 부수적인 것이다.
 
이영애의 경우, 성화 봉송 주자로 적격인 인물일 수는 있지만 최종 점화자로 과연 어울리는 인물이었을지는 의문이다.
 
과거 16차례의 아시안게임에서 비스포츠인이 성화를 최종 점화한 경우는 단 한 차례도 없었으며, 하계 올림픽 역사에서도 이는 4차례만 존재했던 일이다.
 
최초의 비스포츠인 성화 점화자였던 1952년 오슬로 동계올림픽 당시의 아이길 난센은 세계 최초로 그란란드 횡단에 성공했던 노르웨이 탐험가 프리드쇼프 난센의 손자였으며, 1980년 미국 레이크 플래시드 동계올림픽 최종점화를 맡은 의사 찰스 모건 커는 성화 봉송 주자 52명의 추천을 통해 결정됐다.
 
1984년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의 성화점화를 맡은 호콘 노르웨이 왕세자는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올림픽에 참가한 적이 있어 이를 대신했다는 의미가 있었다.
 
하계 올림픽에서는 지난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일반인이 최종점화자로 나선 것이 유일한 사례다. 당초 마라톤 영웅인 손기정 옹이 최종 점화자로 예정되어 있었지만, 대외적으로 누구나 예상할 수 있었던 부분이었기에 정부가 최종적으로 방침을 바꿔 손기정 옹을 성화 봉송 주자로 변경했고, 당시 노태우 정부가 내세웠던 보통사람에 맞춰 일반인을 점화자로 선발했다.
 
이에 당시 국토 최서남단에 위치한 소흑산도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던 정선만 씨가 성화 점화의 영광을 안았다. 그러나 정 씨의 경우 당시 서울예고 무용과에 재학 중이던 손미정 씨는 물론 마라토너 김원탁과 함께 최종 점화에 나섰다. 체육인과 함께 점화를 실시한 것이다.
 
우리나라에 최종점화를 맡을 스포츠인이 없는 것도 아니다. 

언젠가부터 우리 정부가 그토록 강조하는 국격을 세계 속에 가장 드높인 것도 스포츠인들의 몫이었다. 대한민국을 빛낸 스포츠 영웅들은 물론 이번 아시안게임의 개최 도시인 인천 출신의 스포츠 스타도 상당하다. 아시아에서의 영향력은 이영애라는 인물보다 덜할 수 있지만 아시안게임이라는 본질을 한번만 생각했다면 반드시 짚었어야 하는 부분이다.
 
또한 앞에 나서기를 간절히 소망하는 정치인들과 경제인들 중에서도 스포츠에 물심양면의 노력을 기울였던 인물이라면 이영애보다는 점화자로서의 자격 시비가 덜 했을지도 모른다.

역사 속에서  작은 나라’라고 수없이 배워왔지만, 우리나라는 스스로도  스포츠 강국’이라고 자부하고 있으며, 동하계 올림픽 유치는 물론 아시안게임 3회를 비롯해 FIFA 월드컵과 세계 육상선수권 대회 등 전 세계의 시선이 집중되는 국제적인 스포츠 행사를 수없이 치러낸 나라다. 그러나 이번 개막식은 그런 대한민국의 가치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행사였다는 점에 대해서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전체적인 의미에서 이영애의 최종 점화자 선정은 아시안게임 개막식 행사에서 스포츠보다 그 외의 부수적인 것에 인천시와 조직위가 더 큰 의미를 두고 있는 것이 아닌 가하는 의구심을 들게 만드는 부분이며, 이로 인해 한류 가수들이 나선 공연 역시도 그 의미를 퇴색시켜 버리게 만드는 효과를 가져왔다.
 

변별력을 강조했던 아시안게임 개막식은 역대 아시안게임이나 올림픽의 개막식과의 차별성을 만드는 데는 성공했을지 모르지만, 최근 들어 명절 때마다 방송 3사에서 무한반복하고 있는 아이돌 총출동 콘서트와의 차별성을 만드는 데는 완벽하게 실패하고 말았다